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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기록의 부재, 진실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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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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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 한분이 회사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위원회 활동에 대한 보도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겠지 하는 지레짐작과는 달리 그 분은 뜻밖에 예전에 제가 썼던 기사 복사본 한장을 내어놓았습니다. <한겨레신문>이 창간된 해인 지난 88년 12월15일자 사회면 기사였습니다. 청송교도소에서 84년 10월에 박영두씨라는 재소자가 교도관들의 집단구타로 숨진 사건을 다룬 것이었습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이 사안을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돼 혹시 제가 당시 취재했던 관계자의 연락처 등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에게는 당시의 관련기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니는 와중에 오래된 취재수첩들을 거의 분실한 탓입니다. 게다가 세월의 힘이 무서운지 취재를 했던 사람들의 이름마저도 가물가물했습니다. 다행히도 기억을 더듬어 당시에 결정적 증언을 해주었던 한 공무원의 현재 근무처와 전화번호를 어렵게 알아내 그분에게 연락을 해주었지만 스스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제 10년 조금 넘은 일에 대한 기록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자괴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호에 ‘기록문화 부재’를 특집으로 다루기로 했던 차여서 부끄러움은 더했습니다.

최근 두 가지 기록 문제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그 하나는, 지난 94년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에 대한 국세청 기록의 존재 여부이고, 또다른 하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 가운데 일부 내용의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란입니다. 두 사안 모두 우리 사회의 기록문화 현주소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불과 5∼6년도 채 안 된 과거의 중요한 정부기록이 없어졌다고 법석을 떠는 것은 당사자나 정치권의 유불리를 떠나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회고록을 둘러싼 갑론을박이라는 것도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실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은 역사 자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재임 시절에는 차마 털어놓지 못했던 중요한 정책결정의 배경과 과정이 솔직하고 상세히 담겨져 있을수록 회고록의 역사적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공한 정책은 성공한 정책대로, 실패한 정책은 실패한 정책대로 솔직한 술회가 담긴 회고록은 그 자체로 후임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기대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좀더 치밀한 자료에 근거한 객관성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육성증언이 회고록에서 빠진 것도 참으로 아쉬운 대목입니다. 김 전 대통령이 최근 도쿄에서 말한 것처럼 “너무나 엄청나 덮어버렸다”면,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당시의 상황과 자신의 고민 등을 털어놓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렇다치고 김대중 현 대통령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물론 전임자에 비해 평소 메모를 꼼꼼히 하는 성격이라는 평판인 만큼 퇴임 뒤 펴낼 회고록은 상당히 진일보한 것이리라는 기대는 듭니다. 하지만 역시 그 요체는 솔직함과 객관성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후대에 길이 남겨도 좋을 만한 전임 대통령의 회고록다운 회고록을 가져도 좋을 때가 아닌가 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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