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강남 광란은 지방의 복수다

638
등록 : 2006-12-06 00:00 수정 :

크게 작게

강남 아파트값 폭등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지방의 남아도는 돈이 몰린 탓…모두가 피해 입는 ‘너 죽고 나 죽기’ 복수극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가

▣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지방지 기자입니다. 강준만의 세상읽기 ‘지방 촌놈들은 당해도 싸다?’를 읽고 느낀 점을 말하고자 합니다. 우선 손학규 지사에게 수도권 규제 철폐에 대해 의견을 물었던 기사는 저희 신문 지면으로 나갔습니다. 지방 기자들이 이런 문제의식도 없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글은 그나마 지방지 중 영향력이 있는 신문에서 일한다던 자부심에 실망을 안겨줬습니다. 다음으로 느낀 것은 교수님 역시 승자독식 뉘앙스로 지방의 수준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방 사람들이 보수신문을 끊는 것 정도에 그친 대안도 아쉽습니다. 교수님 정도의 안목으로는 이것보다 훨씬 나은 진단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마감에 바쁜 지방의 한 초짜 기자가 남깁니다. 뚱뚜르.”

타워팰리스. 이는 강남과 강북을 가르고, 지방과 강남을 가르는 상징적 건축물이다. 강남은 강북을 빨아들일 뿐 아니라 지방의 돈과 사람도 빨아들인다.(사진/한겨레21)


대책 없이 지방에 푼 토지보상비 50조원

<한겨레21>의 631호 ‘독자와 함께’에 실린 한 독자의 말씀이다. 감사드린다. 무슨 주제로건 강하게 쓴 글에 대해 자주 접하는 반응 중의 하나라 별 신경쓰지 않고 넘어갔는데, 최근 터진 부동산 파동과 그 근원이라 할 ‘강남 광란’은 ‘죽어가는 지방’의 복수라는 생각이 들어 이 이야기를 하면서 상호 관련된 위 비판에 뒤늦게나마 성실한 답을 드리고자 한다.

지방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 부산·대구 등 일부 영남지역과 다른 지역 사이엔 워낙 격차가 크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싸잡아 ‘지방’으로 부르는 게 온당한가 하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격차가 바로 신문이다. 부산·대구에서 가장 많이 구독되는 신문은 중앙지가 아니라 부산·대구 지역 일간지다. 최근 한국광고주협회의 조사에선 <부산일보>의 가구 구독률은 16%로 2등인 <조선일보>를 두 배 이상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건 호남·충청·강원 지역에선 꿈도 꿀 수 없는 호사다. 최근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의 전체 지역신문 구독률은 광주·전남 6.7%, 강원 6.3%, 충북 4.6%, 전북 3.7%, 대전·충남 3.4% 등으로 나타났다. 전북의 경우 27가구당 1가구꼴로 지역신문을 구독한다는 뜻이다.

나는 ‘뚱뚜르’님이 부산이나 대구에서 일하는 기자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말씀하신 ‘자부심’과 ‘실망’을 이해한다. 내가 ‘부산·대구를 제외한 지방’이라고 말했더라면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나는 손학규와 관련해선 중앙지를 더 문제 삼았거니와 중앙지와 전북 일간지를 포함해 내가 본 십수 개의 일간지에 그런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는 나의 생각에 무리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뚱뚜르’님은 내가 “승자독식 뉘앙스로 지방의 수준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혐의를 제기하셨는데, 나는 오히려 평소 지방의 수준을 과대평가하는 것 아니냐는 정반대의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주시면 좋겠다. 대충 모든 사람 듣기 좋게 부드럽게 이야기하느냐 아니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핵심을 콕 찔러 이야기하느냐 하는 글쓰기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로 이해해주시면 고맙겠다.

‘뚱뚜르’님은 “지방 사람들이 보수신문을 끊는 것 정도에 그친 대안”도 아쉽다고 했는데, 나는 그걸 ‘대안’으로 제시한 게 아니라 지방이 차별받는다고 아우성치는 지방 사람들이 “수도권 규제 철폐를 외치는 보수신문들을 열심히 구독”하는 현실을 지적한 것뿐이다. 지방민들이 이른바 ‘스톡홀름 신드롬’의 덫에 걸려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지역 공론장 키우기’이지만, 부산·대구를 제외한 지역은 그 일이 거의 불가능해 부끄럽게도 계속 고민만 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겠다. ‘강남 광란’은 ‘죽어가는 지방’의 복수라는 가설은 그럴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강남 아파트값 폭등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지방의 남아도는 돈이 몰린 탓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을 앞세운 개발정책으로 2003년부터 올해까지 지방에 푼 토지보상비가 50조원 이상이나 된다. 이에 대해 무슨 대책이 있을 걸로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아무것도 없었다. 정부의 그런 무모함에 경악할 일이지만, 사실이었다.

오래전부터 지방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지방에 부동산 투자(투기)를 하지 않고 수도권 부동산 시장으로 향한다는 건 상식이었다. 경제원리상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 수도권 부동산 투자 수익률이 지방의 수배에서 수십 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걸 그대로 내버려두고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기를 기대한다는 건 미친 짓이지만, 여태까지 정부는 그 미친 짓을 당당하게 해온 셈이다.

한 대기업 지방 공장의 지방세는 납부세액의 0.22%

부동산만 그런 게 아니다. 금융은 어떤가. 최근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 앞서 배포한 자료에서 한국은행 통계를 인용해 “올 7월 말 기준으로 지방에서 조성된 자금 468조1천억원 중 대출된 338조원가량을 제외한 129조3천억원이 수도권으로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지역에서 조성된 총자금(총수신) 468조1천억원의 27.6%에 달하는 규모”라고 밝혔다. 그는 “돈 균형 없는 지역 균형발전은 허구”라며 우체국 자금 일부의 지방환원 의무화, 자산운용사의 지방기업 회사채 매입 의무 부과 등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역 균형발전과 수도 이전 정책은 지방에 엄청난 돈을 뿌렸다. 그 돈은 다시 강남의 부동산 광풍으로 흘러 들어갔을까? 행정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의 한적한 시골 마을까지 들어온 부동산 중개업소.

조세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방에서 기업을 유치하더라도 세수의 대부분은 중앙정부로 이전되기 때문에 지방의 세수입 증대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1996년부터 2003년까지 하이트맥주 홍천공장의 조세 납부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방세는 전체 납부세액의 0.2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정책은 어떤가. 서울과 지방 간 의료 양극화 현상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수도권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지방 환자 수는 194만4510명, 의료비는 1조1083억원으로 2003년에 비해 각각 14%와 32%가 늘어났다.

교육정책도 마찬가지다. ‘대학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서울 소재 대학 키우기가 이뤄지고 있다. 지방은 이중으로 죽는다. 지방대학도 죽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 재학생 40만여 명 가운데 지방 출신은 절반가량인 20만 명이나 되며, 지방 학부모들이 서울로 보내는 등록금·하숙비 등은 연간 1조원이 넘기 때문이다.

전엔 방학을 이용해 지방 학생들이 강남 학원가로 몰려가더니 이젠 연중 내내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행기에 KTX까지 동원해 당일치기로 강남 학원을 다녀오는 지방 학생들이 많다는 건 이젠 상식이 되었다.

지금 대학입시 논술 시즌을 맞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보라. 지방에서 강남으로의 대탈출이 벌어지고 있다. “지방 학생은 논술 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집단인데도 서울 학생보다 논술 점수가 높았다”는 서울대의 결론을 믿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강남 논술학원들이 버스까지 대절해 지방 학생들을 ‘모셔가는’ 현실을 감안하고서 한 이야기인지는 의문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대표 김세균(서울대 교수)은 “대입 논술 때문에 온 국민이 고통받는데 서울대는 시험지만 보고 학원 논술을 가려낼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는 것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몰려드는 지방 학생들로 잠잘 곳을 찾기 어렵게 되자 서울 강남의 일부 학원들은 1박에 5만원 하는 ‘홈스테이’까지 알선해주고 있다. 지방 고등학교들은 학생들의 강남 논술 원정을 ‘체험학습’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강남 체험’인가? 논술만 그런 게 아니다. 예체능계 지원 학생들도 최종 마무리는 서울 학원에서 해야 한다며 수백만원씩 돈 보따리를 싸들고 서울로 홍수처럼 밀려가고 있다.

강남에 걸린 부동산·사교육 과부하는 지금과 같은 ‘지방 죽이기’를 그대로 내버려두고선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럴 때에 비로소 부동산·금융·조세·보건·교육정책은 상호 분리될 수 없으며, 지금 분리된 채로 이루어지고 있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이의 제기도 강하게 이루어져 교정을 시도할 수 있다.

‘강남 상류층’과 ‘강남 주민’의 차이

최근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13개 광역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 13명(시·도별 1명)으로 구성된 지역균형발전협의체는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48%, 생산 기능 60%, 경제·사회·문화의 중추 기능 80%가 집중돼 있음에도 국가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 지방의 공멸을 초래하고 있다”는 항의 성명을 발표했지만, 가장 중요한 걸 빠트렸다. 그건 바로 대학이다. 이건 양적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대학 서열 구조로 봐야 한다. 90% 이상의 서울 집중도라고 보는 게 옳다. 그럼에도 지금 서울 소재 대학들은 수도권에 새 캠퍼스 건립 계획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방대에 아무리 돈을 대줘도 서울 소재 대학들이 비대해지면 지방에서 서울과 강남을 향한 진군의 규모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지방으로 정부기관·공기업을 아무리 이전한다 해도 공무원·공기업 직원들은 자녀 교육을 이유로 지방으로 이사가지 않는다. 원룸으로 해결한다. 주말부부의 고행을 견디면서 수도권 교통량만 폭증시킬 뿐이다. 이게 바로 이른바 ‘강남 불패(不敗)’를 계속 이어가게 하는 조건이 된다.

지난 10년간 강남의 ‘자가(自家) 점유율’은 60%대에서 37%로 떨어졌다. 강남에선 자기 집에 자기가 사는 가구의 비율이 37%요, 나머지 63%는 전·월세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강남의 전세 비용이면 강북에 집을 살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러는 걸까? 과연 이게 의미하는 게 무얼까? 강남 문제를 부동산 정책만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경제·사회·문화의 중추 기능 80%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의 박탈감 또한 심각하다.(사진/한겨레 김진수 기자)

강남에 전·월세 사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지방 사람들이다. 자녀교육 때문에 자녀만 강남으로 보낸 지방 사람들도 많다. 강남에 여러 채의 아파트를 갖고 있는 ‘강남 상류층’과 일반적인 ‘강남 주민’은 구별되어야 한다. 강남 문제는 사람들의 ‘탐욕’을 탓하는 도덕주의 방식으론 해결할 수 없으며, 강남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면 올바른 정책 수립의 동력이 약화된다는 점에 주목하면 좋겠다. 이게 의외로 잘 지켜지지 않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비판·비난을 하려면 그 대상은 정부와 고위 공직자들이어야 한다.

2004년 6월 대통령 노무현이 “10배 남는 장사도 있다”는 논리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했을 때 열린우리당 의원 김근태는 “계급장을 떼고 논쟁하자”고 나섰지만, 유시민 등 친노 세력의 반격에 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때 보수신문들은 노무현을 격찬하고 나섰다. 김근태가 독한 마음 먹고 밀어붙였더라면 지금과 같은 부동산 광풍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의 운명과 김근태의 위상도 크게 달라졌을 텐데, 이런 비극이 없다.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로 인한 부작용이 없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어떤 정책이건 부작용은 있기 마련인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해놓고 보완책을 강구하는 게 올바른 방식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걸 말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보자면 보수신문들의 죄도 크다. 참여정부의 정략적인 그래서 어설픈 지역 균형개발 정책에 일이 되게끔 선의의 조언과 비판을 해주기보다는 사사건건 ‘반(反)지역균형’ 비판·비난만 일삼는 보수신문들은 사실상 체제 전복 세력에 가깝다. 강남과 서울과 수도권이 미어터져 폭발하기를 기다리는 불순 혁명세력이라고나 할까. 이들을 규제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의 개정이 필요한 건 아닐까.

수도권이 미어터져 폭발했으면 하는가

현 서울공화국 체제의 기득권을 적극 누리고 사는 비강남 사람이 강남을 비판하는 건 모순이자 위선이다. 그런 이중적 태도가 ‘강남 광란’을 만든다. ‘강남 광란’은 ‘죽어가는 지방’의 복수지만, 의도한 복수는 아니며 모두가 피해를 입는 ‘너 죽고 나 죽기’의 복수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복수극을 계속해야 하는가? 언젠가 <전남매일> 편집국장 박호재는 “서울공화국이여 영원하라.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그렇듯 한없이 커지다 보면 필자가 살고 있는 이곳 광주도 언젠가는 수도권이 될 테니까”라고 개탄 아니 절규했는데, 정녕 우리는 그 길로 가야만 하는가?

나는 지난 18년간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해왔지만 사정은 계속 악화될 뿐 아무런 변화도 없어 이젠 지칠 대로 지쳤다. 강하게 말하면 서울보다는 지방에서 더 욕을 먹으니, 이게 사람 할 짓이 아니다. 나도 이젠 이 문제에 대해 입 닫고 싶다. 그럼에도 또 입을 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으니 독자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랄 뿐이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