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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리덩후이가 투표를 포기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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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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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이 지난 3월24일 국민당 주석선거에 참석하지 않고 골프를 즐겨 구설수에 올랐다. 이날 선거는 106년에 이르는 국민당 역사상 처음으로 당원들의 직접투표로 치러진 선거였고 리덩후이 자신은 10년간 국민당 주석직에 있었다.

리덩후이 전 총통은 지난해 3월 대만 총통선거 당시 민진당의 천수이볜 현 총통을 암묵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롄잔을 국민당 총통 후보로 내세웠다는 비난을 받았다. 국민당이 재집권에 실패하자 당원들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고 곧바로 하야하는 수모를 당했다. 따라서 비록 이번 선거에 단독 입후보한 롄잔의 당선은 확정적이었지만, 리덩후이가 롄잔을 확실히 지지하는 모습을 보일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선거 당일 일부 재계인사 및 일본인 친구 등과 어울려 타이베이 교외에서 골프를 즐겼다. 리덩후이는 기자들이 선거불참 이유를 묻자 “너무 바빴다”고 둘러댔다.

일부 외신들은 리덩후이의 이러한 모습을 대만정치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전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민당과 민진당 정권과의 싸움에도 별로 관여하지 않는 등 퇴임 뒤 정치에 거리를 두고 있는 리덩후이의 모습이 마치 막강한 미국 대통령이 퇴임 뒤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러나 실상은 좀 다르다. 리덩후이는 유권자 명부에 이름을 등록했고 국민당 간부에게는 24일 오전 투표소에 나와 선거에 참여할 것이라고 전달했다. 국민당 간부들은 리 전 총통이 직접 투표를 통해 롄잔에 대한 지지를 표할 것이라고 언론에 공개까지 했다. 결국 리덩후이는 롄잔을 지지할 것 같이 행동하다가 당일 날 골프를 치러가 롄잔을 골탕먹인 셈이다.

리덩후이는 4월 말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가 단지 관광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리덩후이는 여전히 정치에 관여하고 있고 그의 뒤에는 늘 대만 정치부 기자들이 따라다닌다. 소속당이었던 국민당에 이롭지 않은 행동을 계속하면서도 여전히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덩후이의 정치적 능력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김태경 기자/ 한겨레 국제부 gauz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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