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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책 읽는 소리가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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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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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프랑스 소설 제목이 아니다. 서울 마포도서관 시각장애인실에서 봉사하는 주부들 이야기다. 95년 마포도서관 개관과 동시에 생긴 시각장애인실에는 녹음도서 2만4692점이 비치돼 있다. 그러나 이 녹음도서들이 거저 생긴 것은 아니다. 자원봉사단 최원숙(회장)씨를 비롯한 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5∼6년간 꾸준히 녹음해온 결과다.

자원봉사자는 대부분 50대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다. 살림하면서 일주일에 두 시간씩 시간을 내고 있다. 3년 넘게 봉사해온 김시분씨의 경우, 일주일에 한 테이프씩 녹음해 약 150테이프를 만들었다. “시각장애인들은 귀가 밝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답답해합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그닥 고생됐던 추억은 없지만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몰이해가 안타깝다고 한다. 한번은 한 신문사에서 “사용자도 많지 않은 시각장애인실이 왜 위치좋은 1층에 있어야 하느냐”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층계 한단을 올라가는 것은 일반인들과 비교되지 않는 커다란 불편이라는 것을 모르는 소치였다. 이때 자원봉사자들과 시각장애인들이 신문사를 방문해 항의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 스스로 이런 시설이 있는 것을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다. 간단히 전화로 신청하면 무료로 회원에 가입되고, 테이프도 공짜로 우송해준다. 학교에 다니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학교 교재나 필기노트도 녹음해준다. 역시 5년째 녹음봉사를 해오고 있는 박선희씨는 “출판사에서 녹음도서를 많이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녹음된 소설책이 몇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요리책 같은 실용적인 책이 필요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무슨 요리냐’ 하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라며 출판계의 동참을 호소했다.

힘들지 않다고 말은 하지만 녹음 스튜디오는 밀폐된 공간이라서 여름에는 숨이 막힐 듯이 덥다. 대학교에 다니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전문용어나 영어가 많이 섞인 교재를 읽을 때면 골치가 지끈지끈 아픈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주부들이 ‘책 읽어주는 여자’로 남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엿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아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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