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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김소희] 연기는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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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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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그것은 굿로맨스다>에 배우로 출연… 감독의 OK 사인을 듣기까지 계속 망가졌다

연출부 막내가 들고 있는 딱딱이(슬레이트)는 후반작업을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술이 화근이었다. 스태프들이 한잔, 두잔 가져다준 데킬라에 그만 취해버렸다. 가장 긴 신이니 감정선이 잘 살아야 한다며 감독은 자꾸 술을 권했다. 긴장하고 있던 나는 주는 대로 마셨다. 기분이 좋아졌다. 급기야 연기를 하는지 주정을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됐다. 그제야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내가 맡은 배역은 남녀주인공이 즐겨찾던 시골읍내 한 술집의 여주인. 30대 후반으로 세상사 이꼴저꼴 다본 신산스런 여자다. 게다가 알코올중독자이기도 하다.

마지막 신은 여자주인공과 내가 술을 먹다 마음이 동해 함께 춤을 추는 장면. 꽤 길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촬영이 끝나고도 내가 계속 혼자 춤을 췄다고 한다.


촬영이 끝나고도 연기는 계속되고

정신을 차리고 난 지금, 걱정이다. 영화를 망친 게 아닐까. 내가 너무 대책없이 취해서 감독이 포기한 건 아닐까. 다시 찍어야 하는데 장소대여 시간 때문에 그냥 넘어간 건 아닐까. 디지털영화이기에 망정이지 만약 필름영화였다면 얼마나 미웠을까.

지난해 가을 친하게 지내던 영화감독 이송희일이 출연제의를 해왔다. 독립영화집단 ‘젊은영화’의 멤버인 그는 6개의 단편모음 프로젝트인 ‘곤돌라21’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그가 나에게 맡겼던 배역은 다방 레지 역. 단역이었다. 시나리오가 당선돼 한 필름사에서 돈을 지원받게 된 이송희일은 약간 흥분한 상태였던 모양이다. 심지어 나에게 나중에 주연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한 단편에 등장하는 주연과 조연, 엑스트라들이 다음 단편에서는 배역 비중이 바뀌는 방식으로 연결되는 시리즈물이라는 것이다. 이송희일은 자기는 배우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기 때문에 연기력은 걱정하지 말라는 그럴듯한 말도 덧붙였다.

나는 이참에 아예 전직을 해버려, 하는 오만한 생각까지 갖고 냉큼 수락했다. 두달 뒤 전화가 걸려왔다. 그 사이 최소한 몸무게를 5kg은 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거꾸로 그만큼 살이 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주저하며 전화를 받았다. 감독 왈, “살 뺐어요?” 나의 답변, “그게 저…”. 이어진 감독의 말 “살 뺐으면 안 되는데, 다른 거 찍기로 했거든요”. 그래 역시 운명의 여신은 내 편이야. 감독은 ‘곤돌라21’ 프로젝트가 잠깐 보류됐다면서 그 사이 디지털 작품을 하나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게 바로 이번에 출연한 독립영화 <그것은 굿로맨스다>(가제)이다. 감독은 술집마담 역이니 평소에 술마시던 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다만 여자주인공과 레즈비언적 자매애가 통하는 느낌만 잘 살려달라고 주문했다. 술집에서 여자들과 친해지는 건 내 전문이니, 어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영화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돈문제, 촬영감독 구하는 문제로 애를 먹었다. 정작 모든 게 해결되고 난 뒤에는 남자 주연배우를 구하는 문제가 난항에 부딪혔다. 제작진이 길거리 헌팅도 하고 기획사도 쫓아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대본대로 외워서 하는 연기가 아니라 출연자들도 자기 대사를 만들어가는 일종의 ‘집체극’ 작업이기 때문에 더욱 배우 선정에 고심했던 모양이다. 2월 초에는 어렵게 구한 남자배우가 촬영 직전 가족이 말린다며 거절하는 바람에 일정이 또 한번 연기됐다. 그 사이 조연인 나는 나대로 애가 탔다. 영화 찍는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는데 말이다.

작품성으로부터 독립할 거라는 악담(?)까지

내가 독립영화에 출연한다고 하자 <한겨레21>의 선배와 동료들은 모두 한마디씩 해댔다. “요즘 배우가 그렇게 없나.” “혹시 친분을 미끼로 협박했거나 돈 갖다 바치고 출연하는 거 아냐?” 심지어 “그 영화는 상업성뿐 아니라 작품성으로부터도 확실히 독립할 거야”라는 악담(?)까지 하며 놀려댔다.

촬영은 3월3일 토요일 대학로의 작은 카페 ‘나무요일’에서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다. 이미 20여일 전부터 경기도 전곡, 서울 화양리, 어린이대공원 등지에서 진행해왔던 촬영의 마지막분이었다. 영화의 모티브는 얼마 전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부녀와 고교생과의 교제사건이다.

30대 초반의 여자주인공 미현(박미현)은 서울에 산다. 그는 가끔 경기도의 한 읍에 사는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 원규(이영훈)를 만나러 온다. 미현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지 않고, 원규는 그런 미현을 야속해한다. 그래서 발작적으로 다른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미현은 미현대로 원규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현실화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끝내 원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못한다. 두 사람은 과연 원조교제를 한 것일까? 그러기에는 둘의 관계가 너무나 미묘하고 처연하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일까? 영화는 곧바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몇 마디의 대사와 분위기로 사랑에는 여러 가지 빛깔이 있다는 것을 암시할 따름이다. 어쨌거나 등장인물은 주연 두명에 조연 두명. 내가 맡은 역은 감독의 말과는 달리 쉽지 않은 배역이었다.

시나리오를 받아든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사실 내가 무슨 연기를 아는가. 학교 다닐 때 풍물패를 했던 것과 사이코드라마반을 기웃거린 경험밖에 없는데.

대학로 카페에서 찍은 대목은 영화의 피날레 장면이다. 두 사람이 즐겨찾던 술집에 여자주인공 미현이 혼자 와서 술을 마신다. 마담은 둘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지만 모른척한다. 나의 첫 대사는 “오늘은 어째 혼자네. 그 동생은?”이었다. 그리고 맥주를 따준 다음 돌아서며 “언니, 오늘 기분이 영 안 좋아 보인다”라고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한 열번쯤 연습을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심각했고, 그 다음에는 너무 쌀쌀맞았고, 나중에는 너무 푼수 같았다. 게다가 실수로 연습도중에도 맥주병 뚜껑을 자꾸 땄다. 맘씨 좋은 주인이 대여료도 안 받고 빌려줬다는데 민폐까지 끼치다니. 촬영장소는 이 영화의 프로듀서 김일권씨가 즐겨찾는 단골카페이다. 영화에서 술집의 ‘죽돌이’(단골)로 잠깐 뒷모습을 비추는 이가 그다.

더욱 어려웠던 건 이 장면이 과거 장면과 교차된다는 것. 내가 맥주를 가져다주고 돌아선 사이 카메라는 잠깐 여자주인공을 비춘다. 그러면 남자주인공이 와서 맞은편에 앉고 나는 재빠리 옷을 갈아입은 뒤 과거의 한 장면처럼 태연하게 구두 소리를 딸각딸각 내며 그들을 지나친다. 불과 10초 사이에 웃옷을 벗고 조끼를 입은 뒤 머리를 묶어야 했다. 진땀이 다 났다. 오전은 이 한 장면을 찍느라고 다 보냈다. 평소에 영화를 보면서 땅콩까먹듯이 쉽게 연기평을 했던 게 후회됐다.

루주 분장도 소화하기 어려웠지만…

독립영화배우는 1인 다역을 해야한다. 영화촬영을 위해 화장을 하고 있는 김소희 기자.
촬영현장에서는 모든 것이 다 매끄럽게 궁합이 맞아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조명과 녹음은 물론, 소품과 배경, 심지어 엑스트라의 동작이나 그림자 하나하나까지. 잠깐 쉬는 사이 거울을 보니 루주가 다 번져 있었다. 입술을 빠는 습관이 있는 나는 영 루주 바르는 게 어색했다. 사실 손톱 바르는 것도 힘들었다. 연출부 기획담당자가 손톱이 길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전날 명동을 누비며 ‘붙이는 손톱’을 찾았다. 전문매장에 가보니 손가락 하나당 1만원, 모두 10만원이라고 했다. 결국 포기하고 매니큐어만 샀다. 독립영화배우의 길은 간단치가 않았다. 화장은 물론 옷과 장식 준비까지 스스로 해야 한다. 필요하면 스태프 역할까지 해야 한다.

오후 1시께 <한겨레21> 김은형 기자가 현장에 나타났다. 흔히 엑스트라라고 하지만 본인은 ‘우정출연’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배역은 이 술집의 종업원. 사전 제작회의에서 내가 그를 적극 추천하자, 엑스트라 한명에게 주는 비용도 아쉬운 감독은 당연히 반색을 했다.

마침 촬영날이 기사마감일이라 실제로 밤을 새운 김은형은 부스스한 몰골로 나타났다. 딱 맞는 분위기였다. 그는 ‘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물고 음반을 꺼내 이리저리 뒤집는 동작을 보여야 했다. 촬영이 길어지는 바람에 그도 속절없이 계속 음반을 뒤집어야 했다. 김은형의 분위기를 보더니 감독은 기왕이면 마지막 춤추는 신에 또 한번 등장해달라고 부탁했다. 오로지 “담배를 물고 음반을 뒤집기 위해” 김은형은 끝날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독립된 영화를 위해 청춘을 사르는 사람들

요즘 충무로는 스태프 기근이라고 한다. 그래서 독립영화집단에서는 서로 스태프를 품앗이 한다. 디지털영화는 저예산 독립영화그룹에게는 혁명적인 기재다. 제작비도 싸게 먹히고 필름을 여러 번 ‘프린트 뜰’ 필요도 없다. 하지만 디지털전용영화관이 없는 우리나라 형편에서는 찍어도 문제다. 디지털영화를 필름영화로 바꾸려면 키네코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키네코 기술이 발달한 일본의 경우 최고화질로 할 때는 10분에 1천만원선이다. 한국의 경우 아직 기술이 훌륭한 수준은 아니지만 30분을 기본으로 할 때 최소 600만∼700만원은 든다고 한다. 키네코 회사를 통하지 않고 ‘야매’로 할 때는 300만∼500만원 정도가 된다. <눈물>이 바로 디지털로 찍어서 키네코 작업을 거친 영화. 6천만원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송희일 감독은 5월에 있는 몇몇 영화제 출품을 원하고 있지만, 후반작업 비용을 구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사업체와 상영을 전제로 돈을 지원받아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영화제 출품은 일정상 어려울 수도 있다.

아무리 사서하는 고생이라고 하지만, 상업성으로부터 독립된 작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청춘을 불태우는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돈이 뚝뚝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보니 연출부 스태프들 대부분은 ‘프리터’로 생활한다. 조연출은 틈틈이 페인트공으로 일하고, 기획담당자는 학원강사로 뛴다. 감독은 워크숍을 진행하거나 글을 기고해서 생계를 해결한다. 모두들 제작 특성상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나니 문제가 생겼다. 점심나절부터 내리던 비가 거의 폭우로 변해 있었다. 녹음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유달리 눈이 많이 온 2월이기에 이미 앞선 촬영분은 다 흰눈이 배경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비소리라니. 할 수 없이 스태프 몇명이 의자를 들고 나가서 큰 우산을 펴들고 문가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비를 막았다.

다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감독이 “레디”를 외치면 촬영감독이 “카메라”라고 외치고 촬영을 시작한다. 이어 녹음기사가 “스피드”라고 하는 건 녹음을 시작했다는 뜻. 그러면 연출부의 막내가 카메라 앞에서 딱딱이(슬레이터)를 친다. 이 딱딱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화면에서 딱 부딪히는 순간과 녹음기에서 나는 딱 소리를 맞춰야 후반작업에서 사운드가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다음 신에서 딱딱이까지 치고 감독이 액션을 외치기 직전이었다. 또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거리에서 트럭행상의 확성기 소리가 왕왕대며 들려온 것이다. 촬영현장이 대학로 안쪽의 주택가에 위치한 탓이다. 중간중간 자동차 시동거는 소리, 오토바이 소리, 개짖는 소리 때문에 촬영을 멈추곤 했는데, 이번 소리는 꽤 길게 갔다. 결국 스태프 한명이 나가서 사정해야 했다.

배우의 길 포기(?)… “기자로 남으련다”

이번에는 여자주인공과 같이 술마시며 친해지는 장면이다. 감독은 내 역할에서 연상되는 이를 찾아보라고 했다. 지난해 광주에 출장갔을 때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던 여주인을 떠올렸다. “내가 그날 기분이 꿀꿀했거든”이라고 웅얼거리는 대목에서는 최근 가장 기분나빴던 사람을 떠올리라고 했다. 거짓말처럼 그 사람을 떠올리니 좀 나았다. 감독은 오케이 사인을 내며 “낫 배드”라고 덧붙였다. 다행이다. ‘베리배드싱’은 아니다.

촬영은 저녁 8시 가까워서야 끝났다. 원래 넉넉잡아 5시 전에 끝내기로 했던 것이다. 전날에는 새벽 2시 반까지 강행군을 했다고 한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주인과 기다리던 손님들이 들어왔다. 조명을 내리고 벽에 붙였던 종이들을 다 뗐다.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대학로의 한 밥집에 모여앉았다. 촬영중에 마신 술로 이때까지 취해 있던 나는 계속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배우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계속 그냥 기자로 남는 게 낫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지껄였던 것 같다.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부장이었다. 이번호에 쓰기로 한 다른 기사 때문이었다. “김소희씨, 지금 뭐하는 거야. 기사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마감을 안 지켜, 엉?”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술이 확 깼다. 나는 후닥닥 일어나 사무실로 왔다. 현실은 영화보다 때론 더 극적이다.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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