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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외국인을 위한 낭독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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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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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 없어 곤혹스런 국제교류 문학행사는 전혀 효과가 없을까… 오지 선교사처럼 묵묵히 한두송이의 마음을 따내는 일이 문화교류

▣ 최재붕 소설가·서강대 프랑스문화학과 교수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의 독자들 앞에서 작품을 낭송하고 자기 문학에 대해 말할 기회를 가지는 것에 대해 젊을 때는 철없는 기쁨과 흥분 섞인 자부심을 느낀다. 당연한 일이고 또 그런 자부심으로 읽고 말해야 한다. 그러다가 여러 나라를 돌고 경험이 쌓이고 나면 몇 가지 힘든 상황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그런 일들이 시들해지거나 초반부와는 전혀 다른 자세로 그 ‘일’에 임하게 된다. 대부분 한국학과가 있는 대학이나 해당국에 설치되어 있는 한국문화원 혹은 그 나라의 문화 관련 부서에서 그런 문화행사를 담당하게 된다.

한국문학을 알리기 위해서 열리는 낭독회 뒤켠의 고민을 엿본 뒤 선교사로 오지로 떠난 친구가 생각났다. 사진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강당에서 열린 한국문학 작품낭독회.


대부분 교민인 청중이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 행사를 마치고 나면 마치 청중과 나 사이에 두꺼운 솜이 가득 찬 방 안에서 몇 시간 허우적거리다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짐작되는 행사에 대해 여러 각별한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문인과 현지 문화원 사이의 갈등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국외 청중을 동원하는 일은 수월치 않아서 관계자들은 진땀을 흘린다. 몇 년 전에는 어떤 나라의 한국문화원에서 낭독회를 기획하던 한국 문학 담당 교수와 문화원 간에 마지막까지 갈등을 겪어 난감한 적도 있었다. 몇 달 전에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문인의 강연회에 반응이 전무해서 문화원의 위상이 흔들려 창피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해석해서 들어보면 그런 유명한 분을 만나러 오는 청중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말할 것이 무어냐는 뜻이다. 일을 맡은 교수는 그 일을 숨기려고 애썼지만 내 눈치는 또 웬만한가, 그 상황이 안 잡힐 리 없었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나도 맘 편하고 몸 편하지만 강행하자고 했고, 어떻건 아담한 방은 청중으로 찼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었으니 나 또한 청중들의 마음을 고무시키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질문과 웃음으로 채워진 뒤풀이 시간까지 가진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청중이 없었던 문인 때문에 문화원의 위상에 금이 가고 창피했다는 발언은 주객이 전도된 것 같기만 했다. 청중 없는 빈 방의 책임은 아무래도 그 문인의 책임은 아닐 것 같기 때문이고 이런 일에 창피한 것을 따지자면 정책과 아이디어 부재가 결과로 나타난 그 부서 자신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것이 어디 문학행사 때만일까.

어떻건 개별적인 행사의 어려움으로 인해 이미 정착되고 검증된 대형 문화행사에 한국이라는 간판을 한켠에 건다는 명목으로 거액을 투자해 특별행사들을 마련하기도 한다. 물론 개별적인 행사보다 파급효과도 크지만 그것이 정말 그만큼의 금액이 요구되는 개별적인 행사를 합친 때보다 더 효과적이고 결과가 좋았는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투자한 총금액과 효과를 나누어 계산하는 특수계산법이 있는 그때에나 그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액의 공금이 들어갔기 때문에 행사의 결과는 늘 과장되어 보도되기 마련이고, 어느 누구도 공식적으로 그 행사를 둘러싼 진정한 문제에 대해 말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늘 ‘없는 것보다 낫다’라는 상식이 편만해 발전적인 비판의 자리가 없다. 몇 년 전에 이루어진 모 행사를 관심과 애정으로 관찰하고 참여한 한 현지 문화인은 자신이 모은 기사와 자료들을 내게 보여주면서 제발 한국에 실상을 알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애정의 기염을 토했다.

나는 자료를 감사히 받았지만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런 일이 늘 일어나서 지쳤기 때문도 아니고, 나도 참여한 그 행사에 책임감을 나누어 가졌기 때문도 아니다. 그보다는 그 현지인 문화계 인사와 나 사이에는 문화 교류에 대한 개념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힘든 문화행사를 생각할 때마다 이상하게 지금도 오지에서 선교사로 있는 친구를 생각한다. 6개월 머물겠다고 그곳에 간 친구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문화선교 쪽으로 방향을 넓히겠다고 내게 조언을 구해 내 힘이 닫는 한도 내에서 아이디어를 취합해준 적도 있다. 물론 선교사의 사역과 한국 문화 전달자들의 일을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유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류처럼 눈에 보이는 문화적 격앙도 있지만 대부분의 문화적 전파나 교류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 효과가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종종 예상치 않은 곳에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이국 취미를 가진 혹은 개방적인 외국인 청중을 제외하고 보면, 현대 문화는 그 외적인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개방성 때문에 더욱더 자신의 문화 안에 칩거하고 있으며 문화는 일종의 익숙함과 안정을 선호하는 존재적 관습이 되어, 외적 변화나 충격이 가해지기를 원치 않는 속성이 있다. 어쩌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 일을 위해 묵묵히 한두 송이의 마음을 따기 위해 일하는 것이 문화 교류이다.

문화란 늘 어떤 새것의 시작

이제는 많이 알려진 한국 문학 작품의 번역자인 풀턴 교수는 그 지난한 미주 순회 한국 문학 낭송회를 매년 기획하고 그 길고도 지난한 여정을 작가들과 함께한다. 한국 문학에 대한 열정이 그에게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힘들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특유의 느린 말씨로 말했다. “꼭 선교사 같은 일이지요, 뭐.” 이런 분들이 있기에 도망가고 싶어도 요청이 오면 멈추어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결과는 숫자를 통해 드러나지만 그 변화를 일으키는 일은 늘 숫자의 양적 질서와는 무관했음을 말해주는 일이 어디 한둘인가. 그것을 알고 있는 문화와 그렇지 않은 문화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문화를 맨 나중의 고려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문화는 늘 어떤 새것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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