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적절했던 세 명의 고백과 용서… 비예술적인 귄터 그라스의 나치 전력 자백에 그들을 떠올리다
▣ 최윤 소설가·서강대 프랑스 문화학과 교수
성장기에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드물겠지만 나 또한 문제적 반항기를 톡톡히 지나쳤고 성장통도 만만치 않게 겪었다. 그런 성향이 한몫했는지 아니면 그때는 실제 상황이 그랬는지 어린 눈에 드러난 성인들의 생활에 나는 무작정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치 인생이 30에 끝날 것 같은 허무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각별히 닮기 싫은 안티 모델이 자주 눈에 띄었고, 그때마다 기회가 되면 발설할 비판적인 발언 한두 마디를 비밀리에 준비해두고 있었다. ‘나중에 절대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내심 되뇌게 하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닮음직한 사람들을 책 속에서 찾다가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의 재발견
그런데 성인이 되고도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날 나는 내 주변에 정말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책 속에서가 아니라 살과 뼈와 피가 있는 진짜 사람들로 말이다. 약간의 차이야 있겠지만 그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사이, 좋은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늘고 줄어드는 것이 아닐 텐데 어느 날 떠올려본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있기에 내 삶이 풍성해지는 그런 사람들로 변모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중 대부분은 내가 어렸을 때도 내 삶의 반경에서 늘 자신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을 보는 나의 시선과 잣대가 변모함으로써 나는 뒤늦게 그들을 재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변모가 세상에 실망하고 읽어제친 무수한 책들에 빚진 바 큼은 물론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도 정말 삶이 예술인 사람이 여럿 있다. 그들의 삶이 완벽했거나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기에 이런 수식을 붙여주는 것이 아니다. 혹은 삶과 예술을 혼동해 예술적으로 치장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삶이 예술이었던 것은 그것이 아주 자연스러웠을 뿐 아니라, 여일한 자연스러움이 마치 뛰어난 예술이 가끔 그렇듯이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의 삶 또한 그만큼 자연스럽게 순화시켜 두고두고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나는 사적지를 가득 메운 왕릉들에 관심이 없듯이 공적인 영웅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전기를 읽어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주 구체적인 결정들로 가득 차 있는 매일매일의 삶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예술이었다고 수식하는 분들은 다르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 지금은 돌아가신 세 분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는데, 그들은 어쩌면 모두 비범을 숨기고 평범하게 살다가 가신 분들이다. 그러나 내가 가까이에서 자주 접했고, 구체적으로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보아왔기에 그들의 여일한 삶의 태도에 나는 큰 영향을 받았다. 허락을 구할 수 없는 곳에 그분들이 계시기에 사생활을 내 맘대로 노출할 수는 없지만, 그중 한 분은 일생의 대부분을 주부로 살다 간 나의 어머니고 또 한 분은 내 동료였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간호사 생활을 잠시 하다 낙향해 농사를 짓다 간 유년의 친구였다는 정도만 밝혀두자.
이분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아무도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요구하지도 않았음에도 한 개인으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매순간 인식하면서 자신의 인격적 목표를 어딘가에 잡아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는 데 있다. 이들의 삶의 철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사회의 대표이자 대변자이며, 그들의 행위가 그 사회의 행위 지표라고 믿고 살아갔다는 데 있어서 매우 독특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예외적으로 생각하는 미담에 그 일을 자신이 한 것처럼 자긍심을 느꼈고, 기상천외한 범죄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자신들 손으로 그 일들이 저질러진 것처럼 그런 사건을 만든 자신이 속한 사회를 창피해했고 애통해했다.
비예술적이며 비작가적인 그 고백
그러나 내가 이들의 삶에서 예술을 보는 것은, 그들이 맺고 있는 복잡한 인간관계의 모든 일에 가장 적합한 때를 알아보고 그에 따라 조언을 하고 행동했으며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어떤 상황에서건 고도의 예술적 직관으로 알아차렸다는 데 있다. 물론 이 예술적 직관을 만드는 것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민감한 사랑과 배려다. 그 모든 일을 이루는 타이밍과 정도는 각각의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예술적 수준에 도달한 그런 드문 사람들에 그들이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연유인지는 알 수 없으니 그들은 각자 인생의 매우 어려운 시점에서, 여러모로 자신보다 한참 뒤에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내가 단지 이야기를 믿고 들어주는 소설가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그들이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했던 치부와 과거를 담담하게 말하고, 그 다음에는 그 사건의 당사자에게 직접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는 데 있다. 그들이 나를 그들 삶의 증인으로 삼아준 것에 나는 두고두고 감사한다.
최근 때도 놓치고 상대자도 놓친 뒤늦은 고백으로 서구 사회뿐 아니라 전세계 문인들을 당혹하게 한, 귄터 그라스의 청년기의 나치 행적에 대한 자백 기사를 읽고 나는 다시 한 번 내 인생의 아름다운 요정인 이 세 분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되었다. 얼마나 빈곤한 노벨상 수상작가의 고백인가. 그러나 한 노장의 고백을 책 한 권을 팔기 위한 술수로 치부한 한 독일 언론의 입장도 빈곤하다. 귄터 그라스의 고백에 부합하는 어떤 행동이 따를지 아닐지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든 그의 고백은 비예술적이며 비작가적이다. 생각해본다, 후대를 위해 무엇이 차악이었을까. 때늦긴 했어도 이뤄진 고백이, 아니면 무덤에까지 은닉된 침묵이, 또는 타인이 파헤친 폭로가?
소설가·서강대 프랑스문화학과 교수
그런데 성인이 되고도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날 나는 내 주변에 정말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책 속에서가 아니라 살과 뼈와 피가 있는 진짜 사람들로 말이다. 약간의 차이야 있겠지만 그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사이, 좋은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늘고 줄어드는 것이 아닐 텐데 어느 날 떠올려본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있기에 내 삶이 풍성해지는 그런 사람들로 변모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중 대부분은 내가 어렸을 때도 내 삶의 반경에서 늘 자신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때도 놓치고 상대자도 놓친 귄터 그라스의 고백은 서구 사회뿐 아니라 전세계 문인들을 당혹하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