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차·대우차 등 13개 노조가 산업별 노조로 전환한 역사적 사건… 세계화에 맞서 노조가 다시 ‘강력한 조직적 행위자’로 등장하기 위한 도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서구에서 노동조합은 일반적으로 ‘Trade union’으로 불린다. 즉, ‘산업별 노조’를 가리킨다. 한국의 기업별 노조는, 매우 전투적이지만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는 노사관계 학자도 있을 정도다.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하면서 내건 대강령은 ‘산별노조 건설’이었다. 산별노조는 동일한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를 단일 노조 깃발 아래 꾸리는 전국적 규모의 조직이다.
노사 갈등이 생산에 끼치는 영향 줄어들어
지난 5월30일 현대차, 기아차, 대우차를 포함한 대공장 중심의 13개 노조 8만7천 명의 조합원들이 조합원 투표를 거쳐 산업별 노조로 전환했다.
‘재미없고 우울한’ 노동계에 오랜만에 들려온 신선한 소식이다. 이제 민주노총의 전체 조합원 62만7천 명(공무원노조 제외) 중에서 산별노조 조합원이 36만9천 명으로 산별노조가 지배적인 시대가 열렸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은 없어지고, 거대 단일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의 ‘현대차 지부’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동안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 한국노총 소속 금융노조가 산별노조로 존재했지만, 조립완성차 대공장 노조들이 산별 조직에 들어온 건 한국노동조합운동 역사에 굵은 획을 긋는 대사건이다.
산별노조는 ‘사람과 돈의 집중’을 통해 힘을 중앙으로 결집하는 형태인데, 한국의 산별노조는 ‘역사를 거스르는 실험’이라고 할 만하다. 세계화와 자유시장 논리로 포장된 ‘시장의 독재’가 전면화하면서 상당수 국가에서는 노사가 중앙 산별교섭에서 철수하고 기업별 교섭으로 내려가는 ‘분권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업별 노조는 역사적으로 국가에 의해 강제된 면이 강하다. 그러나 독점 대기업 중심의 배제적인 성장 체제에서 노조·사용자·정부의 이해가 일치돼 정착된 교섭 구조이기도 하다. 기업별 노조를 일컬어 ‘노동조합운동 현장주의의 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기업별 노조 아래서 대공장 노조의 전투적 임금 인상 몫은 대부분 하청과 비정규직에게 전가됐다. 이런 분파적 이익 추구를 넘어, 원-하청 기업 간 불평등·정규직-비정규직 간 차별을 해결하려면 ‘강한 중앙’을 가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그람시는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아직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고 있는 지점에 위기는 정확히 존재한다”고 했다. “기업별 노조는 역사적 사명을 다했지만 새로운 조직 형태는 아직 정착되지 못한 위기 상황”에서 등장한 산별 전환 흐름은 그래서 노동운동 재생을 위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산별노조가 지배적인 시대가 열렸다 해도, 곧바로 산별‘교섭’이 지배적인 시대로 갈 수 있을까? 노조 조직 형태는 노동조합 내부에서 선택하면 되지만, 실질적인 산별교섭이 이뤄지려면 사용자들도 노동조합처럼 한데 뭉쳐 산별 사용자단체를 만든 뒤 중앙교섭에 나서야 한다. 물론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을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도 있는데, 노사 자율주의에 기초한 유럽의 경우 법으로 산별교섭을 강제하는 국가는 없다. 역사적으로 산별노조가 강력해지면 사용자들도 어쩔 수 없이 사용자단체를 만들어 교섭 테이블에 나왔을 뿐이다.
기업별 교섭이 사용자에게 매력적인 것은 노조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용자 처지에서 보면, 산별교섭에서 임금은 경쟁의 요소가 더 이상 아니다. 임금이 경쟁에서 중요한 조건일 때는 임금 통제를 위해 회사가 노조를 탄압·회유하곤 했지만, 임금과 근로 조건이 외부적 조건으로 주어지는 산별 체제에서는 기업마다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산별 체제에서는 노조와 교섭이 ‘공장 바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노사 갈등이 생산에 끼치는 영향이 줄어들게 된다. 사용자들이 ‘갈등보험’에 드는 격인데, 물론 산별 체제라고 해서 ‘산업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별 교섭에서 노조 간부가 다음 선거에서 재집권하기 위해 보여줄 수 있는 건 임금 인상뿐이고, 또 파업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산별에서는 파업 이외의 다양한 수단, 예컨대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 기업별 체제에서는 파업이 ‘유일한 수단’이지만 산별 체제에서는 ‘최후의 수단’이 된다.
고용 불안에 대처하기 위한 선택
산별 전환이라는 ‘단체교섭의 구조조정’은 왜 일어날까? 무엇보다 시장과 생산에 대한 ‘산업 차원’의 개입 없이는 해외 생산 확대, 외주·하청 증가에 따른 고용 불안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산별 체제는 대공장부터 중소사업장, 정규직부터 비정규직에 이르는 이질적 요소의 통합을 뜻하는데, 기업별 교섭에서 다루지 못하는 산업 차원의 문제를 포괄할 수 있다. “신뢰는 오랫동안의 갈등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형성되는 것”이라지만, 한국의 기업별 노조는 ‘높은 갈등, 낮은 신뢰’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사회적 파트너십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죽이려는 허구적 파트너십”이라고 비난해왔다. 그런데 대규모 조합원 같은 ‘권력 자원’을 동원할 힘을 가진 산별 노조는 이제 파트너십의 조직적 토대가 될 수도 있다.
노동조합은 항상 ‘정의의 칼’과 ‘기득권의 이해’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집단적 목소리를 대변하고 임금 불평등을 줄여 산업 민주주의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소수 조합원의 상대적 기득권을 방어하는 보수적 조직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공장 조직 노동자들의 산별노조 전환은 ‘마음을 얻기 위한’ 선택이며, 노동을 자원이 아니라 줄여야 할 단순한 ‘비용’으로 보는 세계화에 맞서 노조가 다시 ‘강력한 조직적 행위자’로 등장하기 위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산별 전환은 ‘희망의 근거’다.
지난 5월30일 현대차, 기아차, 대우차를 포함한 대공장 중심의 13개 노조 8만7천 명의 조합원들이 조합원 투표를 거쳐 산업별 노조로 전환했다.
전재환 금속산업노조연맹 위원장이 7월3일 현대자동차 노조의 산별노조 전환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