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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책, 아싹아싹 깨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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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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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하고 요약본을 읽게 하는 수능의 논술은 사과맛 비타민 알약…책에 질려버린 친구 딸과 7살 꼬마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나, 당분간 책 안 읽을 거예요.”

지난주 수능고사를 친 친구 딸에게 이런 황당한 말을 들었다. 내가 전화해서 시험공부 하느라 애썼다, 이제부터 잠도 실컷 자고 책도 실컷 봐라, 했더니 톡 쏘듯 한 말이다. 나만 보면 무슨 책이 재밌냐고 묻는 이 아이는 평소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잘 써 논술에 자신 있어 했다. 논술학원 선생님들도 이름만 똑바로 쓰면 무조건 된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논술 반영률이 높은 수시에서 줄줄이 낙방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렇지, 시험에 떨어졌다고 왜 책을 안 보겠대?


“아줌마, 무슨 시험 보세요?”

오늘 그 친구네 집에 갔다가 그 이유를 알았다. 거실 소파 위에 눈에 익은 붉은 표지의 <체 게바라 평전>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이 아주 가관이다. 갈피마다 각가지 색깔의 포스티잇이 붙어 있고 군데군데 접은 페이지에는 형광펜으로 “★★★★★ 반드시 외울 것”이라고 써 있었다. 밑줄도 총천연색으로 쳐 있었다.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책이 교과서나 참고서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외우고 분석하며 읽어야 하는 건가? 친구 말로는 요즘 논술 공부는 그렇게 한다니, 나라도 이렇게 했다간 책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사라지고 말겠다.

요즘에는 논술을 조기 준비하느라 초등학생에게까지 니체를 가르친다고 한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까. 한 대안학교에서 학생 세 명이 한 권의 만화책을 함께 보고 있다. (사진 / 한겨레 김태형 기자)

아이의 책장을 보고는 더 놀랐다. 루소의 <에밀>과 스피노자, 데카르트 사상 요약 정리본, <폭풍의 언덕> 등 문학작품의 요약본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그런 사상, 철학서를 논술 필독서로 정한 분들도 다 생각이 있겠지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대학 전공서적에 가까운 책들을 읽을 시간도 사고의 여유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시험에 난다니 학원에서 요약해놓은 자료라도 공부할 수밖에.

더구나 문학작품의 요약본이라니? 문학작품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사과 한 알을 오감으로 충분히 음미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먹기 전에는 사과의 모양과 색깔과 향기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는 새콤달콤한 맛과 아삭 씹히는 감촉까지를 고스란히 느끼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반면, 요약본이란 이 소중한 감정들은 무시한 채 그저 사과를 비타민C의 조달처로만 여기며 사과맛 비타민 알약을 먹는 것과 같다고 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학작품은 절대로 요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 그게 논술하고 얽혀 있어 시험을 보려면 줄거리라도 알아야 한다니 차마 요약본 보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속쓰리다. 아무튼 이렇게 정작 사과는 구경도 못하고 지겹게 사과맛 비타민 정제만 먹어야 했던 아이들에게 책이란 그저 논술을 잘 보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몇 달 전 여의도공원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6, 7살 정도 된 꼬마가 날 한참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아줌마, 무슨 시험 보세요?”

“아닌데. 왜?”

“시험도 안 보면서 왜 책을 읽어요?”

“재미있으니까 읽지.”

“네? 책이 재미있어요? 난 하나도 재미없는데….”

“뭐라구?”

“엄마가 읽으라고 해서 읽는 거라구요. (작은 소리로) 이그 지겨워….”

이 아이 역시 책이 이끄는 이야기의 바다에 빠져보기도 전에 책이란 그저 학습의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요즘에는 그놈의 논술을 조기 준비하느라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니체를 가르치고 있다니 정말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 것인가. 논술고사의 원래 취지가 이런 게 절대로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다행히(?) 논술이 없을 때 학창시절을 보낸 덕에 독서의 즐거움을 십분 누리며 지낼 수 있었다. 그때라고 입시경쟁이 치열하지 않았겠냐만,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경쟁적으로 책을 읽던 여고시절 3년간이 내 독서생활의 든든한 토대를 만든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때는 얼마나 책을 이해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가 중요했다. 내 친구들은 ‘1년에 100권 읽기’라는 공동목표 아래 각자의 독서목록을 만들어서는 한 권씩 끝낼 때마다 지워나가는 재미로 살았다. 어느 겨울방학인가, 언니들이 사놓은 세계문학전집 20권을 다 읽고 친구들에게 한참을 뻐기던 기억도 생생하다. 하여간 그때 붙은 독서습관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별건 아니다. 하루 중 책 읽는 시간 확보하기(지금은 지하철 타고 다니는 1시간30분), 읽은 후 책 뒤나 일기장에 한 줄이라도 독후감 쓰기, 그리고 읽고 좋았던 책은 적극적으로 권하기다.

읽고 쓰기보다 재밌는 권하기

사실 책을 읽고 쓰는 것보다 권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 좋은 책 소개해줘서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면 다른 도움을 준 것보다 기분 좋다. 책 읽기에 시큰둥한 사람을 살살 달래서 좋아할 만한 몇 권을 읽게 한 뒤, 그 사람에게 알고 보니 책도 재밌다는 얘기를 들으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뿌듯했다.

이런 사람이 친구 딸이나 7살 꼬마에게 책에 대한 편견과 악담을 들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미력하나마 이 친구들의 눈높이에 맞는 책을 열심히 권해서 책이란 맛있는 사과 자체이지 그저 몸에만 좋은 사과맛 알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일 거다. 그런 뜻에서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책 두 권을 종이비행기에 실어 보낸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청어람미디어), 요절한 사진작가의 아름다운 사진과 글이 늦가을 바람처럼 뼛속으로 스민다.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리더스북), 이 외과의사, 주식에만 해박한 게 아니라 글도 무진장 잘 쓴다. 하느님이 한 사람에게 재능을 너무 몰아주신 것 같다.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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