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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겨레>의 기이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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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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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칼럼’ 등에서 살펴볼 수 있는 노무현 정권과의 거리 두기 실패…‘남 탓’이 지지율 하락의 큰 이유라는 걸 정권과 개혁 언론은 모르는가

▣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한 자릿수와 10%대를 넘나드는 노무현 정권의 낮은 지지율에 대한 책임 공방이 뜨겁다. “대통령 탓인가, 열린우리당 탓인가?”를 놓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내가 더 관심을 갖는 건 “개혁 언론을 포함하여 개혁적 시민사회가 져야 할 책임은 없는가?”라는 물음이다. 나는 “있다”를 넘어 “크다”고 본다. 이런 성찰이 없이 모든 잘못된 책임을 정치인들에게만 돌리면, 앞으로도 시민사회는 투표시를 제외하곤 정치권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팔짱 낀 구경꾼의 신세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개혁적 시민사회의 책임


나는 이 글에선 <한겨레>의 책임만 묻고자 한다. <한겨레>는 지난 4년 내내 너무 ‘겸손’했다. 노 정권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비전이 없었다.

노무현 정권의 낮은 지지율의 책임이 보수언론에만 있는가? 개혁언론을 포함해 개혁적 시민사회가 져야 할 책임은 없는가? 지난해 11월28일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임기중단’발언을 한 뒤 잠시 눈을 감고 쉬고 있다(사진/ 연합 박창기)

언론이 그런 책임감과 비전을 갖는 게 오히려 문제 아닌가? 그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한겨레>는 초당파성을 선언한 신문이 아니라는 걸로 답을 대신할 수 있겠다.

<한겨레>는 내내 노 정권에 끌려다녔다. 당위와 원칙에 비추어 어긋난 점에 대해선 노 정권에 비판을 날렸지만, 노 정권이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을 염려해서였는지 노 정권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강력하게 짚어주지 못했다. 이해할 수 있는 어려움이었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인지는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열성 지지자들이 특정 정치집단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방향이 잘못되었을 경우다. 그 정치집단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열성 지지자들이 맹목적 지지와 더불어 선의의 비판자에게 보복성 반격을 퍼부을 경우, 그들은 충신이 아니라 간신이 된다. 이는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 현대사만 보더라도 숱하게 많이 나타나는 일이다.

<한겨레>에 필요한 건 바로 그런 분별력이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한겨레>는 그런 문제를 지적한 적이 없다. 겉으로 불거져 객관적 사실이 된 과오에 대해서만 비판했을 뿐, 노 정권의 잠재적 과오의 온상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참으로 기이한 침묵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거리 두기’의 실패다. 사례연구로 정치부장을 지낸 선임기자 성한용의 칼럼 몇 개를 살펴보기로 하자. 성한용의 칼럼들이 그간 <한겨레>가 노 정권에 대해 보여온 자세를 농축해 잘 드러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는 반론이 있다면, 그건 다음 기회에 논의하기로 하자.

우선 성한용이 2006년 11월 23일치에 쓴 ‘노무현은 실패해야 하는가’를 차례대로 소개해가면서 내 생각을 말씀드려볼까 한다.

“40대 이상이 드나드는 밥집·술집에 가면 몇 해째 ‘노무현 죽이기’로 방마다 시끄럽다. 옹호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가세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이상한 사람’이 된다. 비판의 소재와 논리는 대개 신문에서 제공한다. ‘시장 제압하겠다는 좌파적 오만부터 버려야’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가’ ‘노 정부 3대 실패-정책·인사·시대인식’ ‘노 정권 내부에 포진한 386 주사파’ 종합 일간지 사설 제목들이다. 언론의 정부 비판은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일부 신문은 좀 지나치다. 악담과 저주 수준이다.”

분명하진 않지만, 성한용은 40대 이상의 ‘노무현 죽이기’를 보수신문 탓으로 보는 것 같다. 보수신문의 ‘악담과 저주’에 큰 책임이 있다고 보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는 노 정권의 생각이기도 한데, 나는 이게 바로 노 정권의 최대 패착이라고 본다. ‘노무현 죽이기’, 아니 ‘노무현 때리기’는 보수적 관점에만 서 있는 게 아니며 40대 이상 남성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왜 반대로 보수신문이 민심 이반의 지점을 포착해 단지 그걸 뻥튀기할 뿐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는 것인가?

강준만 교수는 성한용 선임기자의 칼럼을 분석하며 “노무현 정권의 잠재적 과오의 온상에 대한 <한겨레>의 문제 제기는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분노, 증오 지나 숭배에 이른 ‘보수주의 결정론’

밥집·술집에서의 ‘노무현 때리기’가 위와 같은 보수신문 사설 제목에 충실하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 노무현과 그 일행은 ‘개혁’ 팔아 출세한 ‘신흥 귀족’으로 민생을 어렵게 만든 주범이라는 비판이 압도적으로 많다. ‘좌파·주사파’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는다. 성한용이 다니는 밥집·술집과 내가 다니는 밥집·술집의 차이 때문인가?

<한겨레> 국내부문 편집장 여현호는 2006년 12월11일치 칼럼 ‘무관심은 미움보다 무섭다’에서 <한겨레>를 종이신문 대신 인터넷에서 PDF 파일로 받아보는 모니터 요원들이 통합신당 논의를 둘러싼 여권 안 갈등을 다룬 기사를 읽는 열독률은 대부분 10~20%인 반면, 이명박 관련 기사의 열독률은 71%라고 했다. ‘노무현 때리기’도 옛날 이야기다. 이젠 아예 무관심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게 어찌 보수신문 탓이란 말인가?

보수신문에 아무리 많은 문제가 있다 해도 자꾸 보수신문 탓을 하게 되면 자기성찰이 불가능하게 된다. 노 정권의 보수신문 탓은 처음엔 정당한 분노에서 시작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 증오로 바뀌었고 증오가 무르익어 숭배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미 오래전부터 노 정권의 보수신문 숭배주의는 모든 준거점이 보수신문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대선·총선시 “보수신문의 시대는 끝났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이젠 모든 걸 보수신문 탓으로 돌리는 ‘보수신문 결정론’을 내세우고 있다. 선의를 가진 언론·지식인이 노 정권의 어떤 점을 비판해도, 그 비판의 내용을 성실하게 음미하고 나서 반론을 펴는 게 아니라 보수신문의 비판과 비슷한 점을 찾아내 ‘보수신문식 비판’이라느니 ‘보수신문에 휘둘렸다’느니 하는 비난을 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부동산 문제마저 보수신문 탓을 한다. 일부 지지자들은 노 정권은 잘하려고 했는데 보수신문에 휘둘렸기 때문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보수신문에 돌린다. 아니 보수신문들이 어떤 신문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단 말인가? 보수신문들이 적극 지지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문제도 노 정권이 그들에게 휘둘렸기 때문이란 말인가? 이런 주장은 노 정권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노 정권을 모독하는 것이다.

<한겨레>까지 ‘보수신문 탓’을 들고 나오는 건 노 정권을 돕는 일이 아니다. 보수신문들의 파워는 ‘증폭’ 수준에 있음을 밝히면서 노 정권이 제공한 원인을 바로잡도록 지적해주는 게 <한겨레>가 해야 할 일이다. ‘야당 탓’도 마찬가지다.

성한용은 “작금의 여론을 살피면 ‘정치인 노무현’의 성공은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보수세력의 비난은 본래 그랬다고 치자. 부동산 정책 실패 탓에 현 정부에 한 줌 정도 미련을 갖고 있던 지지층도 고개를 돌리고 있다. 서민들의 불만은 정당하다”며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해야 할까? 노 대통령이 망하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열릴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서민들의 불만이 정당하다면, 그 불만을 초래한 노 정권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그걸 바로잡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게 우선이다. 늦었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한용은 그 대신 ‘한나라당의 집권’까지 거론하면서 노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노 대통령의 임기는 1년 넘게 남았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자칫 ‘거버넌스의 붕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위기의식은 진짜 위기를 부른다. ‘하야’를 요구하지 않으려면 앞뒤를 살펴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이 깊이 성찰해야 한다. 노 대통령을 공격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가 너무 심하게 다치면 나라가 망가진다. 부실 정권을 넘겨받으면 한나라당 손해다.”

노 정권이 할 일은 없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한나라당의 성찰을 촉구하는 게 대안이란 말인가? 정말 노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성한용은 “물론, 노 대통령도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단지 ‘겸손’뿐일까? 대통령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면서 대통령 참모와 측근 인사들이 호전적으로 ‘보수신문 탓, 야당 탓’을 하는 것도 과연 ‘겸손’의 문제일까?

유권자들이 왜 노무현 정권을 욕하는지 제대로 연구하는것이 노 정권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1월9일 개헌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알리는 전광판(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성한용이 <한겨레21> 2006년 12월12일치에 쓴 ‘대통령직 사퇴는 뻥카가 아니다’에도 읽기에 민망한 대목이 있다. 노무현의 ‘임기 중단’ 발언을 다룬 이 기사는 한 언론학 교수의 말을 인용하는 것에서 시작해 한 친노 정치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둘 다 익명 인용이다. 인용이라곤 하지만 긍정하는 내용이기에 기사의 앞뒤로 배치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과 같다.

“처음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다. 지역과 계보에서 자유로운 마이너리티(소수집단)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노 대통령은 정말 탁월한 정치인이다. 말 몇 마디로 온 나라를 뒤집고 있다. 참모들이 정책적으로 뒷받침만 좀 잘해주었더라면 괜찮은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이 노무현이다. 그는 책략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그가 하는 말을 믿든 말든, 그것은 듣는 사람의 자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 대통령이 ‘빈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나름대로 진정성을 가지고 말하고 있다.”

성한용은 기사 마지막에 문장 하나를 보탰는데, 그건 “바야흐로 정국은 ‘노무현발 태풍’ 속으로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른다”이다. 기사를 흥미진진하게 쓰고자 하는 선의를 감안하더라도, 이 기사는 극단적 편향성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의 말에 큰 무게를 둠으로써 노무현의 ‘임기 중단’ 발언에 호의적이라는 느낌마저 주기에 족하다. 이게 과연 그렇게 봐도 괜찮은 사안인가?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모독해도 되느냐고 꼬집을 수는 없었던 걸까?

성한용은 2007년 1월3일치 칼럼 ‘이명박은 구세주가 아니다’에선 “노 대통령을 미워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자.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번 잘 생각해보자. 혹시 우리의 수준이 바로 노 대통령의 수준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 대통령은 이명박이다. 그가 잘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왕’을,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왕도 구세주도 아니다. 혼자 ‘통치’하기에 세상은 매우 복잡하다. 우리가 생각을 바꿔먹지 않는 한 ‘이명박 대통령’도 반드시 실패한다. 물론 대통령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 한 사람에게 국가의 운명을 몽땅 맡기고 뒤에서 욕만 해댄다면 그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새해를 맞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택’이 아니라, ‘각성’인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죽으면 경제도 죽고 나라도 죽는다.”

독하게 꾸짖어라

원론적으로 옳은 말씀이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노무현에게 국가의 운명을 몽땅 맡기고 뒤에서 욕만 해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이명박을 구세주로 보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성한용은 2006년 4월14일치 칼럼 ‘옛것은 가고 새것은 온다’에서 당시 서울시장 후보 강금실·오세훈에 대해 “기존 정치인들은 두 사람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왜 두 사람에게 환호하는지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왜 이 원리가 노무현과 노 정권에겐 적용될 수 없단 말인가? 왜 한때 환호했던 유권자들이 노 정권을 욕하는지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걸까? 그 이유가 단지 유권자들의 ‘구세주 중독증’이란 말인가?

담론의 층위를 그렇게 올려잡지 말고 2004년의 성한용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성한용은 2004년 5월19일치에 쓴 ‘17대 초선 만세’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17대 국회의 새로운 정치 지형에서 새로운 정치인들이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조해나갈 것을 확신한다”고 했다. 성한용은 2004년 12월31일치에 쓴 ‘17대 국회 오해와 진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선 17대 국회에 대해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내년에는 훨씬 더 나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성한용의 확신은 성사됐는가?

<한겨레>가 노 정권의 낮은 지지율 책임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연재물을 기획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주는 일을 하면 안 되는 걸까? 설사 ‘보수신문 탓, 야당 탓’이 백번 옳더라도 그건 내부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일 뿐, 국민들 앞에선 입에 올려선 안 될 말이라고 독하게 꾸짖어줄 수는 없는 걸까? 바로 그런 ‘남 탓’이 지지율 하락의 큰 이유라는 걸 노 정권이나 <한겨레> 모두 모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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