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몸매, 물 오른 연기
등록 : 2001-03-27 00:00 수정 :
“흑흑, 전 이미 윤 실장님에게 순결을 바쳤어요.” 그러자 ‘그녀’가 담배를 피워물며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어쩌라고∼?” 허랑방탕한 애인 윤다훈과 자신의 관계를 감정적으로 호소하려 했던 안연홍은 이 기세에 눌려 할말을 잃는다.
3월12일 문화방송 시트콤 <세친구>를 보던 시청자들은 ‘그녀’가 누군지 사뭇 궁금했을 것이다. 어쩌라고 이렇게 위풍당당한 것일까. 간간이 반짝 출연하기도 했던 ‘그녀’는 이날분에서 주연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극의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징징 짜면서 하소연하는 안연홍을 외면했지만, 자신을 이용해 안연홍을 떼어내려 했던 윤다훈의 진실을 알고는 그에게 사정없이 펀치를 날린다. 정확하게 말해 ‘쥐어팼다’. “난 새 여자친구 사귀는 척해서 옛 여자친구 떼어내는 놈 참을 수 없어!”
“뚱뚱한 여자가 다 그악스러운 건 아닌데, 자꾸 그렇게 나와서 사실 좀 부담되죠.” 봄빛이 완연한 대학로에서 만난 고수희(25)씨는 화장기 없는 앳된 얼굴에 발랄한 여성이었다. “기자를 만난 건 두 번째”라며 허둥대는 폼마저 풋풋했다. “매니저요? 당연히 없죠.” 중1 때 연극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고 주인공의 연기에 홀딱 반해 배우의 꿈을 키웠고, 예고를 거쳐 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했다. 99년 연극 <청춘예찬>에서 일약 주연으로 대학로에 데뷔했고, 공연이 롱런하던 지난해 가을 TV드라마 감독에게 발탁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뚱뚱한 여자에게 원하는 이미지가 있죠. <세친구>는 그런 고정관념의 허를 찔러 희롱하는 작품인 거 같아요. 그래서 마음에 듭니다.” 곧 스크린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날도 한 영화의 주연 제의를 받고 석고마스크를 뜬 뒤 약속장소에 온 터였다.
“데뷔한 이래 한번도 쉬어보지 못했죠. 하지만 아침에 눈뜨자마자 생활정보지의 구인구직란을 뒤지던 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바쁜 게 정말 고맙습니다.” 고씨는 직업적인 연기자다. 밥벌이는 물론, 가수를 꿈꿨던 엄마와 배우를 꿈꿨던 언니를 대신해 세몫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의 말대로 “세상에는 오만 가지 형상의 사람들이 있는데” 유독 TV는 빼빼 마른 이들만 있다는 듯, 모두가 빼빼 말라야 한다는 듯 야단법석이다. 브라운관에서든 스크린에서든 그의 진가가 당당하고 자신있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