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름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 조치당한 전 천하장사 이만기 교수…“사법부 계류 중인 사건으로 징계… 구원 씻는 공청회 마련하자”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천하장사는 지쳐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얇은 담배를 꺼내물었다. 지난 9월4일 한국씨름연맹(이하 연맹)으로부터 영구 제명 조치를 당한 뒤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83년 1대 천하장사, 역대 최다인 10차례 천하장사 우승 등으로 씨름의 상징적 인물인 그가 왜 씨름계에서 퇴출당했을까. 9월8일 경남 김해 인제대학교에서 이만기(43·사회체육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그동안 내가 씨름판에 흘린 피와 땀을 생각하면 연맹의 이번 조치는 심각한 명예훼손이자 사형선고 같은 것”이라며 “동료 씨름인들과 상의한 뒤 일단 재심을 요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2005년 경기장 밖 평화시위가 꼬투리
연맹 상벌위원회는 이 교수가 1999년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맹을 지속적으로 부정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며 무기한 자격정지를 내렸다. 구체적인 ‘혐의’가 뭔가. =업무방해? 내가 연맹에 가서 집기를 부쉈나, 아니면 그분들 일을 못 보게 했나. 업무방해라면 형사상 죄를 물어야 할 사안 아닌가? 연맹이 어떤 규정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연맹을 부정했다는데 그런 적 없다.
씨름의 인기는 몇 년째 내리막길이다. 2004년 이후 LG투자증권, 신창건설 씨름단이 해체됐다. 최홍만, 이태현은 씨름판을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씨름을 살리려는 충정에서 쓴소리를 한 것뿐이다. 애정 어린 비판이고 대안 제시다. 비난이나 비방도 아니었다.
상벌위원회가 징계 사유로 제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교수는 소명할 기회가 없었나.
=크게 두 가지다. 이준희, 홍현욱 장사 등 씨름 1세대들이 모여 만든 민속씨름동우회라는 단체가 있다. 말 그대로 친목단체다. 씨름 원로들도 원로들의 모임이 있다. 동우회에는 선수 생활을 하다 30살 넘은 동료가 주로 참여하고 있다. 연맹은 동우회가 2005년 김천 장사대회 때 김재기 연맹 총재의 퇴진을 요구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했다. 그런 사실이 없다. 당시 씨름의 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프로팀이 해체되고 기업 씨름단과 연맹 쪽의 갈등으로 선수들이 뛰지 못했다. 나는 후배들에게 평화적으로 뜻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래판 위에 벌렁 드러눕는 식의, 씨름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방식은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경기장 안에서는 경기를 하고, 대회에 참여하지 못한 후배들은 바깥에서 평화 시위를 벌인 것이다. 나도 그 자리에서 발언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씨름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경기장 안에 있는 선수나 바깥에 있는 선수 모두에게 격려와 용기를 보내달라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김재기 총재 퇴진을 요구하거나 비방한 적은 없다.
그 사건은 연맹 쪽이 이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지 않은가
=며칠 전에도 그것 때문에 수원에 다녀왔다. 처음 경찰 조사 뒤에 무혐의가 내려졌는데 결국 불구속 기소가 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상벌위원회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그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법부가 잘잘못을 가리고 있는 중이니 결과가 나온 뒤에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 사건을 이유로 징계했다.
현재 이 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는 민속씨름동우회가 최근 몇 년 동안 연맹을 비판하고 대립각을 세워온 것은 사실 아닌가.
=동우회는 친목단체다. 연맹의 지도부가 씨름인 사이의 갈등을 치유하지 못하고, 공약을 이행하지도 않았다. 프로팀들이 잇따라 해체되고 새로 창설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갈등을 빚고 있는 쪽과 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비상대책위 구성 요구도 묵살됐다. 우리는 씨름인으로서 발언을 했던 것이다. 성명서 한 번 낸 것밖에 없다. 동우회는 연맹 지도부를 불신임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 있지도 않다.
근거 없이 씨름협회 발기인 대표로 몰았다
또 다른 징계 사유는 무엇인가.
=내가 연맹을 부정하고 연맹을 대체할 다른 조직을 만들려 한 핵심 주도자였다는 것인데…. 이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교수가 연맹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을 주도했다는 것인가.
=반기를 들거나 한 적이 없다. 연맹 내부, 씨름인들 내부에 갈등이 있어왔다. 지난해에 대한씨름협회(대학과 아마추어 실업팀들이 참여, 한국씨름연맹은 프로팀으로 구성) 산하에 한국민족씨름위원회(프로팀이 1개밖에 남지 않아 연맹의 존립 근거가 희박해지자 연맹 대체 조직 성격으로 지난해 발족했으나 이후 흐지부지해졌다)를 발족하는 과정에서 그 뜻에 동의해 발기인으로 참여한 적은 있다. 연맹 상벌위원회가 근거로 제시한 자료에는 내가 발기인 대표로 돼 있던데 결정적으로 사인이나 도장이 없다. 그리고 2005년 7월23일 전남 광양에서 한국민족씨름위원회 창립총회가 열렸는데 나는 그 하루 전에 외국 출장을 갔다가 8월10일께 돌아왔다. 창립총회에 참석하지도 않은 사람이 주도자인가. 어불성설이다.
그동안 연맹 쪽을 비판해온 씨름인이 이 교수만은 아닐 텐데 왜 이 교수가 징계 대상이 됐나.
=나는 객관적 논리에 따라 상벌위에서 징계를 했다고 보지 않는다.
감정에 의한 것 아닌가. 내가 씨름 발전의 걸림돌이고 저해 요인이라면, 영구 제명, 장사 자격 박탈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씨름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고, 내가 걸림돌이라면 스스로 관여하지 않고 나타나지 않겠다. 연맹이 뭐라 해도 국민들에게는 영원한 씨름인으로, 천하장사 소유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씨름계의 상징적인 인물이어서 연맹이 본보기 차원에서 징계를 했다고 보는가.
=그런 것 같다.
씨름이 위기를 맞은 것이 전적으로 연맹의 책임인가. 구체적으로 연맹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가.
=사실 씨름인 전체의 책임이다. 연맹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겠지만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고 미래에 대비했어야 한다. 씨름대회 개최지를 봐라. 처음엔 대도시에서 하다가 중소도시로, 다시 군 단위로 내려갔다. 예전엔 남녀노소가 다 씨름을 즐겼다. 초등학생들도 지금 야구나 축구 선수들 이름을 꿰고 있는 것처럼 씨름 선수들을 알았다. 지금은 모른다. 큰 대회가 열린 뒤에는 다음날 경기를 소재로 얘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지금 씨름대회장에 가보면 1980년대와 차이가 없다. 관중석은 저 뒤에 있고, 선수들은 모래판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고…. 야외에서 하던 씨름을 실내로 끌어들인 것은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다. 국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 출발했는데 그 뒤에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 최소한 연맹 쪽에 시대가 변했는데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과가 맛있다고 무조건 먹일 수 있나
다른 스포츠에 비해 씨름이 재미가 없어서 인기가 시들해진 것 아닌가.
=씨름 자체로만 얘기하면, 사실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기는 재미가 있다. 그게 기술이다. 당시에는 기술 씨름 위주였다. 그런데 강호동 이후 김정필 등으로 선수들이 대형화됐다. 기술 씨름이 힘 씨름으로 바뀐 것이다. 연맹은 관중이 어디에 재미를 느끼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교하게 분석해 대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지금은 디지털 세대다. 씨름이 전통 경기니까 사랑해달라? 얘기가 안 된다. 전통 한과가 맛있다고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무조건 먹이나? 21세기에 발맞춰 변화했어야 한다. 축구를 봐라. 2002년에는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못하게 했다. 새로운 규칙을 도입해 박진감 넘치고 공격적인 축구를 하도록 했다. 골이 많이 나도록 공을 과학적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그렇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데 씨름은 기술이 퇴보하는 과정이었다.
이 교수도 연맹에서 이사를 지낸 적이 있지 않나. 동우회 차원에서도 그런 지적들을 많이 하지 않았나. 연맹의 분위기가 그렇게 경직적인가.
=그렇다고 봐야지.
예전 이 교수의 경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씨름 하면 이만기 이름을 떠올린다. 이 교수는 씨름의 위기를 타개할 만한 대안이 있나.
=없다.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 영구 제명된 마당에 나랑 무슨 상관인가. (웃음) 농담이다.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야지. 씨름인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공청회를 제안하고 싶다. 그동안의 잘잘못을 떠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씨름이 재도약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방식으로…. 일본 씨름인 스모에서 벤치마킹할 것이 있으면 하고…. 구원을 씻고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
연맹이 프로 씨름단으로 구성됐다면 이제 프로 씨름단이 1개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씨름계의 새 판을 짜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많다.
=그런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겠다. 연맹 상벌위원회 자료 중 상당수는 언론에 보도된 내 말들이었다. 내 말을 좁은 지면에 담다 보니 때로는 과장되고 때로는 내 뜻과 다르게 표현된 것도 있었는데 말이다.
징계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현재 동우회 차원에서 얘기를 하고 있다. 일단 재심을 요청할 생각이다. 사실 이번 징계는 절차에도 하자가 많다. 절차에 따라 제명을 한다면, 소명할 기회를 주고 취합한 뒤 근거자료를 통해 총재의 재가를 받고 내게 통보하고 재심 기회를 준 뒤 총재 재가 뒤에 집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상벌위원회가 끝난 지 2시간이 안 되어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나는 통보를 받지도 못했다. 이건 명백한 명예훼손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수년 동안 모래판에서 땀과 피를 흘렸다. 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선수 생활만 7년 했다. 내가 이룬 성과는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그런데 영구 제명이라니…. 내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절차도 문제… 소명 기회 없이 언론에 발표
이 교수는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 많이 노력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몇 년 동안 지속돼온 연맹 내부의 갈등과 대응 방식 등을 보면 정치판과 비슷한 구석도 있는 것 같다.
=씨름판이 정치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천하장사는 지쳐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얇은 담배를 꺼내물었다. 지난 9월4일 한국씨름연맹(이하 연맹)으로부터 영구 제명 조치를 당한 뒤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83년 1대 천하장사, 역대 최다인 10차례 천하장사 우승 등으로 씨름의 상징적 인물인 그가 왜 씨름계에서 퇴출당했을까. 9월8일 경남 김해 인제대학교에서 이만기(43·사회체육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그동안 내가 씨름판에 흘린 피와 땀을 생각하면 연맹의 이번 조치는 심각한 명예훼손이자 사형선고 같은 것”이라며 “동료 씨름인들과 상의한 뒤 일단 재심을 요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2005년 경기장 밖 평화시위가 꼬투리
연맹 상벌위원회는 이 교수가 1999년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맹을 지속적으로 부정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며 무기한 자격정지를 내렸다. 구체적인 ‘혐의’가 뭔가. =업무방해? 내가 연맹에 가서 집기를 부쉈나, 아니면 그분들 일을 못 보게 했나. 업무방해라면 형사상 죄를 물어야 할 사안 아닌가? 연맹이 어떤 규정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연맹을 부정했다는데 그런 적 없다.
1985년 천하장사 씨름대회 결승전에서 이만기는 이준희를 꺾고 천하장사를 차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