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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머리가 좋아지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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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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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석 한겨레 교육서비스본부kimcs@hani.co.kr

대학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을 앞에 두고 강의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 사회과학 책을 너무 안 읽는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친구들이 많다. 우리 세대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씨름했던 주제인데…. 세상이 많이 변한 걸까.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그런데 변증법이 다루는 형식과 내용, 본질과 현상, 물질과 의식 사이의 관계 등은 세상을 보는 시각을 길러주는 훌륭한 사고훈련 도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과 현상을 분석하는 데 이들 도구를 쓸모 있게 쓴 경험이 내게는 많다. 물질과 의식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내 인생의 화두 가운데 하나다. 50년 이상 좁은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비전향 장기수들 가운데 치매에 걸린 사람이 없다는 점을 기억하는가. 독방에 갇혀 다른 사람과의 대화의 자유마저 박탈당했던 그들이 어떻게 치매를 피할 수 있었을까. 변증법적으로 사고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면 머리가 두 배 좋아진다.

논리적인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논리적인 글쓰기를 잘하게 되면 머리가 두 배는 좋아질 수 있다. 글쓰기는 단순히 원고지를 글자로 채우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글쓰기의 전제 조건 가운데 하나는 독서다. ‘인풋’이 없이 ‘아웃풋’을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니까. 비판적·창의적 글쓰기와 사려 깊은 사고는 서로를 채찍질하면서 우리의 두뇌를 업그레이드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가 좋은 데 비해, 말을 잘하는 사람은 모두 머리가 좋은 건 아니다. 글쓰기의 문법과 말하기의 문법에 큰 차이가 있다. 글쓰기에는 말하기에서 주목하지 않는 두 요소가 있다. ‘구성하기’와 ‘표현하기’가 그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차별성 있는 콘텐츠로서의 지식과 정보도 필요하지만, 구성력과 문장력이 반드시 더해져야 한다.

구성력은 마치 집을 지을 때 정밀한 설계도가 필요한 것처럼 글쓰기에 필요한 설계도 작성 능력을 말한다. 전체 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조절하면서 글에 쓰일 재료를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배합·배치하는 능력도 포함된다. 구성력은 결국 논리력이나 논리구성력에서 온다. 문장력은 생각을 문자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글이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전개돼야 읽는 이가 글에 빠져드는 법인데 이는 문장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말하기가 즉석에서 이뤄지는 것에 비하면 글쓰기를 즉석에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말하기는 정말 잘하는데 글쓰기는 엉망인 경우가 많다. 언론사에 글을 보내오는 외부 필자들 가운데 대학 교수들이 많은데 기자들이 보기에 흡족한 글은 별로 없다. 주어와 서술어가 제대로 호응하지 않는 문장도 섞인다. 그러면서 글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말은 정신없이 하는데 글은 무척 깔끔한 경우다. 내가 아는 한 여성학자가 그랬다.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얘기를 들으면서 도대체 정리가 안 됐다. 얘기가 산으로 갔다가 바다로 갔다가 들쭉날쭉이었다. 그러나 그가 낸 책을 보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전개나 글 전체의 구성이 숨 막힐 정도로 꼼꼼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허투루 쓴 문장을 찾기 힘들 정도다. 머리가 좋은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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