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의 빵빵한 신랑감 찾던 친구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다… 외적 조건보다 요리·설거지 등 ‘신랑수업’ 잘 된 이 고를 때
▣ 김선주
미국에 사는 아무개가 사진 두 장을 갖고 왔다. 딸 사진이다. 서른여섯과 서른넷. 둘 다 박사학위 딴 지 오래고 이미 각기 대학의 교수로 있다. 남편감 좀 구해달라는 것이다. 조건은? 그래도 애들이 박사고 교수니까 그 급이 되는 사람이면 좋고, 아니면 의사·판사·변호사 등 ‘사’자돌림이거나 그것도 안 되면 빵빵한 집안의 아들로 가업을 이어받을 사람이란다. 그런 놈 가운데 아직 장가 안 간 놈이 어디 있냐, 서울에도 남자 씨가 말랐다고 소리를 버럭 질러버렸다.
‘사’자 좋으면 정원사·미용사는 어떤가
아들딸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시책에 호응한 우리 세대는 지금 자식들 결혼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결혼 피로연에서 만난 친지들 가운데 남의 혼사를 노골적으로 부러워하는 경우가 꽤 있다. 아들들은 그럭저럭 결혼을 시켰는데 딸들을 결혼을 못 시켜 안달들이다. 이렇게 가다가 마흔도 넘기겠다고. 전에는 서른엔 방을 빼겠지 싶었는데 요즘엔 마흔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한탄을 한다. 빨리 결혼했다가 이혼해서 돌아오면 어떡하느냐 그냥 놔둬라 하면, 딸이 그냥 늙어가는 걸 보느니 돌아올 때 돌아오더라도 한 번은 결혼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까지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주변에 꽤 괜찮은 여자들이 혼자 사는 경우가 아주 많다. 서른, 마흔, 쉰, 결정적인 미혼과 미혼 비슷한 미혼, 돌아온 싱글, 싱글맘 등 종류도 많은데 앉으면 괜찮은 여자들이 많은데 괜찮은 남자들은 왜 이리도 없느냐고 한다. 괜찮은 남자는 다 유부남이라고 은근슬쩍 남의 남자를 넘보는 경우도 있다. 괜찮아 보이는 유부남도 실은 너희가 옛날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변변치 않은 남자였다. 다 마누라들이 잘 챙겨서 멋있어진 것이라고 하면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친구에게 어떻게 딸자식을 자기 짝 하나 고르지 못하는 팔푼이로 키웠냐고 질책을 하고 내 설교는 계속됐다.
눈을 낮춰라. 그런 집에서 교수 며느리 보면 좋아할 줄 아느냐. 너도 알다시피 결혼은 패밀리 비즈니스인데, 특히 남자 쪽이 빵빵한 조건을 갖추었다면 그건 장난 아닌 패밀리 비즈니스다. 집안에 며느리 들이면 없던 가풍도 생기고, 집 나갔던 고모 삼촌까지 몰려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 패밀리 비즈니스형 결혼이다. 그런 곳에 시집보내놓으면 내조하랴 시집살이하랴 딸이 제대로 사회생활 하겠냐고 타일렀다. ‘사’자 돌림 좋아하니 내가 진정으로 권한다. 요리사와 정원사 어떠냐. 장래성 있고 외국에서는 요리사와 정원사도 아티스트고 사회적 지위도 높다며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정원도 잘 가꾸고 외조를 해주면 딸의 인생은 진짜로 대박 나는 거라고 했더니 친구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내 말이 그럴싸했는지 “정말 그렇지?” 하며 뭔가 계산을 맞춰보는 듯 두 눈을 반짝였다.
주변에 아무개 딸이 귀국했는데 신랑감 어디 없겠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이도 많지만 직업도 연봉도 사회적 지위도 대단했다. 어렸을 때부터 과외로 돌리고 피아노, 미술, 수영, 외국어 이런 것은 마스터하고 얼굴까지 성형해서 조건은 모두 갖추었다. 그러고 나니 그 조건에 맞는 신랑감 찾기가 난감해졌다. 왜 남자가 여자보다 조건이 좋아야 하는가. 왜 나이도 학벌도 집안도 여자보다 다 높아야 잘한 결혼이 되는가. 그런 고정관념만 버리면 결혼은 훨씬 쉬워진다.
‘남자 팔자 뒤웅박 팔자’가 편한 시대
결혼은 침대를 같이 쓸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냉장고와 화장실을 같이 쓸 사람을 구하는 거다. 그러니까 같이 잠자고 같이 먹고 같이 배설할 짝을 구하는 것이다. 침대만 같이 쓰려면 굳이 결혼할 필요도 없다. 냉장고와 화장실은 생활의 인풋과 아웃풋을 상징한다. 지지고 볶는 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것이다. 거기에 무슨 조건이 그렇게도 많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집안과 학벌을 따져 남 보기에 번드르르한 결혼을 하기보다 뜻이 맞고, 그러니까 가치관을 갖고 이 모든 일을 유쾌하게 같이 해나갈 만한 평생 친구를 구한다고 생각하면 현실적인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진다.
늦게 결혼해 나이 마흔 넘어 아들 하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우는 후배가 있다. 남편을 쥐락펴락하고 산다며 으스대는 친구인데, 며느리가 들어와서 자기 아들을 쥐고 흔들고 살 것을 생각하면 부르르 떨린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노선을 수정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억세고 씩씩한 여자를 만나 사는 부부들의 결혼 생활이 원만해 보인다며 자기 아들도 이 거친 세파를 뚫고 나가려면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남편만 바라보는 며느리는 곤란한 게 아닌가라고 했다. 아들 뼈골 빠지게 하는 여자보다, 아들은 지 좋아하는 일 하며 살고 며느리가 앞장서서 모든 대소사를 운영하면 내 아들이 고생을 덜할 것 아니냐는 아주 이기적인 마음을 내비친 것이다. 아무래도 남자 팔자 뒤웅박 팔자로 사는 것이 편한 시대가 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우리 사회는 지금 학벌 좋고 돈 잘 벌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여자들이 대량으로 배출되고 있다. 아들딸 구별 않고 둘만 낳아 잘 기른 세대들의 승리이자 보람이다. 그러니까 아들이 학벌도 별로고 유약하고 어쩐지 미래가 걱정된다고 걱정하지 말 일이다. 요리도 청소도 설거지도 시켜서 신랑수업을 잘 시킬 일이다. 필요가 있는 곳에 수요가 생긴다. 내조 잘할 여자를 구하는 세상이 지나가고 외조를 잘할 남자가 인기 있는 세상이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아들딸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시책에 호응한 우리 세대는 지금 자식들 결혼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결혼 피로연에서 만난 친지들 가운데 남의 혼사를 노골적으로 부러워하는 경우가 꽤 있다. 아들들은 그럭저럭 결혼을 시켰는데 딸들을 결혼을 못 시켜 안달들이다. 이렇게 가다가 마흔도 넘기겠다고. 전에는 서른엔 방을 빼겠지 싶었는데 요즘엔 마흔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한탄을 한다. 빨리 결혼했다가 이혼해서 돌아오면 어떡하느냐 그냥 놔둬라 하면, 딸이 그냥 늙어가는 걸 보느니 돌아올 때 돌아오더라도 한 번은 결혼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까지 했다.
‘웨딩페어’ 부대행사로 열린 ‘예비신랑의 요리실습 체험’에 참가한 예비신랑이 직접 만든 초밥을 예비신부에게 먹여주고 있다.(사진/ 연합 서명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