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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얼굴 맞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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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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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용석/ 전 로마그레고리안대 교수·철학)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이것은 딸이 엄마를 온라인상에 고발한 사건을 다룬 지난주 <한겨레21> 표지이야기 제목이다. 그리고 이 사건의 원초적 고민은 편집진의 고민으로 이어졌다. “표지이야기를 결정하면서 무척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라는 편집장 칼럼은 이를 잘 대변한다. 즉 공개적인 주제로 ‘이 비극적 가정사를 다룰 것인가’ 고민했다는 이야기다. 그 고민에 이해가 간다. 고발당한 파출소장 엄마의 실명과 친정집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엄마와 내연의 관계에 있다고 추정되는 남자의 실명, 직장명, 본사 및 지사의 전화번호까지 상세하게 밝힌 딸의 고발장은 인터넷의 각 게시판에 올랐고, 고발장 말미에 “이 글을 보신 분은 주저하지 마시고 계속적으로 다른 게시판에 올려주시옵고…”라는 말까지 첨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파출소장 엄마 고발사건의 문명사적 의미

지금까지 열띤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찬반 논쟁은 물론, 당사자들과 친분 관계에 있다는 사람들 나름의 ‘진짜’ 진실의 폭로, 심리학적, 여성학적 분석 등 전문적 견해, 그리고 남의 집안 얘기에 대해 왜 이런 논쟁을 해야 하는지 “이제 그만 합시다”는 식의 논쟁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잡지의 기사에서든 인터넷 토론방의 논쟁에서든, 이 사건이 ‘인터넷 고발’로 문제가 부각되고 확산되었는데도, 아무도 문명적 변화가 가져온 사회적 의미를 지적하지 않은 것이다. 인터넷 사용이 이미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너무 당연한 일이라서 그랬을까?

인간이 문명의 이기를 만들지만 그것은 역으로 인간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더구나 인터넷같이 단순한 도구적 성격을 넘어서는 문명이기는 인간 공동체의 형태와 성격 및 공동체 구성원의 행동을 급격히 바꿔놓는다. 인터넷이 없던 불과 몇년 전이라면 딸은 어떻게 했을까? 가정 내에서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했을까? 아니면 엄마를 곧바로 법정에 고소했을까? 어떤 경우든 더 고민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인간이 문명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필요에 의해서 도구를 찾는 것 이상으로, 도구가 있으니까 사용하는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오늘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명이기다. 그리고 한번 사용하고 나면(한번 인터넷사이트에 띄우고 나면) 돌이킬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 관계에서 다른 해결 방법을 대체한다는 사실이다. 엄마를 고발한 딸은 한편으론 전통적 가족 윤리 속에 있고 그 가치를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첨단 문명이기를 이용한 공개적 해결(그 행동이 전통적 가족관과 배치될 수 있는데도)을 모색한 것이다. 그것으로- 어쩌면 자신도 확실히 의식하지 못한 채- 다른 해결의 가능성을 대체했다.

10여년 전 인터넷의 대중적 보급 초기에 인터넷 전도사 역할을 하던 서구의 일부 학자들은 “이제 인간 관계에서 대면적 친밀성에 대한 향수를 떨쳐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대면적 대화와 토론이 축소 내지 소멸돼가는 세상에 대해서 지금은 매우 회의적이다. 대면적 친밀성에 대한 향수를 떨쳐버릴 것이 아니라,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얼굴을 서로 마주 대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인터넷 보급 시대에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직접적 대면성이 없는 인터넷 사용의 대세 속에서 해결의 창구를 다양화한다는 면에서도 중요하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서구와 달리 오프라인에서 대화와 토론 문화가 넓고 깊게 자리잡지 못한 상태에서 인터넷 시대를 맞았으며 그 보급 속도도 꽤 빠른 편이다. 즉 오프라인에서 충분한 연습이 되지 않은 상태로 온라인 문화에 급히 뛰어든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는 고충은 더욱 큰 것이다.

대화 미흡을 후회한 엄마

이제 우리는 가정 및 사회 공동체에서 얼굴을 마주 대하는 기회가 얼마나 있는지, 지혜롭게 얼굴을 맞댈 줄 아는지,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얼굴을 맞댈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인터뷰에서 엄마는 대화 미흡을 후회했고 딸은 대화 불가능을 역설했다. 이미 감정이 첨예하게 대립된 상황에서 얼굴 마주 보고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일상적 연습이 되어 있을 경우엔 훨씬 더 가능하다(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오프라인에서 대화와 토론을 연습해야 한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얼굴 맞대는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그럴수록 서로 ‘얼굴 맞대기’를 연습해야 한다. 어려운 만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프라인의 전통에 집착하는 것도 온라인의 대세에 밀리는 것도 아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이점을 모두 살려 다양하고 유익하게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김용석/ 전 로마그레고리안대 교수·철학urhronia@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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