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쫓겨나는 산재노동자들의 한숨… 푸대접·외면에 산재처리 거부하기도
지난 3월6일 인천중앙병원 8층 옥상에서 한 노동자가 스스로 몸을 던졌다. 7년여 동안 산재의 고통과 싸워온 산업재해노동자 최신호(49)씨는 끝내 그렇게 숨졌다. 숨진 최씨는 이날 대전중앙병원으로 옮겨 정신과 치료를 받을 참이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산재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중 점점 더 심해지는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는 지난 94년 충남 천안에 있는 ㄱ정밀에서 일하다 철근빔에 오른쪽 무릎연골이 파열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이후 지금껏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병원을 옮겨다니며 산재치료를 받아왔다. 부인 고성옥씨는 “최근 들어 남편이 ‘나는 죽을 것이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정신과 치료를 요구했지만 병원쪽은 시스템이 좋은 다른 일반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으라며 퇴원을 종용했다”고 분노했다.
7년여의 치료 그리고 자살을 하기까지
회사에서는 처음에 최씨를 공상처리(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사용자가 직접 보상)하는 등 산재처리를 기피했다. 또 사고 직후 최씨를 곧바로 해고조처했다가 반발이 일자 복직시키기도 했다. 산재로 인해 추가 발병한 외상성 신경증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로 인정해주지 않자 법정 소송으로 공단과 싸워 산재인정을 받아냈다. 이런 과정에서 최씨의 심신은 날로 지쳐갔고 정신불안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재전문병원인 인천중앙병원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했다. 부인 고씨는 “산재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과 회사, 병원이 모두 남편을 자살로 몰아갔다”고 몸서리를 쳤다. IMF 경제위기 이전에 1년에 1∼2명꼴이던 자살 산재노동자가 크게 늘고 있다. 지난 2월에도 같은 인천중앙병원에서 산재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던 산재노동자 최재일(58)씨가 질병에 시달리다 못해 건물 아래로 몸을 던졌다. 치료 도중 자살한 산재노동자는 지난 99년 14명으로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8월 말까지만 12명에 이른다. 민주노총 주영미 산업안전국장은 “건강한 사람도 회사에서 잘리는 판인데 산재를 당해 장애를 입은 노동자들은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라며 “오랜 치료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신불안증세에 대한 심리치료가 거의 없는 것도 산재노동자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정리해고는 구조조정기일수록 더욱 시름에 겨울 수밖에 없는 산재노동자들의 고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우자동차는 1750명을 정리해고하면서 산재환자 22명까지 대상자로 넣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대우차 노조는 “산재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을 어겨가며 노동자를 두번 죽이는 반인권적 조처”라며 강력 반발했고 회사쪽은 뒤늦게 이들에 대한 해고조처를 철회했다.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이하 산재노협)는 “이 한몸 부서지도록 일하다 다쳐 병원신세를 지는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쓸모없으니 나가란 말이냐”며 “산재노동자를 낡은 기계부품이나 산업폐기물로 취급하는 꼴”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해고 두렵고 동료 징계 막으려 산재 포기
산재를 입으면 해고 우선순위가 될 게 분명하다보니, 재해를 당해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보호를 스스로 포기하고 산재치료를 꺼리는게 산재노동자의 현실이다. 성수의원 양길승 원장(노동보건직업병연구소장)은 “분명히 산재인데도 산재로 치료하는 노동자가 줄어들고 있다”며 “아주 크게 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사고가 아니고서는 산재보다는 의료보험으로 혼자 치료해버리고 마는 분위기가 노동현장에 깔려 있다”고 안쓰러워했다.
더욱 딱한 건 산재를 당하면 같이 일하던 팀 동료들에게 징계가 내려진다는 것이다. 기업주가 정작 스스로 져야 할 안전관리책임은 제쳐둔 채 다른 노동자들에게 안전 소홀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기 일쑤이다보니 동료 노동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산재처리를 요구하지 못한다. 이는 사용자가 산재처리를 고용불안과 연계시켜 악의적으로 해결하는 구조조정기에 ‘한없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산재노동자의 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용자가 산재를 은폐하려는 건 산재가 많은 기업은 그만큼 산재보험금 부담이 늘어나고 노동관서의 특별관리를 받기 때문이다. 사업주의 산재 은폐 적발건수는 98년 1238건, 99년 842건에 달했다. 산재노협 허덕범 회장은 “기업이 내는 산재보험료도 사실은 노동자들이 생산해낸 이윤에서 나오는 것인데도 산재를 기피하는 건 사용자의 부도덕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게다가 산재처리 과정에서 동료 노동자들이 회사쪽 눈치를 살피면서 사고 상황을 제대로 진술해주지 않거나 심지어 회사쪽의 허위진술 강요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금속산업노조연맹 박세민 산업안전부장은 “고용불안에 시달리다보니 바로 옆자리에서 물건을 들다 동료가 다쳐도 회사쪽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제대로 진술을 안 해주고 회사는 이를 악용해 산재처리를 기피하는 게 서글픈 현실”이라고 말했다. 산재노협의 산재노동자 상담사례를 보면, 노동자가 일부러 프레스에 손을 집어넣었다거나 ‘회사가 망하는 판에 무슨 건강이고 안전이냐’고 주장하는 사용자도 있다.
지난 3월16일 경기도 광명시 김진일 정형외과. 병실에 누워 있던 산재노동자 지동근(39)씨가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부신 듯 눈을 부비며 몸을 일으켜세웠다. 지씨는 지난 97년 경기도 화성의 ㅅ기계에서 일하다 발을 크게 다쳐 왼쪽발에 비해 오른쪽발이 5cm가량 작아져 있었다. 그는 “산재요양을 한 지 두달이 되자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퇴사 서류를 가져와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며 “당시 회사쪽은 산재보상을 안 해줘도 되는 것을 산재처리해주는 것이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고 분노했다. 지씨는 산재치료 4년 동안 질병이 도지거나 악화돼 3차례나 재요양 치료를 받았고 그동안 10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3∼4차례나 더 수술이 남아 있다.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결국 다리가 썩어 도려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등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회사는 산재도 안 되는 것을 해준 것인데 모슨 보상이냐는 식이고….” 말끝을 채 잇지 못한 그의 얼굴에 산재의 어두운 그늘이 스쳤다.
병동은 산재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씨가 누워 있는 방 복도 맞은편 병실에 있는 산재노동자 서아무개(37·여)씨는 산재를 당하면 남는 건 망가진 몸뿐인 참혹한 현실을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서씨는 지난해 2월 인천시 남구 주안동에 있는 한 냄비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오른팔이 딸려들어가는 바람에 팔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는 “글쎄, 내가 언제 사고를 당했더라? 그러니까 올해가 몇년이죠?”라고 되묻는 등 심한 정신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기계에 손이 딸려들어가 피가 터지는 꿈을 늘 꿔요. 다친 사람만 억울하죠 뭐. 팔이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일하겠어요.” 축 처진 오른팔 환자복처럼 그가 힘없이 말했다.
지난 1월30일 기준으로 산재환자는 3만3584명으로, 이중 10년 이상 치료를 받고 있는 장기환자는 1200여명,1년 이상 치료환자는 1만2500여명에 이른다. 지난 99년 산재사망자는 2291명, 부상자까지 합친 전체 산재노동자는 5만5405명으로 노동현장에서 하루 7∼8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고 있다. 이는 한국이 여전히 산재왕국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일 뿐 전혀 놀라운 게 못된다. 그나마 99년의 산업재해율 0.74%도 5인 이상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율은 이보다 훨씬 높은 3.82%이며 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도 12.3명으로 5인 이상 사업장의 2.8명보다 4배나 높다.
경쟁력 강화 논리에 산재문제 외면
노동건강연대(준) 장지혜 준비위원은 “산재환자로 처리된 재해율만 그렇지, 크게 다치지 않은 사고나 영세기업을 포함시키고 은폐되는 산재사고까지 합치면 재해율은 이보다 3배 이상 될 것”이라며 “지난 88년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산재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진 원진레이온 사건 이후 환경문제와 더불어 산재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터져나왔지만 경쟁력강화논리가 판치면서 산재노동자문제는 잊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종합병원들의 산재환자 홀대는 산재노동자의 마음속 병을 더 깊게 하고 결국 자살로 내몰기까지 한다.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 주요 종합병원들은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보험 의료기관지정신청을 하지 않고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도 지난해 6월 산재지정을 일방적으로 해제하고 장기입원 산재환자의 퇴원을 종용하더니 아예 산재환자 진료를 거부했다. 병원쪽은 “산재보험수가가 의료보험보다 낮고 산재환자 중 상당수가 장기입원해 병상회전율이 둔화된다”며 “의료수준이 턱없이 낮은 전국 9개 산재전문병원은 제쳐놓고 정부가 종합병원에 책임을 떠넘기는 꼴”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병원쪽의 진료거부에 대해 “공단과 병원쪽이 계약을 통해 산재보험 지정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병원쪽에서 먼저 신청을 해오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산재노협 허덕범 회장은 “다친 것도 서러운 판에 병원들이 산재노동자 진료를 거부하거나 퇴원을 종용하다보니 산재노동자가 설자리가 없다”고 한탄했다. 산재노협 김재천(30) 사무국장도 병원의 진료거부는 오히려 ‘죄인취급 당하는’ 산재노동자의 처절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19살 때 기계에 손이 눌려 왼손가락 세 마디를 잃은 그는 직장을 구할 때면 손을 일부러 감추었지만 결국 눈물을 머금고 번번이 퇴짜를 맞아야 했다. 산재가 낙인처럼 평생 따라다니고 있는 셈이다.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다리가 퉁퉁 부어 산재치료를 호소하면 회사는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은데 왜 당신만 그러냐’며 오히려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병원의 진료거부도 똑같요. 산재노동자를 사람취급 해주지 않는 거죠.”
이렇듯 산재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외면 속에서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이 스스로 산재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산재노협 회원 10여명이 광명성애병원, 구로고대병원 등을 정기적으로 돌며 새로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을 만나 상담활동을 펴고 있는 것이다.
산재노동자에게 일할 권리를…
지난 3월15일 서울 구로구 구로고대병원 718호실. 산재노협 남현섭(36)씨가 병동 안내데스크에 적힌 산재환자 배종완(25)씨를 확인하고 입원실에 들어갔다. 배씨는 지난 1월 충남 당진의 한 사출공장에서 오른손가락이 잘려 봉합치료를 받고 있었다. “언제 다쳤어요?” 남씨의 물음에 배씨는 당신이 누구냐는 듯 잔뜩 경계하는 빛을 보였다. “산재노동자협의회에서 나왔어요. 나도 10년 전에 프레스에 손을 다친 산재노동자예요”라며 남씨가 자신의 왼쪽 조막손을 내놓았다. 그제서야 굳어있던 배씨의 얼굴이 풀렸다. 그리고 둘은 금세 동지라는 말만으로도 묶일 수 있는 친근한 사이가 됐다. “다음주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고충이 있으면 이리로 연락해요.” 남씨가 무엇인가 그에게 건넸다. 산재노동자수첩이었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사진/해고가 두려워 산재처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게 산재노동자의 현실이다. 4년째 치료를 받고 있는 지동근씨.
회사에서는 처음에 최씨를 공상처리(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사용자가 직접 보상)하는 등 산재처리를 기피했다. 또 사고 직후 최씨를 곧바로 해고조처했다가 반발이 일자 복직시키기도 했다. 산재로 인해 추가 발병한 외상성 신경증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로 인정해주지 않자 법정 소송으로 공단과 싸워 산재인정을 받아냈다. 이런 과정에서 최씨의 심신은 날로 지쳐갔고 정신불안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재전문병원인 인천중앙병원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했다. 부인 고씨는 “산재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과 회사, 병원이 모두 남편을 자살로 몰아갔다”고 몸서리를 쳤다. IMF 경제위기 이전에 1년에 1∼2명꼴이던 자살 산재노동자가 크게 늘고 있다. 지난 2월에도 같은 인천중앙병원에서 산재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던 산재노동자 최재일(58)씨가 질병에 시달리다 못해 건물 아래로 몸을 던졌다. 치료 도중 자살한 산재노동자는 지난 99년 14명으로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8월 말까지만 12명에 이른다. 민주노총 주영미 산업안전국장은 “건강한 사람도 회사에서 잘리는 판인데 산재를 당해 장애를 입은 노동자들은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라며 “오랜 치료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신불안증세에 대한 심리치료가 거의 없는 것도 산재노동자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정리해고는 구조조정기일수록 더욱 시름에 겨울 수밖에 없는 산재노동자들의 고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우자동차는 1750명을 정리해고하면서 산재환자 22명까지 대상자로 넣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대우차 노조는 “산재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을 어겨가며 노동자를 두번 죽이는 반인권적 조처”라며 강력 반발했고 회사쪽은 뒤늦게 이들에 대한 해고조처를 철회했다.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이하 산재노협)는 “이 한몸 부서지도록 일하다 다쳐 병원신세를 지는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쓸모없으니 나가란 말이냐”며 “산재노동자를 낡은 기계부품이나 산업폐기물로 취급하는 꼴”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해고 두렵고 동료 징계 막으려 산재 포기

사진/18살 때 산재로 오른쪽 손가락 3개를 잃은 산재노협 허덕범 회장(왼쪽)과 산재노협 회원들의 손(오른쪽).

사진/산재노협 남현섭씨가 구로고대병원을 찾아 산재노동자 상담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