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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누워서 그리는 ‘화가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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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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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헤집고 다니는 극렬한 고통에 집안이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분주하게 출근 준비를 하던 아버지와 학교로 향하던 오빠, 언니들의 놀람 속에 어머니는 엉엉 우는 막내딸을 안고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내달렸다. 손끝이 닿기만 해도 기겁을 하고 비명을 지르는 몸을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리저리 용케도 잘 다루며 검사를 마치고는 ‘류머티즘 관절염’이란 병명을 알려줬다.

윤석인 수녀(51·작은예수수녀회 원장)는 이제 그 극렬했던 고통의 시간은 씻은 듯 잊어버렸지만 아프던 날의 날짜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1961년 5월21일 새벽.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뒤로는 학교를 안 가게 됐고 1주일에 꼬박꼬박 2∼3번씩 병원을 다녀야 했지요.”

초등학교 5학년에서 학력을 멈추게 한 병의 심각성도 모르는 어린 마음은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맛난 것을 사주는 엄마가 좋기만 했다. 1년도 채 안 된 그해 겨울, 온몸의 관절이 뻑뻑해져 일어나면 앉기가 거북하고, 앉으면 또 일어나기 거북했다. 친구들과 바깥에서 노는 날도 점점 줄어들었다.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갔고 아픈 지 2년째 되는 해부터는 아예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온전히 누워지내야 했습니다.”

엄마, 아빠, 오빠, 언니 외에는 아무도 못 만났고 책과 라디오, TV를 통해 세상을 보며 어른이 돼갔다. 건강한 두 다리로 오가는 꿈을 꾸다 잠이 깬 아침이면 작은 방 사방 벽이 너무 답답해 목까지 차오르는 눈물을 삼킨 적도 많았다. 그런 속에서도 기질이 활발했던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재떨이를 그리고, 꽃병과 찻잔을 그렸다. 또 엄마 아빠를 그리고, 아기 조카도 그리고, 집안의 모든 것을 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교부들의 신앙>을 읽고 마음속에 커다란 변화를 느꼈다. 어머니를 졸라 근처 성당에 연락하고 신부님으로부터 영세도 받았다. 이후 수녀가 된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기도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작은예수수녀회’에서 생활하게 됐다. 지난 99년 2월에는 원장으로 취임했다.

윤석인 수녀는 이런 자신의 삶을 오롯이 담은 에세이집 <동행>(오늘의 책)을 최근 펴냈다. 이 책에는 그간 누워지내며 줄기차게 그려온 그림도 가득 실려 있다. 지난 3월17일에는 영풍문고 강남점에서 전시회를 겸한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전시회는 3월 말까지 계속된뒤 4월15일∼5월1일 평화화랑(02-727-2336)에서 이어진다. 오는 9월에는 이탈리아 바티칸시티 아데나 화랑에서도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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