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날기 위해서는 잘 떠야 한다. 잘 내리는 방법이 연착륙이라면, 잘 뜨는 방법은 연이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륙을 위한 활주가 충분해야 한다. 그래야만 온몸에 공기를 품으며 흔들림 없는 위용으로 비상한다. 그러고는 온 세상을 굽어보는 기분 좋은 비행을 하는 것이다. 송골매의 비상을 보았는가. 우리 삶의 성실한 조감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골과 골 사이의 기류를 온몸으로 음미하며 영원히 착륙할 것 같지 않은 송골매의 비행을 연습해야 한다. 송골매는 때론 높게, 때론 낮게, 천천히 소리없이 난다. 송골매의 이 느릿한 긴장의 비행은 목표를 놓치지 않는 관찰과 공격준비를 가능하게 하고, 소리없는 하강은 실패없는 공격 성공률을 보장한다. 송골매적 비상으로 정성스레 그린 우리 삶의 조감도는 모든 비판의 표적을 놓치지 않으며, 쉽게 소외되는 주변부를 상세히 보여주고, 우리 모두가 천년을 간직할 염원들을 일깨워줄 것이다.” 이 글은 내가 꼭 3년 전에 쓴 것이다. 그러니까 98년 봄, IMF 위기의 여파 속에 있던 때였다. 이제 그것을 다시 적게 된다. 질 들뢰즈가 그랬던가, 반복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몇년 전 고국 땅에서 ‘튀다’와 ‘뜨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실제로 세어본 경험도 있다) 들었을 때, 왜 ‘날다’는 없는지 의아해했다. 사람들의 상상력 폭이 그 정도로 제한돼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오늘 당시의 느낌을 되뇌어보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요즘 ‘튄다’, ‘뜬다’라는 말이 쑥 들어갔기 때문이다. 혹자는 ‘날다’를 주장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왜 그것을 염려하느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죽은(아니면 기죽은 척하는) 사람들을 본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 말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 기가 죽은 까닭이다. 튀고 뜨기가 안 먹히니까 모두들 대책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긴 튀고 뜨기의 본질이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튀기와 뜨기, 그러나 기기 상황이 좋을 때, 아니면 거품이 있을 때, 튀고 뜨고 나대기는 쉽다. 그리고 상황이 나쁠 때, 거품이 빠졌을 때, 몸사리기도 쉽다. 그런데 문제는 쉬운 일은 진정한 성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때 나대던 사람들이 주가가 좀 하락하고 실업률이 증가했다고 모두 눈치보며 ‘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예 튀고 뜰 생각도 못해본 서민들보다도 더 몸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야말로 날기를 위한 긴 활주가 필요한 때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에도 해당된다. 현 정부는 출범부터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내세웠다. 개혁은 어렵다. 하지만 개혁을 위한 정초 작업을 한다는 자세로 임하면 수월해진다. 그 어느 것보다 개혁은 튀고, 뜨기가 아니라 날기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개혁의 상당수는 활주에 할애해야 한다. 현 정부 수반의 임기가 거의 40% 남았다. 활주를 위해서는 필요하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정치인을 비롯해 상황이 좋을 때 튀고 뜨기를 자처하던 사람들이 진짜 ‘끼’를 발휘하고 싶으면- 다음 번 상황이 좋을 때 기회 봐서 또다시 튀고 뜰 궁리를 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개인적으로 진정한 실력을 닦고 있거나, 미래의 세대를 위한 ‘날기’를 준비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 줄 궁리를 해야 할 것이다. 김용석/ 전 로마그레고리안대 교수·철학 uchronia@netsg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