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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착한 여자’도 ‘슈퍼 장애인’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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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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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위주 장애인단체를 떠나 독립을 꿈꾸는 ‘장애여성공감’이 서로에게 ‘공감’하기까지

(사진/웹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는 정영란(34)씨)
둘러앉은 여자들은 꽤 수다스러웠다. 하지만 날선 목소리로 떠들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고 끼어드는 법도 없었다. 어둑한 저녁 서울 고덕동 주택가 한 귀퉁이, ‘장애여성공감’의 회원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는 ‘졸졸졸’ 서로 어깨 기대고 사이좋게 흐르는 강물 소리 같았다.

그들의 새 기준, 느림과 부드러움

어느새 5년지기다. 96년 한 장애인단체에서 처음 만났다. 서로 장애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고 성격도 제각각이었다. 게다가 장애를 갖지 않은 여성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 ‘여성’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자매애로 똘똘 뭉친 이 여성들은 독립을 꿈꿨다. 남성적인 힘의 논리가 횡행하는 사회가,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단체가 싫어서였다. 힘있고 목소리 큰 장애남성들 속에서 장애여성들은 그저 그림자일 뿐이었다. ‘장애여성공감’의 박영희(40·간사)씨는 장애여성들이 홀로 서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차분히 설명했다.


“이 사회가 대부분 그렇듯 장애인단체도 남성 위주인 게 사실입니다. 장애여성들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기 십상이죠. 장애여성들이 리더십을 갖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97년 한 여름, 아홉명이 함께 속해 있던 장애인단체를 나왔다. 장애여성이 직접 만들고, 이끌고 키우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크고 폼나는 단체를 만들 생각이 없었던 탓이다. 훈훈한 자매애가 넘치는 작은 공동체를 이루면 그뿐이다 싶었다. 우선 장애여성들만의 방이 필요했다. 서둘러 은행 대출까지 받아가며 집세를 마련했다. 하지만 드넓은 서울 하늘 아래 작은 보금자리 하나를 얻는 것도 그들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살 만한 집은 너무 비쌌고, 그나마 형편에 맞는 집은 너무 불편해 보였다. 높은 문턱, 가파른 계단 그리고 지독한 편견. 휠체어를 탄 이들을 가로막는 이 사회의 장애들이었다. 헤매고 헤맨 끝에 겨우 찾은 고덕동 연립주택 1층의 문턱 낮은 집. 드디어 ‘장애여성공동체’의 살림터가 꾸려졌다. 지금도 이 집은 1급 장애여성 세 사람의 생활공간이자 ‘장애여성공감’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달리 이사갈 만한 마땅한 곳이 없는 탓이다.

일단 둥지를 틀고 장애여성모임을 차분히 준비했다. 일이 끝난 밤이면 모여 책을 읽었고, 밤새 토론을 벌인 일도 적지 않았다. 갈수록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정체성이 단단해져만 갔다. 어느 순간 이젠 우리만의 단체를 만들어도 좋겠다고 모두 ‘공감’했다. 이렇게 98년 2월 ‘장애여성공감’은 태어났다. 장애여성이 장애여성공동체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더 빨리 더 많이 하기 위해서 남성들을 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더 천천히 더 조금씩 진행되는 일들에 대해 조바심을 느끼면서 비장애여성이나 장애가 가벼운 여성들이 나머지 사람들의 몫을 대신 해주려고 하지 않는다.’(잡지 <공감> 창간호에서 발췌)

이처럼 이들은 효율성이나 속도 같은 남성적 사고의 전복을 꿈꾼다. 더 많이 생산하는 남성이 그렇지 못한 여성을, 더 빠른 비장애인이 좀 더 느린 장애인을 지배하는 사회가 분명 잘못 됐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이를 몸으로 옮기려고 부단히 애쓴다. 속도를 거스르는 기다림, 강함을 뛰어넘는 부드러움. 이런 여성적 미덕이 이들이 구성해나갈 새 기준의 단초들이다. 그러기에 비장애인 회원인 김은정(27)씨는 굳이 장애인 친구들에게 ‘봉사’하려 들지 않는다.

<공감>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다

(사진/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토론회를 주최한 '장애여성공감'의 운영회원들)
“전에는 (장애여성인) 영희 언니 휴대폰이 울리면 제가 먼저 받아주곤 했거든요. 근데 생각해보니 어리석은 짓이더라구요. 물론 제가 받아서 바꿔주면 시간은 좀 적게 걸리죠. 하지만 영희 언니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제가 대신 해줄 필요가 뭐가 있어요?”

자매애로 똘똘 뭉친 ‘장애여성공감’이지만 함께 모여 사는 일이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뭐하러 (장애여성이) 따로 나와서 고생하느냐”는 비아냥도 심심찮게 들었다. 그런 말은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같이 사는 장애여성끼리 서로를 이해 못할 때 가장 힘들었다. 하루종일 부대끼다 보면 서로 이해 못할 점도, 미운 구석도 참 많이 보였다. 그럴 때마다 ‘집안회의’를 했다. 때론 아프게 깨졌다. 그렇게 부딪힐 때마다 차츰 서로 다른 장애와 성격을 이해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생활의 틀이 잡힌 건 1년쯤 지나서였다. 정영란(34)씨는 “하루하루 사는 게 전쟁이었다”며 “불만 안 났지 (웬만한 일은) 다 겪었다”고 돌이킨다. 독감으로 한꺼번에 앓아누운 적도 있었고, 전세든 집이 근저당에 잡혀 전세금이 날아갈 뻔한 위기도 있었다.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달픔도 독립하는 기쁨을 누르지는 못했다. 이제 어느 누구도 다시 부모의 그늘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고덕동 생활공동체가 안정을 찾을 무렵, 또다른 갑갑증이 밀려왔다. 그 바탕에는 다른 장애여성들과 ‘공감’하고 싶은 욕구가 깔려 있었다.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얘기도 있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잡지를 내기로 했다. 책이름은 <공감>으로 붙였다. 반년마다 발행되는 이 잡지에는 시시콜콜한 일상에서 공동체적 반성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장애여성공감’이 직접 쓰고 편집하고 섭외하고 디자인했다. 첫 번째 <공감>의 특집은 ‘우리의 몸 이야기’. 이 기회를 통해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자신의 육체를 찬찬히 응시했다. 그리고 미처 깨닫지 못한 내 몸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고통스럽게만 응시했던 내 몸을 어느덧 사랑하게 된 것이다. 강하고 장애없는 육체만을 선망하게 만드는 ‘몸의 신화’도 그들 안에서 서서히 깨졌다.

두 번째 주제는 ‘독립’이었다. 그 속에는 한 개인의 삶과 한 공동체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은 독립 중에서 ‘자아독립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겠다는 자아독립이 있고서야 생활독립이든 경제독립이든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독립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게 아니다. 상생 속에 녹아든 독립이다. 서로가 서로를 도움으로써 비로소 나를 돕게 되는 ‘상생’의 정신. ‘장애여성공감’은 공동체 속에서 그 상생의 정신이 발휘될 때 비로소 개인의 독립도 완성된다고 여긴다.

한달에 한번씩 장애여성들과 어울려 벌이는 토론회도 빼놓을 수 없는 ‘장애여성공감’의 중요한 일이다. ‘장애여성 함께 살기’, ‘장애여성 혼자 살기’, ‘장애여성과 검정고시’, ‘일하는 장애여성’…. 이렇게 생활에 맞닿은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잔잔한 공감이 퍼짐을 느낀다.

장애를 긍정하는 장애여성

(사진/밤늦게 고덕동 사무실에 모여 <공감>3호 편집회의를 하고있다)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장애여성의 정체성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장애여성공감’ 운영회원들. 가끔은 스스로를 잘난 사람이라 여길 법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스스로를 ‘뛰어난 장애인’이나 ‘특별한 여성’으로 치켜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입을 모아 ‘착한 여자’ 콤플렉스와 ‘슈퍼장애인’ 신화를 비판했다.

“저희는 모든 걸 참아내는 ‘착한 여자’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바를 또렷이 말할 줄 아는 여성이 되려고 하지요. 또한 저희는 존재하는 장애를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는 ‘슈퍼 장애인’이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대신 내가 가진 장애를 긍정하는 장애여성이 되려고 할 뿐입니다.”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한 장애여성, 그리고 차이 속에서 연대를 꿈꾸는 장애여성공동체. 거센 팔뚝질을 하지 않아도, 목청 높여 외치지 않아도 새로운 질서는 자라나고 있다. ‘공감’ 속에서.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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