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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주총장의 독사, “주총을 바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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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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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적이고 후진적인 주총 문화를 확 바꿔놓을 겁니다.”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약속 장소에 나타난 이후용(61)씨는 대면 첫 마디부터 핏대를 올렸다.

“방금(3월5일 오전)도 ㅅ사 주총장에 갔다오는 길인데, 여전히 엉망이더군요. 소액주주들한테는 발언권도 제대로 주지 않고…. 그나마 어렵사리 발언권을 얻었더라도 회사쪽 잘못을 지적하려 들면 마이크를 뺏어가고…. 10분, 15분 만에 날치기로 안건을 통과시키는 행태가 줄어든 게 좀 나아진 점이라고 할까.”

이씨는 요즘 ‘경제정의 주총감시단’이라는 이름의 시민단체를 출범시키기 위해 발에 땀을 내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준비해왔으며 올해 5월 이전에 감시단을 정식으로 발족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3월9일에는 뜻을 같이하는 30명 안팎의 발기인들이 모임을 갖고 출범시기 등을 최종 점검할 예정이다. 주총 감시단은 소액주주들의 주총 참여를 독려하고, 기업들의 비민주적인 주총 진행에 제동을 거는 데 주력하게 된다.

그가 이런 일에 뛰어든 것은 ‘주식’에 얽힌 특별한 사연에서 비롯됐다. 전북 부안 출신인 이씨는 건설 호황기이던 지난 70년대 건설업과 운수업을 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뒤 주식에 손을 대면서 적지않은 손해를 보았다. 그가 가진 주식의 값이 한때 17억원을 웃돌았지만 지금은 3억원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값이 떨어져 있다. 이씨가 투자하고 있는 회사는 무려 50군데에 이른다. 가족 명의까지 동원해 적게는 1주, 많게는 1천주까지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주총철이 되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이다.

“주총장을 쫓아다니다보면, 속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요즘은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소액주주들을 박대하고, 총회꾼을 동원해 얼렁뚱당 안건을 처리해버리는 일이 여전합니다. 기업들이 짜고 주총을 한날 한시에 열어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막는 일도 많고…. 혼자 불평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을 모아보자고 나선 겁니다.”

‘관악산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대표이기도 한 이씨는 지난해 서울대와 한판 싸움을 벌여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이씨를 비롯한 관악구 주민 100여명이 서울시에 청원을 넣어, 관악산 중턱을 깎아 건물을 신축해온 서울대의 마구잡이 개발에 제동을 건 것이다. ‘환경 감시’에서 ‘주총 감시’로까지 오지랖이 넓어진 이씨의 발걸음이 주목된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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