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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침묵과 열광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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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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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올해 초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마음>에 나에 관한 내용이 잠깐 방영됐다. 2년 전 펴낸 <마음의 발견>의 서문에 ‘병력’을 밝힌 게 계기가 되어 지난해 여름 <마음> 제작팀과 인터뷰를 한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를 환자로 여기는 사람은 드물었는데 <마음>이 책으로 나오면서 사소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마음의 발견>이 참고도서 목록에 오른 것까진 괜찮았는데 본문에 마음의 병 극복기가 장황하게 쓰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실감하란 말인가.

황우석 박사가 참여한 백두산 호랑이 복제실험 현장 (사진/ 한겨레 김창광 기자)

다큐멘터리 <마음>을 둘러싼 일들은 예고편이었던 것일까. 지난 달 초 일주일 동안의 휴가를 마감하고 출근했을 때 책상 위에 출판사에서 보내온 책이 한 권 있었다.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린 <침묵과 열정>이라는 신간도서였다. 저자의 면면을 보니 내 이름이 어딘가에 드러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10여 년째 주로 과학 관련 기사를 쓴 탓에 ‘고기상자’를 받는 밀월관계는 유지하지 못했다 해도 황우석 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떠든 사람’ 목록에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초등학생의 심정이었다. 참고도서 대신 각 장별로 ‘주’가 달려 있었다. 맨 뒤에 있는 11장의 주부터 꼼꼼히 살펴봤다. 5~6년 전부터 체세포 핵이식에 의한 줄기세포를 이용한 ‘재생의학’의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 기사를 여러 차례 썼기에 어딘가에 한 줄 걸쳐져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인간배아복제와 윤리적 문제를 다룬 장에서도 내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다지 주목받을 만한 기사를 쓰지 못한 게 한편으론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침묵과 열광>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1장 ‘황우석의 과거를 묻다’의 주 맨 끄트머리에 내 이름이 있었다. 지난해 8월 취재 뒷담화로 쓴 ‘낭림이와 황우석’이란 칼럼이었다. 2001년 3월28일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이뤄진 백두산 호랑이 복제 실험 현장을 참관한 내용이었다. 그것이 <침묵과 열광> 저자들에게 황우석의 ‘특혜’로 비쳐졌던 것이다. 저자들은 백두산 호랑이 복제에 대한 과학적 검토를 생략한 채, 황우석 교수를 위한 변명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른 한 기자와 함께 언론계 2대 ‘황빠’로 지목한 듯했다.

내가 서울대공원 동물원을 찾았을 당시 황우석 교수는 ‘복제 전문가’였다. 그날 사자우리에서 호랑이 수정란을 대리모인 사자 자궁에 넣는 시술을 하던 황우석 교수를 기억한다. 저자들은 복제에 대한 과학적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정란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 나로선 백두산 호랑이 복제 성공 여부를 통해 과학적 검토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나의 판단이었다. 그해 백두산 호랑이는 복제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연히 과학적 검증이 포함된 기사를 출고할 수는 없었다.

올해 두 차례 신간도서에 내 이름 석 자가 올랐다. 방송 다큐멘터리에 모습을 드러내길 마다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출판물 <마음>의 본문에 나의 이야기를 싣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백두산 호랑이 복제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쓴 칼럼이 황우석 사태의 전모를 다룬 책자에 소개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황우석 사태로 인해 스스로 아프게 감당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침묵과 열광>의 저자들이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면 좀더 아프게 나를 고발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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