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으로부터 인권운동연구소 독립을 준비하는 류은숙 상임활동가… 인권이 약자들의 ‘형용사’가 아닌 실질적인 무기가 되도록 힘 보탤 것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말의 인플레이션.’ 통화량이 늘어날수록 화폐가치는 떨어진다. 아무리 좋은 말도 너무 자주 쓰면 식상해진다. 게다가 그 말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쓴다면 말은 본래의 뜻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인권’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가 지난 10여년 동안 가장 애지중지하던 말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제 그 뜻을 되새김질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류은숙(39)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14년 동안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가로 일해온 그는 “인권이라는 말이 너무 무개념적으로, 무비판적으로 쓰인다”며 “인권을 이용해 기득권을 강화하거나 인권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인권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이 ‘인권은 사치’라고 말하는 데 우리 사회 인권 문제의 핵심이 있다”며 “그들의 입에서 인권이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부설기관이던 인권운동연구소를 완전 독립시킬 계획을 세웠다.
저명인사의 보직은 없는 연구소 인권운동연구소를 굳이 독립 단체로 만드는 이유가 있는가. =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뜻으로 독립 단체로 하려 한다. 부설기관으로 있으면 여전히 인권운동사랑방의 이미지가 강할 것 같다. 처음 인권운동사랑방을 할 때도 사무실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보통 연구소라고 하면 석·박사급 연구자들이 즐비하고 보통 사람들이 알아먹을 수 없는, 각주가 엄청나게 달린 보고서가 연상되지만 우리는 그런 연구소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없다. 인권에 관심 있는 이들이 누구나 친근하게 느끼고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동안 인권운동연구소에서 마련한 세미나와 강좌를 들었던 이들 10여 명이 중심이 되어 준비하고 있다. 인권이 정말 어떤 것이지 궁금해서 자기 시간을 쪼개서 공부해온 이들이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단체를 만든다고 하면 이른바 저명인사들이 단체의 주요 보직을 맡게 되는 게 보통인데 우리는 그렇게 안 하려고 한다. 저명인사들이 나서면 꼭 참여해야 할 이들이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 사실 인권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 사회에 인권에 관한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인권운동연구소라는 이름은 그대로 쓰나. = 친근한 이미지를 주는 새로운 이름을 쓰려고 한다. 현재 여러 경로로 아이디어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제안된 아이디어 중에는 ‘모퉁이’가 있다. 인권이 항상 사회의 사각지대에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것이니까. 14년 동안 인권운동을 해왔는데 굳이 더 인권을 연구해야 한다는 이유는 뭔가. = 대학 졸업반 때 인권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그때는 인권이라는 말을 쓰는 것만으로도 새롭고 진보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인권이라는 말을 쓰는 이들이 너무 많은 데 반해 그 개념은 모호해지고 불분명해졌다. 초상권, 재산권, 인격권 등 ‘권’자가 넘쳐나는데 그것을 모두 인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강좌를 해보면 ‘인권에도 역사가 있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인권 개념의 보편화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도 있지 않나. 그만큼 인권이 우리 사회의 소중한 가치가 되었다는 점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보는데. =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권이 그냥 좋은 것으로만 막연하게 인식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인권은 마냥 좋은 것으로, 누구한테나 좋은 것으로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인권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도 생기고 인권을 이용해서 권력을 강화하거나 한자리를 하려는 이들도 많다. 이런 점 때문에 인권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 이 인권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 인권인가, 우리가 외쳤던 인권이 왜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는 이들에게는 ‘형용사’로만 쓰이고 실질적인 무기가 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의식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장 활동하기에도 바쁜 처지에서 연구소를 만든 이유이고 이제 독립 단체를 만들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인권절대주의’는 위험 인권이라는 말이 오염됐다고 보는 것인가. = 그런 면도 있지만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처음부터 뭐가 뭔지 잘 모르고 썼던 것 같다. 무개념적으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가게에 가서 ‘형광등 주세요’ 할 때는 형광등에 대한 합의가 있지만, 인권이라고 하면 형광등과 같은, 기반이 되는 합의나 논의가 너무나 허약하다. 인권 가운데 사적 재산권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인권이라고 여기는 사람과 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사적 재산권의 제한도 피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인권에 대한 생각이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 뚜렷히 대립하는 입장이 현재는 인권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져 있는 형국이다.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인권을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나. = 인권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도 좋은 소재다. 권력의 부당성을 위장해주는 도구로 쓰이는 ‘인권절대주의’는 정말 위험하다. 미국식 인권은 인권절대주의다. 인권을 위해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에도 그런 것을 ‘인권을 위한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과 관련해 잘못된 인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 재벌 총수들이 ‘인권은 사치’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항상 해왔던 얘기니까. 그런데 가슴이 아픈 건 인권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들이 ‘인권은 사치’라고 말할 때다. 바로 그 부분에 우리 사회 인권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본다. ‘당신들이 말하는 인권은 우리가 말하는 인권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 인권의 현주소다. 그들이 정말 인권에 대해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존엄한 가치라고 느낄 때 인권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입에서 인권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우리 사회에 인권에 관한 전문가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활동해온 많은 인권운동 단체들과 연구자들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 실천은 있었지만 체계적인 연구나 분석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우리 학문 풍토 일반에 해당하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인권 분야 역시 학제 간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 인권은 법, 철학, 윤리, 역사, 문화 등에 다 걸쳐 있다. 학문 간 공동 연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인권을 가르쳐봤자 교양 수준에서 하는 덕담 정도다. 인권 강좌가 개설돼 있는 학교도 거의 없다. 강좌를 듣는 사람들이 더 읽을 책을 소개해달라고 요구할 때 참 난감하다. 권할 만한 책이 별로 없다. 법조를 ‘인권의 보루’라고 하면서도 실제 사법연수원 같은 데서도 인권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제대로 된 현장 보고서 만들고파 새로운 단체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 = 먼저 인권 현장에 관한 보고서를 제대로 써보고 싶다. 참고할 만한 현장보고서가 미약하다. 지금까지의 보고서는 문헌연구에다 설문조사를 더하는 정도여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인권단체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 보고서를 내고 전세계가 이를 참고한다. ‘양심의 자유’는 어떤 단체의 보고서를 봐라, ‘주거권’은 어떤 단체 보고서가 좋다 하는 식이다. 주력 활동 분야를 굳이 영역으로 구분해본다면 의식주의 문제에 천착하게 될 것 같다. 노조가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권 영역이나 공교육 현장에서도 소외된 교육권 영역 등도 우리의 관심사다.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말의 인플레이션.’ 통화량이 늘어날수록 화폐가치는 떨어진다. 아무리 좋은 말도 너무 자주 쓰면 식상해진다. 게다가 그 말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쓴다면 말은 본래의 뜻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인권’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가 지난 10여년 동안 가장 애지중지하던 말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제 그 뜻을 되새김질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류은숙(39)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저명인사의 보직은 없는 연구소 인권운동연구소를 굳이 독립 단체로 만드는 이유가 있는가. =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뜻으로 독립 단체로 하려 한다. 부설기관으로 있으면 여전히 인권운동사랑방의 이미지가 강할 것 같다. 처음 인권운동사랑방을 할 때도 사무실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보통 연구소라고 하면 석·박사급 연구자들이 즐비하고 보통 사람들이 알아먹을 수 없는, 각주가 엄청나게 달린 보고서가 연상되지만 우리는 그런 연구소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없다. 인권에 관심 있는 이들이 누구나 친근하게 느끼고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동안 인권운동연구소에서 마련한 세미나와 강좌를 들었던 이들 10여 명이 중심이 되어 준비하고 있다. 인권이 정말 어떤 것이지 궁금해서 자기 시간을 쪼개서 공부해온 이들이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단체를 만든다고 하면 이른바 저명인사들이 단체의 주요 보직을 맡게 되는 게 보통인데 우리는 그렇게 안 하려고 한다. 저명인사들이 나서면 꼭 참여해야 할 이들이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 사실 인권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 사회에 인권에 관한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인권운동연구소라는 이름은 그대로 쓰나. = 친근한 이미지를 주는 새로운 이름을 쓰려고 한다. 현재 여러 경로로 아이디어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제안된 아이디어 중에는 ‘모퉁이’가 있다. 인권이 항상 사회의 사각지대에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것이니까. 14년 동안 인권운동을 해왔는데 굳이 더 인권을 연구해야 한다는 이유는 뭔가. = 대학 졸업반 때 인권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그때는 인권이라는 말을 쓰는 것만으로도 새롭고 진보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인권이라는 말을 쓰는 이들이 너무 많은 데 반해 그 개념은 모호해지고 불분명해졌다. 초상권, 재산권, 인격권 등 ‘권’자가 넘쳐나는데 그것을 모두 인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강좌를 해보면 ‘인권에도 역사가 있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인권 개념의 보편화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도 있지 않나. 그만큼 인권이 우리 사회의 소중한 가치가 되었다는 점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보는데. =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권이 그냥 좋은 것으로만 막연하게 인식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인권은 마냥 좋은 것으로, 누구한테나 좋은 것으로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인권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도 생기고 인권을 이용해서 권력을 강화하거나 한자리를 하려는 이들도 많다. 이런 점 때문에 인권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 이 인권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 인권인가, 우리가 외쳤던 인권이 왜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는 이들에게는 ‘형용사’로만 쓰이고 실질적인 무기가 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의식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장 활동하기에도 바쁜 처지에서 연구소를 만든 이유이고 이제 독립 단체를 만들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인권절대주의’는 위험 인권이라는 말이 오염됐다고 보는 것인가. = 그런 면도 있지만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처음부터 뭐가 뭔지 잘 모르고 썼던 것 같다. 무개념적으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가게에 가서 ‘형광등 주세요’ 할 때는 형광등에 대한 합의가 있지만, 인권이라고 하면 형광등과 같은, 기반이 되는 합의나 논의가 너무나 허약하다. 인권 가운데 사적 재산권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인권이라고 여기는 사람과 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사적 재산권의 제한도 피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인권에 대한 생각이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 뚜렷히 대립하는 입장이 현재는 인권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져 있는 형국이다.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인권을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나. = 인권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도 좋은 소재다. 권력의 부당성을 위장해주는 도구로 쓰이는 ‘인권절대주의’는 정말 위험하다. 미국식 인권은 인권절대주의다. 인권을 위해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에도 그런 것을 ‘인권을 위한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과 관련해 잘못된 인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 재벌 총수들이 ‘인권은 사치’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항상 해왔던 얘기니까. 그런데 가슴이 아픈 건 인권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들이 ‘인권은 사치’라고 말할 때다. 바로 그 부분에 우리 사회 인권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본다. ‘당신들이 말하는 인권은 우리가 말하는 인권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 인권의 현주소다. 그들이 정말 인권에 대해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존엄한 가치라고 느낄 때 인권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입에서 인권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우리 사회에 인권에 관한 전문가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활동해온 많은 인권운동 단체들과 연구자들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 실천은 있었지만 체계적인 연구나 분석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우리 학문 풍토 일반에 해당하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인권 분야 역시 학제 간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 인권은 법, 철학, 윤리, 역사, 문화 등에 다 걸쳐 있다. 학문 간 공동 연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인권을 가르쳐봤자 교양 수준에서 하는 덕담 정도다. 인권 강좌가 개설돼 있는 학교도 거의 없다. 강좌를 듣는 사람들이 더 읽을 책을 소개해달라고 요구할 때 참 난감하다. 권할 만한 책이 별로 없다. 법조를 ‘인권의 보루’라고 하면서도 실제 사법연수원 같은 데서도 인권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제대로 된 현장 보고서 만들고파 새로운 단체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 = 먼저 인권 현장에 관한 보고서를 제대로 써보고 싶다. 참고할 만한 현장보고서가 미약하다. 지금까지의 보고서는 문헌연구에다 설문조사를 더하는 정도여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인권단체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 보고서를 내고 전세계가 이를 참고한다. ‘양심의 자유’는 어떤 단체의 보고서를 봐라, ‘주거권’은 어떤 단체 보고서가 좋다 하는 식이다. 주력 활동 분야를 굳이 영역으로 구분해본다면 의식주의 문제에 천착하게 될 것 같다. 노조가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권 영역이나 공교육 현장에서도 소외된 교육권 영역 등도 우리의 관심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