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법안 방치된 채 연말 해산 앞둔 사개추위 한승헌 위원장…“로스쿨은 김영삼 때부터 논의… 통과시키면 국민 찬사 받을 것”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지독한 역설이다.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은 “예측 불가능한 정치에 일말의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될 듯 될 듯 하다가 뒤집히는 것을 보면서 예측하기 힘든 정치에 실망했는데, 표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이 이득이 된다는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된다면 국회에서 1년 가까이 방치돼온 사법개혁 법안이 급류를 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희망을 버리기엔 지난 2년 동안 흘린 땀이 너무 아까운 듯했다.한 위원장은 “비상근직인 위원장이 거의 상근하다시피 했으니 결과적으로 대통령령을 어긴 셈인데 결과가 좋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11월24일 그를 만났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은 없는데…
사개추위가 지난 11월20일 마지막 회의를 마치면서 국회의 협조를 요청했지만 국회는 요지부동이다. 내년 대선 일정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지막 정기국회다. 이러다 사법제도 개혁 자체가 흐지부지되는 것 아닌가.
=2005년 1월 대통령 자문기구로 발족한 사개추위의 활동 시한은 올 연말까지다. 그리고 해산한다. 국회에서 입법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 연말을 맞게 되어 대단히 유감이다. 그리고 사법제도가 선진화하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
뭉뚱그려 사법개혁 법안이라고 하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법안들이 통과되면 국민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나.
=우선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다. 시험 과목을 공부한 뒤에 답안지만 잘 쓰면 법조인 자격을 주는 현행 사법시험제도는 문제가 있다. 로스쿨은 경쟁력을 갖춘 전문성 있는 법조인을 양성하려는 제도다. 또 국민이 형사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제를 도입하게 된다. 국민을 위한 재판에서 국민에 의한 재판이 된다. 공판중심주의 도입을 뼈대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있다. 조서 중심 재판에서 공개된 법정 공방을 통해 진실을 밝히는 식으로 바뀐다. 제정과 개정 법안을 모두 합치면 25개다.
국민들은 법조계의 잘못된 관행이나 비리를 없애는 방안에 관심이 많다.
=전관예우 폐단을 막기 위해 법조윤리위원회를 신설하고 전관의 사건 수임 현황을 조사해 필요한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같거나 비슷한 범죄에 누구는 실형을 살고 누구는 풀려나오는 폐해를 막기 위해 대법원에 양형위원회를 두고 양형 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판사가 양형 기준과 다른 판결을 내릴 때는 그 사유를 적어야 한다. 요새 검찰과 법원이 영장 문제를 놓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기각, 재청구를 반복하고 있지 않나. 그러기에 영장 항고제를 두는 등 현재 법조계와 관련된 여러 문제의 해법을 담고 있다.
연내에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건가.
=대단히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내년엔 일찍부터 대선 바람이 불지 않겠나. 정치권의 풍토를 고려할 때 차분한 입법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입법 환경이 나빠질 것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이 하나도 없는데 국회가, 특히 야당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사개추위 위원장이기에 앞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입법권 행사는 권한이기도 하지만 의무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은 임기 초에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선서를 한다. 그런데 사법개혁 법안을 대하는 의원들의 자세가 매우 소극적이다. 국회에 법안을 보낸 지 1년이 넘었다. 법안에는 정치적 입장이 달라 정쟁의 소지가 있는 대목은 없다. 의원들의 자성이 필요하다.
‘개혁’ 붙었다고 무조건 싫다는 건가
법안 통과를 위한 사개추위의 노력이 부족했던 탓은 아닌가.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의 대표·원내대표·정책위의장을 모두 만나 입법 중요성 강조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8월에 만났다. 통과시켜달라는 것도 아니고 심의를 해달라고 했다. 정말 진지하게 부탁했다. 강 대표도 공감했다. 그런데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4월엔 교육위에서 여야가 법안심사 소위에 합의해놓고 백지화됐다.
그동안 예측 가능하지 않은 점 때문에 수차례 절망했는데 이제는 그런 예측 불가능성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다. 이제라도 국회의원들이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격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으니까.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면 좋은 결론이 나지 않겠나. 한나라당도 심의한 뒤 통과시키면 이익이 된다. 곧 그만두게 될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하겠나.
사법개혁 법안 처리가 미뤄지는 이유가 한나라당에 있다고 보는가. 국민들에게 이득이 되는 법이라면 적극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나.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여야가 정쟁을 벌이면서 입법활동이라는 본분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사실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기 때문에 여당이 추진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스스로 난파선이라고 할 만큼 어려움에 처해 있으니…. 사법개혁 법안이 심의조차 되지 않는 책임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변호사 출신 의원들보다는 한나라당에 있다는 기사를 봤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한나라당이 법안이 통과하면 현 정부의 업적이 되는 것이 못마땅해서, 혹은 개혁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은 무조건 싫어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긴 하던데 설마 그러겠나. 사법개혁 법안이 통과되면 사람들은 야당의 협력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집권을 내다보는 정당이라면 국민을 위한 법안에 적극 찬성하는 게 득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로스쿨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논의를 시작했으니 사개추위는 마지막 주자일 뿐이다. 족보를 따지고 보면 신한국당이 여당이던 시절에 시작했다. 현 정부 들어 갑자기 시작한 게 아니다.
국회에서는 뒤늦게 로스쿨에 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들면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떤 이들은 총 정원 문제를 언급하는데 정원은 입법사항이 아니라서 법안에 담겨 있지도 않다. 교육부 장관이 법원행정처장과 법무부 장관, 대한변협 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등과 ‘협의’해 결정하도록 했다. 실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로스쿨에 진학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장학금 등 보완장치가 마련돼 있다. 일본은 시행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성급히 성패를 평가하기 힘들다. 제대로 로스쿨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점도 인가를 남발해 너무 많은 로스쿨이 생겼기 때문이다. 찬반 의견을 내더라도 심의를 한 뒤에 말했으면 좋겠다.
입법 안 되면 수험생·대학생 혼란에 빠져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사개추위가 국민을 상대로 직접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여러 이견을 조정하고 만장일치로 단일안을 만들기까지 134차례 회의를 했고 여기에 508명이 참여했다. 언론 간담회, 신문 기고, 방송 출연 등이 모두 219회다. 법률이다 보니 국민들에게 얼마나 다가갔는지에 대해서는 확언하기 어렵지만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현재 40여 개 대학이 로스쿨 준비에 수천억원을 투자해 과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입법이 되지 않는다면 준비한 학교들은 곤혹스러워질 것이다. 수험생이나 재학생도 혼란에 빠진다. 올해가 어려우면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라도 꼭 통과되기를 바란다.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지독한 역설이다.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은 “예측 불가능한 정치에 일말의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될 듯 될 듯 하다가 뒤집히는 것을 보면서 예측하기 힘든 정치에 실망했는데, 표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이 이득이 된다는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된다면 국회에서 1년 가까이 방치돼온 사법개혁 법안이 급류를 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희망을 버리기엔 지난 2년 동안 흘린 땀이 너무 아까운 듯했다.한 위원장은 “비상근직인 위원장이 거의 상근하다시피 했으니 결과적으로 대통령령을 어긴 셈인데 결과가 좋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11월24일 그를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