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전유물서 자기표현 수단으로 자리매김… 빈약한 표현 수단서 비롯된 맹목적 모방
‘개인기 연구소’, ‘개인기 훈련소’. 마치 스포츠 단체의 이름 같지만 전혀 아니다. 인터넷 사이트 ‘다음’(www.daum.net)의 카페 검색에 ‘개인기’를 입력하면 뜨는 동호회들이다. 이들이 연구하고 훈련하는 개인기는 다름 아닌 ‘숨은 장기. 가수의 노래나 유명인의 독특한 억양과 표정을 흉내내기’이다. 사전 속의 ‘개인의 기술, 특히 운동경기에서의 개인의 기량’(동아 국어사전)이란 정의를 넘어 개인기의 의미는 확장되고 있다.
함께 개인기 개발하고 즐기는 분위기
또다른 사이트인 ‘프리챌’(www.freechal.com)에도 동호회가 생길 정도로 개인기 열풍이 거세다. 지난해 하반기 TV에서 시작된 개인기 열풍은 젊은이들 사이에 열병처럼 번졌다. 이제 시청자들은 단순히 연예인의 개인기를 보고 즐기는 구경꾼들이 아니다. 젊은이들 사이에 스스로 개인기를 개발하고, 서로 보여주며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엔 “둘이 모이면 묵찌빠, 셋이 모이면 삼행시, 넷 이상이 모이면 개인기”란 말이 유행할 정도다.
“지금부터 개인기 열전! 썰렁하면 단체로 벌주 마시기.” 지난해 애드파워, 애드컬리지 등 서울지역 광고 동아리들이 함께 한 연합MT 뒤풀이에서 자연스럽게 개인기 대항전이 펼쳐졌다. 각 동아리마다 돌아가면서 개인기를 선보이는 순서. 감각있는 미래 광고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이들로서는 명예가 걸린 한판이었다. 먼저 연예인 성대모사 등 고전적인 개인기들이 이어졌다. 레퍼토리가 떨어질 무렵, 개인기의 ‘달인’임을 자처하는 한 학생이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개인기를 하겠다”며 나섰다.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갑자기 사극에 나오는 말투로 “전하, 10만 장병을 양성해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그의 어설픈 ‘율곡 이이 흉내내기’에 실소가 터져나왔지만 ‘역사인물 흉내내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숟가락을 한쪽 눈에 대고 관심법 운운하는 궁예 흉내내기,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장렬히(?) 쓰러지는 이순신 장군 흉내내기…. 이날 상황을 전하던 애드파워 배찬호 회장은 “때로 어설픈 개인기가 더 재미있다”며 웃는다. 이처럼 개인기가 중요한 자기표현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개인기를 열심히 ‘연마’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다음의 인터넷 카페 ‘개인기 훈련소’를 운영하는 안경희(18)씨가 그런 경우다. 강원도 태백에 사는 안씨는 틈만 나면 언니들과 둘러앉아 개인기 연습을 한다. 큰언니 지은(25)씨가 케이블TV의 쇼핑 호스트처럼 과장된 어투로 “어머? 정말 이 좋은 제품이 이렇게 낮은 가격에?”라고 말하면, 경희씨가 짱구 흉내를 내며 “저거 사주세요”라고 보채고, 작은언니 지유(20)씨는 주먹을 들고 “에이∼ 씨” 하며 개그맨 박명수 말투로 나무라는 식이다. 가수 서유석씨 모창부터 미달이, 돌고래 성대모사에 이르기까지 안경희씨 혼자 할 수 있는 개인기만 10여 가지가 넘는다. 언니들도 안씨 못지않은 개인기의 달인들이다. 이들 자매는 “다음엔 어떤 개인기가 유행할지 맞출 정도”라고 자랑한다. 그만큼 개인기의 소재 거리를 알아보는 눈이 밝다는 얘기다. 실제 얼마 전부터 유행하는 만화캐릭터 짱구 흉내내기는 자신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즐기던 개인기라고 한다. 유명인을 흉내내면서 시작된 개인기는 주변 사람들 흉내내기로 번지고 있다. 요즘 애드파워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은 “썽낸다”. ‘화낸다’의 경상도 사투리인 이 말은 이 동아리 회원인 마산 출신 여학생의 말투를 흉내낸 것이다. 어느 날 한 회원이 이 말투를 이용한 재치있는 퀴즈까지 만들었다. “마산 아가씨가 가장 좋아하는 역은?”이라고 묻는 퀴즈. 답은 “썽내역”이었다. 이런 유의 ‘우리’만의 개인기는 일상의 자잘한 실수도 소재로 삼는다. 친구가 빙판에서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거나 어쩌다 말실수를 하면 놓치지 않고 “어? 그것도 개인기였어? 나도 가르쳐줘”라고 놀린다. 고등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화곡고등학교 이아남 학생은 “특이한 말투나 몸짓을 가진 선생님이 흉내내기의 주요 타깃”이라며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 흉내를 내며 낄낄거리곤 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개인기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개인기를 “엽기부터 이어진 패러디문화의 극단”이라고 전제한 뒤 “엽기에 녹아 있던 비판적인 비틀기마저 사라지고, 맹목적인 모방만 남았다”고 비판한다. 개인기 달인들의 행복한 비명들
청소년이나 대학생뿐 아니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개인기는 확산되고 있다. 올해 결혼정보회사 ‘선우’에 입사한 윤지희(23)씨는 입사시험 때부터 개인기를 선보여야 했다. 이 회사의 입사시험 중 하나는 자기PR. “개인기 하나 해보라”는 면접관들의 주문에 윤씨는 가수 이소라 모창, 김경호 흉내내기를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선보인 비장의 개인기는 미리 찌그러뜨린 플라스틱 생수병을 콧바람을 불어넣어 다시 펴기. 코를 벌름거리며 열심히 하는 모습에 비로소 면접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탁월한 개인기 덕분에 윤씨는 회사 회식자리에서도 윤씨는 ‘편안하다’. 반면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이아무개(30)씨는 “변변한 개인기 없는 사람들은 회식자리에서 주눅들기 십상”이라며 “개인기 때문에 은근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한다. 개인기가 없으면 썰렁맨으로 취급당하기 십상인 탓이다. 그래서 흉내내기에 재능이 없는 직장인 중에 몸으로 때우는 개인기를 익히는 사람들도 있다. 생맥주 500cc를 한번에 들이켜는 일명 ‘펠리컨주’, 기발한 폭탄주 제조, 콧구멍에 500원짜리 동전 끼우기, 현란한 랩, 손바닥 연주, 심지어 문자메시지 빨리 치기까지 남들이 쉽게 못하는 재주는 다 개인기에 포함된다.
현란한 개인기는 사회생활을 헤쳐가는 무기가 될 뿐 아니라 연애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이 주최한 단체 미팅에서 회사원 양아무개(29)씨는 개인기 덕을 톡톡히 봤다. 참가한 100명의 여성 중 27명이 그를 찍은 것. 전직 대통령 성대모사, 연예인 흉내내기 등 현란한 개인기가 그의 인기비결이었다. 그를 찍은 여성 중 한명과 올 가을 결혼할 예정이다.
개인기에 대한 선호는 설문조사에도 나타난다. 지난해 11월 닥스클럽이 전국 20대 미혼여성 400명을 대상으로 ‘미팅을 통해 만나고 싶은 남성상’을 조사한 결과 무려 60.3%(241명)가 ‘개인기가 뛰어난 남성’이라고 답했다. 최근 닥스클럽이 커플매니저 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미팅 때 남성이 여성의 마음을 얻는 데 가장 필요한 것’에 41명의 커플매니저가 ‘유머러스한 개인기’를 꼽았다. 닥스클럽 홍보팀 김옥경 주임은 “예전에는 장기자랑을 시키면 대부분 노래, 때때로 춤이었다”며 “요즘엔 성대모사 등 개인기가 참 다양해졌다”고 전한다. 이 회사 커플매니저들은 미팅을 나가기 전 남성들에게 ‘개인기 어드바이스’도 해준다고 한다.
개인기 없으면 홀대받는 시대로 진입
개인기는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 일상의 코드로 자리잡았지만 개인기 열풍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않다. 문화평론가 안이영노씨는 개인기 열풍을 “자기 표현욕구는 커졌으나 여전히 표현수단은 빈약한 상황에서 나오는 문화현상”이라고 평가한다. 일이나 공부에 쫓겨 다양한 자기 표현수단을 배우지 못한 젊은이들이 획일적으로 TV를 모방하게 됐다는 얘기다. 개인기에 대한 이런 부정적 평가에도, 변변한 개인기 하나 없는 사람은 사회에서 홀대받는 시대는 어느새 왔다. 개인기가 부족한 선수가 팀에서 퇴출당하는 스포츠처럼.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진/지난 2월14일 종로3가 드림펠리스에서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 주최로 열린 미팅행사. 예전의 장기자랑이 노래 위주였다면 요즘에는 성대모사, 춤 등 다양한 개인기로 바뀌고 있다.(이용호 기자)
“지금부터 개인기 열전! 썰렁하면 단체로 벌주 마시기.” 지난해 애드파워, 애드컬리지 등 서울지역 광고 동아리들이 함께 한 연합MT 뒤풀이에서 자연스럽게 개인기 대항전이 펼쳐졌다. 각 동아리마다 돌아가면서 개인기를 선보이는 순서. 감각있는 미래 광고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이들로서는 명예가 걸린 한판이었다. 먼저 연예인 성대모사 등 고전적인 개인기들이 이어졌다. 레퍼토리가 떨어질 무렵, 개인기의 ‘달인’임을 자처하는 한 학생이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개인기를 하겠다”며 나섰다.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갑자기 사극에 나오는 말투로 “전하, 10만 장병을 양성해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그의 어설픈 ‘율곡 이이 흉내내기’에 실소가 터져나왔지만 ‘역사인물 흉내내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숟가락을 한쪽 눈에 대고 관심법 운운하는 궁예 흉내내기,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장렬히(?) 쓰러지는 이순신 장군 흉내내기…. 이날 상황을 전하던 애드파워 배찬호 회장은 “때로 어설픈 개인기가 더 재미있다”며 웃는다. 이처럼 개인기가 중요한 자기표현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개인기를 열심히 ‘연마’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다음의 인터넷 카페 ‘개인기 훈련소’를 운영하는 안경희(18)씨가 그런 경우다. 강원도 태백에 사는 안씨는 틈만 나면 언니들과 둘러앉아 개인기 연습을 한다. 큰언니 지은(25)씨가 케이블TV의 쇼핑 호스트처럼 과장된 어투로 “어머? 정말 이 좋은 제품이 이렇게 낮은 가격에?”라고 말하면, 경희씨가 짱구 흉내를 내며 “저거 사주세요”라고 보채고, 작은언니 지유(20)씨는 주먹을 들고 “에이∼ 씨” 하며 개그맨 박명수 말투로 나무라는 식이다. 가수 서유석씨 모창부터 미달이, 돌고래 성대모사에 이르기까지 안경희씨 혼자 할 수 있는 개인기만 10여 가지가 넘는다. 언니들도 안씨 못지않은 개인기의 달인들이다. 이들 자매는 “다음엔 어떤 개인기가 유행할지 맞출 정도”라고 자랑한다. 그만큼 개인기의 소재 거리를 알아보는 눈이 밝다는 얘기다. 실제 얼마 전부터 유행하는 만화캐릭터 짱구 흉내내기는 자신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즐기던 개인기라고 한다. 유명인을 흉내내면서 시작된 개인기는 주변 사람들 흉내내기로 번지고 있다. 요즘 애드파워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은 “썽낸다”. ‘화낸다’의 경상도 사투리인 이 말은 이 동아리 회원인 마산 출신 여학생의 말투를 흉내낸 것이다. 어느 날 한 회원이 이 말투를 이용한 재치있는 퀴즈까지 만들었다. “마산 아가씨가 가장 좋아하는 역은?”이라고 묻는 퀴즈. 답은 “썽내역”이었다. 이런 유의 ‘우리’만의 개인기는 일상의 자잘한 실수도 소재로 삼는다. 친구가 빙판에서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거나 어쩌다 말실수를 하면 놓치지 않고 “어? 그것도 개인기였어? 나도 가르쳐줘”라고 놀린다. 고등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화곡고등학교 이아남 학생은 “특이한 말투나 몸짓을 가진 선생님이 흉내내기의 주요 타깃”이라며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 흉내를 내며 낄낄거리곤 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개인기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개인기를 “엽기부터 이어진 패러디문화의 극단”이라고 전제한 뒤 “엽기에 녹아 있던 비판적인 비틀기마저 사라지고, 맹목적인 모방만 남았다”고 비판한다. 개인기 달인들의 행복한 비명들

사진/청소년들이 몰려드는 동대문 프레야. 매일 저녁 개인기를 뽐내는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다.(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