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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내 뼈와 살 속의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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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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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직후의 저항감을 말소시킨 청년시절의 미국 대중문화들… 한국 땅에 살면서도 정체성 문제에 시달리는 건 우리세대의 비극

▣ 정기용 건축가

이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세계인’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서서히 한 나라의 국민이 되고 성장이 멈춘 다음은 내가 아닌 남이 된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나는 사회적으로 명명한 ‘정기용’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 나머지 누군가 뒤에서 ‘정기용’ 하고 호명하면 뒤를 돌아보게 되는데, 그때 정기용은 진짜 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훈육되고 처절하게 사회적 정기용이 되기 위해 애쓴 또 다른 사람이다. 즉 나는 순수하게 내가 아니다. 이런 역설이 어디 있나 싶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그렇다.

미국을 객관화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려 애쓰지만, 청년시절 미국에 오염돼버린 신체를 복원시키기 쉽지 않다. 몸 안에서 울리는 미국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시비를 건다.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요즈음 한국과 관련된 중요한 쟁점들의 근원이 하나같이 ‘미국’과의 관계로 인한 것들임을 감안할 때 나는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질문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혹시 미국인으로 자라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한반도의 정세를 좌지우지하는 나라, 아니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나라 미국의 입김은 나의 유년시절부터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것은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대청마루 ‘양공주 연극’의 추억

한국전쟁이 끝나고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을지로5가 방산초등학교를 다니며 마주친 미군들, 미군들의 팔짱을 낀 한국 여성들, 이른바 ‘양공주’라고 불리던 여인들을 보며 어린 마음속 깊은 곳에 꿈틀대던 이상야릇한 저항감, 그리고 금방 시들해진 무기력감을 잊을 수 없다. 어찌해서 저 이방인들은 우리 누이들을 백주에 옆에 끼고 다닌단 말인가? 아직 이런저런 분별력이 미약하고 지적으로도 한참 어린 시절 내 나라 여인들을 유린하고 희롱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막연한 질투심과 언젠가는 보복할 것 같은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또래 친구들과 방과 후 어느 집에선가 연극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2~3학년이 된 꼬마들이 “얘, 너는 미군 해. 나는 양공주 할게. 내가 지나가면 와서 팔짱을 껴.” 언뜻 떠오르는 이 단막극, 대청마루에서 벌어졌던, 관객 없는 단막극의 관객은 우리 자신이었다. 그러다가도 미군을 마주치면 “헤이 기브 미 초코렛”을 외치고 팔을 설레설레 흔들며 지나가면 멋쩍어하던 어린 시절, 때론 지나가는 미군 차량에 돌팔매도 날리고, 학교가 파할 때면 학교 창고 앞에서 줄을 섰다. 영문자로 쓴 누런 종이 우유통 속에서 한 됫박씩 퍼주던 분유, 때로는 달걀 노른자 가루를 타서 집에 자랑스럽게 배달하던 시절, 미국은 마르지 않는 샘이며, 우리가 가볼 수 없는 천국이었다.

한 반에 한두 명씩 있던 ‘하우스 보이’들, 전쟁통에 고아가 되어 미군부대에 거주하며, 알록달록한 체크무늬 잠바를 입고, 머리는 길게 빗어 한쪽으로 넘긴 아이들은 추잉껌과 미국산 젤리를 넣고 와서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부잣집 아들은 아닌데 ‘외국인’ 같은 행세와 언행을 하며 공부는 잘 못하던 그 아이들은 영락없이 교실 속의 튀기 미국인 같아 보였다. 그들의 모습이 아마도 우리가 은근히 닮고 싶어하던 어린 날의 고독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그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고아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청년시절 듣던 미국의 팝송이 우리 가슴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가!

간혹 라디오에서 온갖 종류의 흘러간 팝송만 나오면 가슴이 저린 것은 바로 그런 이유는 아닌가 묻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추억’의 옛 그림자가 아니라 빈한하고 척박하던 시절 우리 뇌리에 깊게 박혀버린 달콤한 속삭임들이었다. 가사의 내용은 잘 모른 채로 은근히 청년들의 마음을 흔들어대던 미국 대중문화의 주술 같은 것이었다. 패티 페이지의 <체인징 파트너>, 플래터스의 <온리 유>, 해리 벨라폰테의 <마틸다>, 딘 마틴의 <리오그란데>, 폴 앵카의 <크레이지 러브>, 클리프 리처드의 <디 영 원스>, 레이 찰스의 <아이 캔트 스탑 러빙 유> 등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스쳐간 명곡(?)들은 끝이 없다. 국악 가락에 흥을 돋기 전에 우리는 흠뻑 미국 대중음악에 영혼을 팔았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64학번인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우리는 모두 ‘할리우드 키드’가 되어 틈만 나면 매일 만원인 영화관에서 온갖 종류의 서부영화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끔씩은 멜로영화에 눈물을 흘렸다. 물론 미국 팝송을 듣고 할리우드 영화를 본다고 미국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음으로 양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서서히 그리고 거리낌 없이 미국에 동화돼가고 있었다.

이 땅을 살다간 조선조 사대부들의 정신 속에 중국 명나라가 세계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한반도 남반부의 대중에게 미국은 세계의 중심이 된 셈이다. 중국의 은혜(?)를 잊지 않고자 경복궁 안에 중국의 역대 왕에게 제를 올리는 공간이 있었다면 이제 한국 땅 모두가 골고루 한국을 지켜준다는 명분하에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군들의 주둔지가 되었다. 중국이 ‘학문의 근원지’였던 것처럼 미국은 한국 유학생들에게 ‘박사’를 공급해주는 학문의 발신처가 되었다. 조선조 때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섬기던 부류는 그래도 글문을 이해하던 사대부들에 국한했다면 지금 이 시대에는 눈과 귀가 있는 모든 일반 대중들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미국은 개념적으로만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신체 내부에 깊이 들어와 있다. 뼈와 살 속에, 그리고 피 속에까지 철두철미하게 들어온 나머지 DNA까지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반미냐 친미냐”는 겉도는 시비일 뿐

나 또한 지금은 객관적으로 바로 보려고 애쓰며 미국을 세계의 패권국가로 규정하고 비판적 시각을 가져보려고 애쓰지만 정서적으로 오염된 신체 속에서 미국을 지울 수는 없다. 나도 모르게 내 몸속에 퍼진 ‘미국의 울림’은 한국인인 나에게 정체성의 시비를 걸어온다. 우리는 멀쩡히 한국 땅에 살면서도 이민자들보다 더한 정체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이 우리 세대의 비극이다.

반미냐 친미냐 하는 시비나 좌파냐 우파냐 하는 시비는 모두 겉도는 이야기일 뿐이다.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모두 판단 이전 상태에서 사회화 과정을 수동적으로 인수한 것에 대해 시비를 걸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의 각기 다른 모든 문화들이 동일한 반열에 놓이도록 방향을 잡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올바른 ‘세계화’를 체험케 할 의무를 통감해야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내 안의 미국을 해방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통일의 첫걸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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