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돌, 해괴한 사건
등록 : 2001-03-20 00:00 수정 :
<한겨레21>이 다시 성장의 나이테를 하나 더했습니다. 이번호로 어느덧 창간 7돌을 맞았습니다.
지나온 7년을 돌이켜보면 보람과 자부심으로 가슴뿌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아쉬움과 미진함도 금할 수 없습니다. 금기와 성역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사회의 그늘진 곳에 대한 따뜻한 애정, 남북의 화해와 하나됨을 위한 노력 등 <한겨레21>이 창간 때부터 추구해온 정신에 어느 정도 투철했는지를 다시 한번 뒤돌아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 시행의 현장, 산재노동자의 좌절과 분노, 멕시코 사파티스타 지도자 인터뷰 등 이번호의 많은 기사들도 그런 치열한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러면서도 <한겨레21>은 늘 이런 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높은 기대에 크게 못미친다고 자성하면서 더욱 분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참으로 해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월간조선>이 보도한 옛 안기부의 한겨레신문 분석 보고서입니다(이 보고서는 한겨레신문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어차피 <한겨레21>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요). 그 보고서 내용을 보면 남북의 화해를 위한 노력은 ‘친북·이적’으로, 사회의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은 ‘사회저변의 체제저항 의식 자극’ 내지 ‘좌경세력 입지 강화 지원’ 등으로 둔갑해 있습니다.
지금의 국정원이 어떤지는 몰라도, 음습한 공작의 전문가들인 옛 안기부가 만든 보고서니 그 내용은 일단 접어둡시다.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못하겠으며 무슨 공작을 못 꾸미겠습니까. 그런데 <월간조선>은 왜 이렇게 신이 났을까요. 미루어 짐작건대 ‘한겨레가 좌경용공인 사실이 드디어 정부의 문서에서 공식 확인됐다’고 쾌재를 부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기야 ‘색깔론’ 하면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매체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요.
그래도 한 가지 정말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월간조선>에서 밝힌 ‘문서 내용 검증 과정’입니다. <월간조선>이 ‘검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고작 <한겨레>가 용인 에버랜드 안전사고 발생 사실을 1단으로 처리한 뒤 광고를 수주했다는 내용과, 통일문화재단의 탈법 여부 정도였습니다. 비리를 밝히겠다고 의욕적으로 뛰어들긴 했지만 그 결과는 물론 신통치 않습니다. 에버랜드 사건의 경우 당시 <조선일보>가 2단 정도로 자그맣게 처리한 것도 그냥 넘어갑시다.
문제는 ‘자금지원 차단으로 다각적인 경영압박’, ‘대출된 자금의 상환기간 연장 및 추가대부 금지’, ‘각종 취재편의 제공 거부로 취재력 약화와 심리적 위축감 유발’ 등 문건에 적시된 숱한 섬뜩한 ‘대책’들에 대해서는 아예 검증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요즘 진행되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놓고는 명확한 증거제시도 없이 언론탄압이라고 길길이 뛰고 있는 조선이 이처럼 구체적인 언론탄압책이 손에 쥐어졌는데도 거들떠보지 않았다니 참으로 묘한 노릇입니다. 좌경용공신문사는 그런 술책을 써서라도 없애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이번 안기부의 보고서와 <월간조선>의 보도를 보면서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는 각오가 있습니다. 그것은 좌경용공신문이 됐든, 아니면 사회전복세력이 됐든 한겨레는 그동안 추구해온 정신에 더욱 충실히 매진하겠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히려 애초의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독자들의 질책임을 말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kj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