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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페미니스트에게 빚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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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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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살면서 큰 사회적 이슈때마다 뒷북만 쳤던 나… 여성문제는 편파적으로 보는 게 옳다는 확고한 견해를 갖기까지

▣ 김선주 전 <한겨레>논설주간·칼럼니스트

세상에는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만 요란했지 정작 행동에서는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겁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 대의에 찬동하면서도 손끝 하나 까딱 안 했기 때문이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견해를 밝히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뒷북 치기에 머물렀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고은광순 등의 페미니스트 선지자가 희생과 투쟁으로 얻은 자유와 권리에 빚진 바가 크다. 평화어머니회 소속 여성계 인사들과 함께한 고은광순씨(맨 왼쪽).

그래서 한 시대를 같이 살아온 사람 가운데 몸과 마음을 바쳐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살았던 사람들 모두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얻은 자유와 권리에 무임승차해 그러한 것들을 당연하게 누리고 사는 것이 아주 미안스럽다.


신문사 여자후배들과 고은광순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고맙다. 해방된 뒤에 태어나 내 땅에서 내 나라 말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사는 세대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진정으로 다행스럽고 감격스럽게 생각한다.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 대항해 싸운 사람들, 4·19와 광주항쟁, 그리고 민주화운동과 자유언론운동을 하면서 감옥에 가고 목숨을 잃은 많은 이들을 떠올리면 나의 비겁이 부끄럽다.

요즘 세대들은 이러한 것들에 무감동·무감각하지만 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는 하나도 거저 얻어진 것은 없고 모두 투쟁과 희생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월드컵 열기 속에서 젊은이들의 분방한 옷차림이나 거침없는 자기 표현을 보면 그래도 우리 세대가 이 정도까지의 세상을 만들어내었구나라는 자부심을 느낀다. 안정환 선수가 골을 넣고 아내를 향한 반지 골 세리머니를 한다거나 이천수 선수가 속옷에 애인 이름의 이니셜을 보이며 골 세리머니를 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군사독재 시절 어떤 운동선수도 예외 없이 국제적인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면 땀을 닦을 시간도 없이 본국의 대통령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야 했다. 우승 소감은 으레 대통령 각하 운운하면서 공덕을 대통령에게 돌리던 것이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사회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현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아 내가 살아서 생전에 이러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다니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아직도 이런 세상이었단 말인가 하는 한탄이 나오는 때가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내가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페미니스트들한테이다. 왜냐하면 민주화, 언론자유, 사회정의 등의 문제에는 적극적 지지 세력에 속했었기 때문에 후회가 없지만 여성 문제에 관해서는 내가 여성임에도 별 자각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자각한 것은 마흔 살도 넘어서였다.

신문사는 야간국장을 부장들이 돌아가면서 하게 되어 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야근까지 하게 되면 48시간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인원도 부족했고 윤전기 사정도 좋지 않았고 배달 사정도 좋지 않았다. 항상 긴급 상황이 발생하는 격무였다. 처음 부장이 되었을 때 나는 야간국장을 안 했다. 당시 편집국장은 여자를, 그것도 아이 엄마를 야간국장을 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고전적 의미의 페미니스트였다. 당연히 나를 야간국장에서 빼주었다. 살았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 후배들 몇이 나를 조용한 구석으로 불러내었다. 선배가 야간국장을 안 하면 후배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고 질책했다. 힘든 역할을 여자라고 포기하면 우리는 바라볼 곳이 없어요라고 했다. 지금은 여자 부장이 한두 명이라 그렇지 만약 여자 부장들이 많이 생기면 그때는 남자 부장들이 여자들 부장 시키는 것에 반기를 들 것 아니냐고 했다. 야간국장을 시작했다. 그때 내가 속한 조직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권리의 이면에는 이러저러한 의무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그때까지 여자도 남자와 꼭 같은 권리가 있다는 것만 생각했지 권리에 따른 의무도 있다는 것을 외면했던 것 같다. 권리는 갖고 의무는 여자니까라는 방어막 속에 숨었었다.

호주제 폐지도 그렇다. 고은광순이라는 진지하고 성실할 페미니스트가 광야에서 선지자가 외치듯 혼자서 호주제 페지를 역설하고 국회로 언론사로 전단지를 들고 다닐 때 나는 회의적이었다. 불가능한 일을 왜 시작했냐 싶었다. 문중 재산을 여성들에게도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는 그게 될 일인가 했다. 그런데 모두 이루어졌다.

온갖 박해와 방해, 비난 속에서…

그 뒤로 여성 문제에 관해 글을 쓸 때 편파적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내 시각보다 앞서는 글을 썼다. 내가 페미니스트의 소양이나 여성적 시각이 기본적으로 부족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각적으로 반응을 못하고 항상 뒤에 가서야 당시에는 급진적으로 보이는 문제 제기가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성 문제는 여성의 입장에서 편파적으로 보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다는 확고한 견해를 갖게 되었다.

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이 온갖 박해와 방해, 비난 속에서 시작해 이루어놓은 성과물은 대한민국 여성들 모두 무임승차로 공유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다른 부문처럼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지만 여성의 권리는 법적으로 눈부시게 신장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여성들 모두가 페미니스트들한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리나 자유에 대해 무심하다.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쯤은 그것이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대를 무릅쓴 투쟁에서 얻어졌으며 거기에는 그런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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