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밖에도 왕건은 있다
등록 : 2001-03-13 00:00 수정 :
프리랜서가 대접받기 힘들다고들 하지만, 임종태(35)씨는 “이젠 힘들다는 말은 그만 하련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옹심을 품은 듯한 표현이다. 자력갱생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책을 썼다. 방송가에서 다큐프로그래머로 활동하던 노하우를 십분 살려 쓴 <거꾸로 읽는 드라마 태조 왕건>(선재 펴냄)이 바로 그것이다.
<…태조왕건>은 임씨가 96년부터 <일요스페셜>팀 등과 함께 뛰던 제작경험을 씨줄로, 옛 문헌과 사료를 통독하던 학구열을 날줄로 해서 엮어낸 작품이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개척한 고선지-이정기로 이어지는 고구려 유민사와, 동아시아 해상실크로드를 장악한 장보고-왕건으로 이어지는 백제 유민사이다. 고려 창업을 주도한 패서인과 이들의 관계는 왕건의 후삼국통일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재당 신라인의 후예인 왕건은 궁예와 견훤과는 달리 상인 멘탈리티를 따랐기에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게 임씨의 분석이다.
왕건의 배후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가 연구한 대상은 ‘왜인’. 임씨는 “왜는 일본 열도에 살던 왜인이 아니라, 중국 상하이 아래 주산열도에 살던 강남지방의 해민이었다”고 추정한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오·월’로 불리던 이들은 삼국시대에는 ‘해상백제인’으로, 신라가 들어서자 ‘재당신라인’으로 불렸다가, 송대에는 ‘재송고려인’, 명대에는 ‘왜구’로 이름을 바꿔오며 중국 동해안과 일본 규슈, 그리고 한반도 서남해안에서 광범위한 디아스포라(이산세력)를 형성하고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태조왕건>은 이밖에도 백제 무왕-의자왕 부자와 신라 김용춘-김춘추 부자 사이의 가족사와 뿌리깊은 애증관계도 꼼꼼하고 박진감있게 펼쳐낸다.
우리가 역사적 사건을 주목하는 이유는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알고 현실의 교훈으로 삼기 위한 게 아닐까. 그런 까닭에 “엄청난 제작비의 10분의 1이라도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역사연구에 썼으면 좋겠다“는 임씨의 말은 울림이 크다. 그는 이 책으로 돈을 벌어 지난해 한국방송에서 방영한 <광주항쟁, 그후 20년>에서 채 다루지 못한 내용을 다큐멘터리로 만들 계획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