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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중요한 결정은 사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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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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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게 펼쳐진 광물적 자연 앞에서 소박한 자신을 되찾는 기회…조금 비싸지만 ‘자아비만증’ 현대인에게 가끔 필요한 다이어트 상품

▣ 최윤 소설가·서강대학교 프랑스문화학과 교수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어바인은 반세기 전만 해도 사막의 일부였다. 어디를 가나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자그마한 도시에서 차로 조금만 벗어나도 끝없이 펼쳐져 있는 메마른 평원과 때로는 갈색으로 때로는 검은색으로 도시를 둘러친 나즈막한 돌산을 볼 수 있다. 역시 사막 기후답게 이 계절에 어바인의 낮은 뜨겁고 밤은 선선하다. 사막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것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도시 안으로 들어오면 주변의 다른 소도시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눈에 띄게 사방이 녹색이다. 바로 옆의 주에서 물을 끌어와 만든 일종의 인공 계획 도시여서,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수도관이 잔디밭에서 솟아올라와 작은 물의 요정들이 일렬로 서서 춤을 추듯 도시의 반 이상을 족히 덮고 있는 녹지대에 물을 뿌린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서 원래 만들어진 대로의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교외로 한 시간 반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사막.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이 아담한 도시 전체의 수로들이 구간과 시간대에 따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동돼 물을 공급받으니 도시 안에서 살다 보면 이곳이 한때 사막이었다는 것을 잊으며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가끔 화단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막성 기후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색채의 야생화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투루판, 안온한 수면의 안내자

사막도시들은 그 생존의 양상에 관한 한 늘 다소간 신비하다. 정확하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나는 러시아에 가까운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도시 투루판에서 생일을 맞은 적이 있다. 톈산의 백년설이 녹아들어가 고인 지하 수천m에서 물을 끌어와 포도나무를 키우며 도시를 포도넝굴로 덮은 기이한 도시였다. 지하 깊은 곳에 일종의 지하수로를 건설해 이 도시에 물을 공급한다. 톈산이 멀리 보이는 사막 한중간에서 만난 이 도시의 모습은 하도 인상이 깊어 오랫동안 잠들기 전에 떠올리는 안온한 수면의 안내자였다. 놀랍게도 투루판에서는 중국 전체에서 손에 꼽히는 최고급의 포도주가 생산된다. 투루판을 터전으로 삼아 살고 있는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의 기질은 매우 활발했으며 나는 율동보다는 급한 리듬의 춤과 그들의 지혜로운 표정을 오랫동안 기억에 담았었다.

나는 사막을 찾아가는 사막광은 아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다닌 여행의 행로를 뒤돌아보다가 내가 사막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어떤 여행지에 사막을 지나게 되어 그 길을 택했던 것도 아니다. 여행의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막들이 기억에 남았고 내 의식의 어딘가에 흔적을 남겼다.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다 만난 사막, 중동지역을 여행하다가 길을 연장해 맛본 사해 근처의 사막, 북아프리카의 사막지대, 캘리포니아의 데스 밸리….

사막에서만 발휘되는 희귀한 인간의 지혜도 내 마음을 건드리지만 이런 여행의 귀중함은 사막의 건조함과 온전히 광대하게 펼쳐진 광물적인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외심과 겸허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쎄, 나는 아직 극지방을 보지는 못했지만 극지방에서도 사막에서와 같은 광활함과 무한을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추정할 뿐이다. 특히 한밤중에 사막을 바라보다 보면 인간은 사막의 밤에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법을 배웠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막은 늘 어느 정도는 인간의 잊혀진 종교적 본성을 되살리는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사막은 실제로 ‘볼거리’로는 그다지 변화무쌍하지 않고 풍부한 지식을 가져다주는 여행이 될 수는 없지만 사막의 경험은 예외 없이 우리 존재의 어딘가에 각인되어 두고두고 영향을 끼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사막을 가로지른 뒤에는 늘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선물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평화라는 이름의 선물. 그보다는 사막 여행을 한 뒤에는 삶의 많은 사건들의 의미가 원래 크기대로 작게 느껴졌기에 작아진 것들의 평화가 선물 같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사막은 유년기에 권장할 만한 여로는 아니다. 실제로 아이들을 데리고 사막 여행을 해보면 처음에는 신기해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여일한 풍경, 편안하지 않은 여정, 아무 놀거리 없는 펼쳐진 무채색으로 기억되는 단조로운 색조의 길 앞에서 참 지루해한다. 글쎄, 내 생각에 사막은 각 사람의 성숙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는 즈음에 시도하기에 적합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어떻건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사막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사막에서 사람은 원래 만들어진 대로의 소박한 자신을 되찾는 기회를 갖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 사막에서 만난 뜨거우면서도 순전한 그곳 주민들의 눈길에 나는 오래 남는 감동을 받았다.

일터에서의 관계 갈등을 넘기 위해

나는 가끔 농담처럼 근대 이후를 자아비만증의 점진적인 심화 단계로 진단하곤 한다. 심화를 지나쳐 이제 서서히 그 비만증의 역효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원인들을 따져보면 매우 복잡하지만 현대의 모든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인 구조들이 비만증의 자아 만족을 위해 동원되었다고 보면 또 그렇게 보인다. 자아비만증의 심각한 증상 중 하나는 갈등을 만드는 것이다. 부딪치는 비만증 자아들이 해결점이 찾아질 수 없이 팽팽히 부딪쳐 직장은 물론 형제나 이웃도 다 갈등의 대상이다. 실제 이 비만증을 일찍부터 겪고 있는 서구 어떤 나라에서 성인의 30% 정도가 직·간접적으로 정신치료가 필요하며, 그 원인은 일터에서의 관계 갈등이라고 들었다. 요즈음의 이혼율 증가의 저변에서도 이 비만증이 슬쩍 엿보인다. 이 자아비만증은 확실히 전 지구가 무수한 네트워크로 맞물려가는 현대가 제안하는 새로운 패션에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난처한 비만증임이 틀림없다. 사막 여행은 이런 자아비만증 현대인들에게 가끔 필요한 다이어트 상품이 아닐까 제안해본다. 물론 조금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한다. 고비용의 다이어트 치료제 중 하나인 사막을 가지 않고도 그런 비만증에서 벗어났거나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분명 축복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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