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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국방 의무’라는 이름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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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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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등 점점 뜨거워지는 징병제 논란… 여성주의 시각에서 본 문제제기도

사진/제주 인권학술회의에서 주제발표하고 있는 재미 여성학자 권인숙(가운데)씨. 그는 징병제가 여성차별적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힘내세요! 저는 우리 XX이 군대 보내구 바로 일주일 뒤에 출국했어요. 일주일 동안 시체였지요. 그리고 7개월째 못 만났구요. 그래두 여러분. 제 남친(남자친구)이 그러는데 편지가 제일 좋데요. 가장 힘이 난다나요? 힘든 훈련 받고 오는데 편지가 와 있으면 힘이 너무나도 난데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거면요. 편지 많이 많이 보내주시구요. 예쁜 마음, 사랑하는 마음 변치 마세요. 파이팅이에요!”

대체봉사제 사회적 이슈로 [토론방] 신앙의 자유 vs 병역의 의무


군대 간 애인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만든 인터넷 사이트 ‘아름다운 기다림이 있는 방’(www.waitforyou.net)에 최근 한 여성이 올린 글이다. 사이트에 들른 연인원이 41만여명에 이를 만큼 이 사이트는 인기가 좋다. 그러나 징병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이나 문제제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 사이트에서만큼은, 징병제는 ‘한번도 도전받지 않아온 제도’로 보인다.

애인을 군에 보낸 여성들의 뜻이 어떻든간에, 징병제도는 올해도 여러 가지 도전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이뤄지는 몇 가지 논의들이 그 단초를 제공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징병제에 대한 논란은 먼저 <한겨레21>이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인 ‘여호와의 증인’ 관련 기사를 내보낸 뒤 확산되고 있다. 즉, 이들에게 대체봉사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찬성 주장과 형평성을 들어 이에 반대하는 일부의 반대 목소리가 맞서고 있는 <인터넷한겨레>의 ‘한겨레21’ 토론방 등 사이버 공간이 논쟁의 장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여호와의 증인’쪽에서 내세우는 종교적인 입장과는 무관하게 인권의 관점에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견고한 ‘군사주의적 안보제일주의’가 일부나마 허물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대체봉사제 주장은 국내의 평화운동 그룹의 광범위한 지지와 일부 기독교 단체의 호응으로 인해 사회적 이슈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평화운동세력들은 3월 중순께 국내외 평화운동 단체들과 함께 양심적 징집거부에 대한 워크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군가산점 논쟁이 시작된 뒤 △유력층 자제와 서민층 자제간의 군복무 형평성 문제 △현역과 단기사병(방위) 복무자 또는 미필자 사이의 사회적 차별 △남녀 평등 논란 △인적자원의 효율적 배분문제 등으로만 이뤄지던 징병제 관련 논쟁이 좀더 구체적인 사안으로 둘러싸고 논쟁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셈이다.

징병제도에 대한 두 번째 문제제기는 징병제에 대한 위헌 판결을 통해 모병제 도입을 현실화하려는 세력들의 다양한 움직임이다. 이들은 지난 50년 동안 ‘신성한 국방의 의무론’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하지 못했던 국가제일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하며, 침해당할 수 없는 개인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징병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중 하나는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징병제와 군사주의 평가로부터 나오고 있다. 재미 여성학자 권인숙(38)씨는 지난 2월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제주도에서 한국인권재단(이사장 신용석) 주최로 열린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을 주제로 한 인권학술회의에서 ‘군사주의와 여성:징병제도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바라본 징병제의 다양한 측면을 분석한 내용이다.

“징병제는 남성성을 공고화한다”

사진/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훈련병들.(이정용 기자)
권씨는 “한국에서 징병제도는 생각해볼 필요성조차 없었던 사회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도”이며 “이로 인해 한국사회의 여성차별적 제도와 문화에 끼치는 이 징집제의 영향이 결코 적을 수 없다”고 전제해 이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시각을 드러냈다.

권씨는 먼저 우리 사회에서 징병제도가 차지하는 비중을 입증하는 사건으로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사건과 대법원의 군필 남성의 가산점 제도에 대한 위헌판결 사건을 꼽았다. “두 사건은 본질적으로 한국사회에서 군사주의가 뿌리내리고 있는 정도와 그것의 성별화된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권씨에 따르면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기피를 둘러싼 반응은 한국사회의 3가지 기본전제를 보여준다고 한다. 첫째 모든 건강한 젊은 남성은 국가방어의 의무를 다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그 모든 남성은 국가방어의 의무를 지는 데 있어 평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 세째 모든 아버지는 아들들이 그 의무를 다하도록 격려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권씨는 이런 전제들이 별 이견없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현실은 강제 징집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징집제가 ‘뜨거운 감자’ 노릇을 하곤 하는 현실과 비교할 수 없는 한국적 현실의 근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또 이는 한국전쟁 이후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공포 이외에도 자주국방과 경제개발만이 민족생존의 길이라는 박정희식의 논리전개가 아직까지 큰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정치적 지향성이나 계층성을 떠나서 강하게 존재해온 민족주의도 이런 국가안보중심적 논리의 한축이 되어왔다고 권씨는 분석했다.

권씨는 이어 “국가방어의 의무를 다하려는 의지는 이전의 종교적인 힘이나 왕권의 힘 대신 근대적 민족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의 자발적 충성심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며 “민족을 위한 제일의 희생으로 취급되는 (남성들의) 전사적 희생은 군대 안팎에서 그 사회의 군사화된 남성성을 부양한다”고 지적했다. 즉, ‘남성을 위한 제2차 학교’로서의 징병제도는 △10대의 방황과 사회질서에 대한 저항을 끝내고 조직화된 시민사회속에서 협조하고 순종하며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있는 남성이 되었음을 알리는 확인서임과 동시에 결국 △군가산점과 더불어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의 위치를 더욱 공고화하는 특권으로 분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권씨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같은 군부대 출신 선후배들이 함께 참석해 추억을 회상하며 우의를 다지는 형식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부정적인 평가가 거의 없을 정도로 ‘훈훈하며 자랑스러운’ 분위기다.

매매춘 문화와도 결부

사진/징병제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단 한번도 도전받지 않아온 제도로 꼽힌다. 입영열차를 타고 있는 젊은이들. 획일화된 징병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확산되면서 대체봉사제 주장이 힘을얻고 있다.(강창광 기자)
권씨는 이같은 성 차별화된 징병제 속에서 아버지에게 주어지는 구실과 어머니에게 주어지는 구실이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회창 후보 아들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아버지는 아들이 군대에 가서 국가방어의 의무를 다할 것을 격려함으로써 자신의 부성적 본능을 극복하는 이성적 인간으로 표현되기를 기대받지만, 어머니는 다분히 감정적인 부분을 담당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가장 극적인 예는 인기리에 방영됐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에서 ‘그리운 어머니’ 코너로 꼽힌다. “신기하리만치 징병제의 감정적인 부분에서 아버지는 사라진다.”

이 부분에서 권씨는 묻는다. 만약 대통령 후보가 여성이었고 그 여성 후보의 아들이 징집이 면제되었다면 여론을 어떠했을까라고. 권씨의 대답은 냉정하다. “아마도 그 후보에 대한 비판은 이회창 후보에 대한 비판의 정도보다는 덜하였을 것이다. 그 여성 후보의 행동은 절박한 어머니의 자식사랑으로 이해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 후보는 바로 그런 이유로 이성적이고 책임있는 멤버가 될 수 없다는 근본적인 의심을 받으면서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권씨는 이와 함께 두 가지 중요한 문제제기를 던진다. 첫째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가 나타내는 한 특성인 강한 남성적 동류의식의 한 근거를 군대경험이 획득하는 연대감이 제공한다는 것, 둘째는 군사화된 남성성과 성폭력이나 지나치게 비대화한 매매춘 문화와의 관련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 권씨는 “법이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만연해 있는 성적 불평등이나 다분히 폭력적인 남녀간의 관계, 100만이 넘는다는 매춘여성의 존재도 이 징병제도와 깊은 상관관계를 맺는다”면서 더욱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씨의 발표를 계기로 징병제를 여성주의 시각으로 분석하는 것은 현존하는 여성 문제를 좀더 역사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한 작업이라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어쨌든 1949년 병역법 제정으로 육군 2년, 해군 3년의 의무복무기간을 설정하면서 도입된 뒤로 별다른 도전을 받지 않은 채 골간이 유지돼온 징병제도는 올해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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