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연수 방식의 아시아 운동 시작한 오재식 아시아교육연구원장…내년부터 1년에 두세 곳만, 국내에서 먼저 연수를 한 뒤 현지에 보내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오재식(72) ‘아시아교육연구원’ 원장은 평생을 기독사회운동과 함께했다.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한 뒤 1970년대엔 도시산업선교 활동을 벌였고, 90년대 중반 이후엔 ‘월드비전 한국’ 회장 직을 맡으며 북한 주민돕기 사업에 힘을 쏟았다. 그는 최근 아시아교육연구원을 열어 ‘한국 사회가 아시아를 제대로 이해하자’는 기치로 운동을 시작했다.
외진 지역을 발로 뛴 게 큰 경험
‘아시아’라는 화두를 가지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 하루아침에 나온 아이디어는 아니다. 내 인생에 아시아가 지니는 의미는 크다. 1971년대부터 82년까지 일본 도쿄에 있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도시산업선교부 부장으로 일했다. 회원국은 17개였고, 본부는 싱가포르에 있었다. 내 담당 분야가 노동자·농민·도시빈민·소수민족 4가지였는데, 한국 사람치고 그 시대에 아시아 곳곳을 그렇게 발로 뛴 이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소수민족들이 사는 외진 지역들을 다 찾아다녔다. 큰 경험이었다. 그때 아시아가 내 마음속에 딱 박혔다. 평생 뜻을 함께해온 기독교 계통의 친구들과 10년 전부터 꿈꿔왔던 일을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 월드비전에서 북한을 돕는 일을 9년 했는데 북한 문제 역시 동북아시아, 더 나아가서 아시아 전체의 문제다.
지난 10월27일 연구원 개원 축하모임에서 연설을 통해 언급한 ‘우리가 아시아를 바라보는 태도’와 ‘아시아가 우리를 바라보는 태도’가 무척 흥미롭다.
= ‘우리가 아시아를 바라보는 태도’는 우리의 시각으로 아시아를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얘기다. 일본이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구미로 들어가자)를 한 지 120년 됐다. 우리 역시 해방 이후 미국만 바라보면서 일본의 길을 따라 경제성장을 해왔다. 그래서 아시아는 우리에겐 경제 발전의 대상일 뿐이었다. 기업들이 아시아에 진출할 때도 일본과 미국 기업을 통해서였다. 일본과 미국을 통해 아시아를 알고 관계를 맺어온 셈이다. 그러다 보니 아시아는 한국을 ‘해방까지는 일본 사람들에게 끌려다니고 그 뒤 60년은 미국 사람들의 뒤를 따라온 나라’로만 인식한다. 한국 대학교수들의 90% 이상이 미국 대학 출신이다. 반미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정말 아시아를 보는 우리만의 시각과 관점이 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는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방송사들도 나서서 아시아를 제대로 알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등 변화가 일고 있다.
=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보여주기 위한 쇼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의 다양성과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이해와 교류가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도전을 받을 게 분명하다.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온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자가 50만 명이고 머지않아 100만 명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간 이 가운데 ‘반한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깨고 진짜 아시아의 모습을 봐야 한다. 우리가 여태껏 ‘단일민족’을 자존심으로 간직해왔지만, 국제화 시대에는 이것처럼 불리한 게 없다. 최근 보도를 보면 미국의 <포린 어페어스>에 비견되는 ‘아시아 저널’로 <글로벌 아시아>라는 매체가 생긴다고 하는데 그런 게 필요하다. 아시아인의 목소리를 자체의 메커니즘과 테크닉으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헬싱키 프로젝트’에서 배운다
아시아는 방대한 지역이고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기에는 다소 무리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인가.
= 1955년 29개의 비동맹 국가들이 모여 열었던 ‘반둥회의’의 5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해 열렸다. 그곳에 참석했는데 그 당시 논의에서도 아시아의 정체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다원성으로 정리됐다. 종교만 봐도 대여섯 가지 중요한 종교가 다 있다. 식민지로 뿔뿔이 흩어져 있던 국가들을 하나의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는 게 애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원성을 인정하고 같이 사는 법을 배우자는 게 반둥회의의 테마였다. 애초 가졌던 그 정신이 냉전체제 때문에 깨졌는데 이제 냉전이 끝났으니까 그 정신을 되살리자는 게 키워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굉장한 상상력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아시아라는, 기가 막히게 방대한 지역에서 같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본의 한 경제학자가 10년 전에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아시아철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홋카이도에서 시작해 인도네시아 발리까지 가는 철도 말이다. 불가능한 게 아니다. 해저터널 2개만 뚫으면 된다. 그런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을 하고 싶다. 또 아시아의 고민·역사·경험은 아시아만의 것은 아니다. 한국이 군사정권 치하에 있을 때 아시아의 많은 나라 역시 군사독재를 경험하고 있었다. 인권과 민주화라는 화두를 동시에 가졌던 셈이다. 아시아의 문제를 아프리카나 남미 사람들과도 공유해야 한다.
교육원의 모토를 정리하면 ‘아시아를 배우고 받아들여서 아시아와 더불어 살자’이다. 구체적인 사업은 무엇이 있나.
- 유럽연합이 만들어지는 데 ‘헬싱키 프로젝트’가 했던 구실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풀뿌리 민중들의 직접 교류 폭을 넓혀야 한다. 우리는 먼저 대학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아시아를 제대로 배우고 받아들이는 작업을 할 작정이다. 물론 기업이나 정부 차원에서의 교류도 활발해져야 한다. 지금 한국 대학에서 아시아를 가르치는 교재를 보면 전부 다 미국과 일본에서 쓴 것이다. 커리큘럼도 개발해야 한다. 현지에서 이뤄진 경험과 토론을 다음에 갈 사람에게 체계적으로 이전할 수 있어야 한다. 내년에는 ‘아시아어학원’을 세우는 일이나 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 프로그램도 시작할 계획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이 아시아로 나아가는 동시에 지역사회로 내려가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해왔는데 아시아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나.
= 그동안 시민운동은 큰 의제를 중앙정부에 요청하고 압력을 가하는 일을 잘해왔다. 이제는 믿는 바를 일상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각자가 처해 있는 곳에서 벌일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야 한다. 시민사회가 아시아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국가 정책을 바꾸는 문제로만 다가가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한 지방자치단체가 ‘아시아의 집’을 만드는 데 시민운동이 적극 결합한다고 생각해보자. 아시아 사람들이 와서 쉬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요즘 아시아인 며느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떤 지역에서는 전체 결혼 가구의 20%가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이 이런 곳에서 어학을 가르치면 동네에서 선생님으로 통할 것이고 한국 사회 적응도 쉬워질 것이다.
시민운동, 요청에서 실천으로 가자
아시아 현지를 직접 체험하고 배우는 해외연수 사업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려는 계획을 밝혔는데.
= 이전에는 해외로 나가기 전에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기본 정보를 정리해주는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 간다면 현지 시민단체 관계자와 대학교수가 한국에 와야 한다. 국내에서 먼저 연수를 꼼꼼히 한 뒤 현지에 보내는 방식으로 할 것이다. 내년부터 연수를 시작할 텐데 동시에 여러 나라를 하지 않고 한 나라씩 골라서 1년에 두세 곳만 집중연수 방식으로 할 생각이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하면서 성과가 쌓일 수 있도록 하겠다.
‘아시아’라는 화두를 가지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 하루아침에 나온 아이디어는 아니다. 내 인생에 아시아가 지니는 의미는 크다. 1971년대부터 82년까지 일본 도쿄에 있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도시산업선교부 부장으로 일했다. 회원국은 17개였고, 본부는 싱가포르에 있었다. 내 담당 분야가 노동자·농민·도시빈민·소수민족 4가지였는데, 한국 사람치고 그 시대에 아시아 곳곳을 그렇게 발로 뛴 이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