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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가족'은 움직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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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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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표지이야기를 결정하면서는 무척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딸이 엄마의 도덕성 문제를 실명으로 인터넷을 통해 고발한 사건을 접한 것은 지난주 초. 후배기자가 프린트로 뽑아 가져다준 ‘고발서 전문’을 읽어 본 소감은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너무 끔찍하다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놀라움은 컸지만 그런만큼 이것을 기사화하는 문제는 몹시 망설여졌습니다. 결코 흐뭇하지 않은 남의 가정의 불행한 이야기를 시시콜콜히 다루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시사잡지로서의 ‘품위’ 문제도 솔직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한겨레21>의 내부 토론에서도 의견이 적지 않게 엇갈렸습니다.

그러나 이 ‘초유의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화두를 제공하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과연 딸이 엄마를 ‘사회적 살인’으로 몰고간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요. 평생 살을 맞대고 살다가도 남남이 되면 원수가 되는 것이 부부관계라지만, 최소한 부모와 자식, 특히 엄마와 딸의 관계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식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가족 질서에 분명히 큰 변화가 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또한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혼과 이혼의 문제, 직장여성의 가사와 육아, 중년여성의 행복찾기 등 우리의 ‘가족 이데올로기’ 전반을 다시 한번 차분히 생각해봐야 할 과제를 이 사건은 던져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스스로를 한번 뒤돌아보았습니다. 거의 매일 술에 절어 새벽 1시, 2시에(그리고 가끔은 거의 날이 환히 밝아) 돌아오는 게 절대로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자녀들과 대화할 겨를도 거의 없습니다. 맞벌이 부부이긴 하지만 가사를 돌보는 것은 물론 완전히 남의 일이지요. 그래도 탈없이 견디는 것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남자가 대접받는 풍토 때문이 아닐까 하는 ‘반성’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딸로부터 가정에 대한 무책임함으로 고발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이번 사건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딸의 마음속에 무의식적으로 배어 있는 가부장적 질서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이번 사건은 가족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전반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맺어가고 있습니다. 학교 친구도 있고, 회사 동료도 있고, 사회에서 맺은 갖가지 인연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끈끈한 게 가족이겠지요. 이런 사람의 모듬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상대편을 하나의 중요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마음, 또 이에 기초한 배려와 연민이 아닐까요. 그것이 없는 관계란 삭막한 모래성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마음의 빈 공간이 없이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관계맺기와 관계이어가기라는 것은 어찌보면 생물체와 같습니다. 잎이 무성한 나무처럼 풍성함을 자랑하다가도 일순간에 황폐한 고목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광고카피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꾸준히 거름을 주고 각별한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는 노력이 그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 게 인간과의 관계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한겨레21편집장 김종구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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