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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 전직 매춘여성의 법정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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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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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빚 계산방식’에 묶여 포주에게 피소… 검찰과 경찰도 포주 편만 두둔

사진/서울의 매매춘가. 불리한 계약관계로 인해 매춘여성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빚이 쌓이게 되면서 매춘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게 된다.(이정용 기자)
‘남은 빚 11,969,000.’

지난해 9월 군산 매매춘 집성촌에서 일어난 화재참사로 숨진 임아무개양의 수첩에서 발견된 메모였다. 하룻밤에 10명 안팎의 매춘남성들을 상대하면서 이렇게 많은 빚을 떠안게 되는 이유는 뭘까.

군산사건 이후 경찰은 전국적으로 이른바 ‘노예매춘’을 강요한 포주들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많은 포주들이 구속기소됐고 감금죄와 부당이득죄로 유죄 판결을 받기 시작했다. 감금매춘을 외면하던 이전과 비교하면 진전된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게 있다. 바로 매춘여성들이 매춘생활을 청산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독특한 구조의 매춘 빚’ 문제다.

수입이 없어도 빚이 불어나는 이유는…


서울에 사는 전업주부 김아무개씨는 매춘생활에서 생긴 빚이 문제가 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김씨는 지난 1997년 하반기부터 이듬해 초까지 지방의 한 도시에서 매춘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이 일로 1600만원의 빚을 의도적으로 떼먹었다는 혐의(사기)로 업주로부터 고소당한 뒤 검찰에 의해 기소돼 지금까지 형사재판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출두하고 있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그에게 이 재판은 엄청난 부담이다. 그러나 대다수 매춘여성들이 결혼할 경우 업주와 적당히 합의를 보고 빚을 청산하는 과정을 밟는 데 비해 김씨는 법정투쟁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자신이 만져보지도 못하고 쓰지도 않은 돈을 물어낼 수는 없다는 소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방에서 일하다가 벌이가 좋지 않아 단란주점으로 옮겨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종업원이 원할 때만 2차를 나가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업주가 원하면 언제든지 매춘을 해야 했어요. 하도 강요하기에 도망쳤더니 업주가 도망다니는 나를 잡으러 다니느라 영업을 못했다면서 빌린 적도 없는 1700만원을 떼먹었다고 사기죄로 고소를 하더라구요.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난 뒤 기소돼 150만원의 벌금을 받았어요. 그뒤에도 3군데 술집을 돌아다니는 동안 제 손에 돈이 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는데 빚만 1600만원으로 불어나더라구요. 그런데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건 경찰이나 검찰에서는 매춘을 강요한 업주는 그대로 두고 저에게만 사기죄를 적용한 점입니다.”

업주들은 김씨가 도망갈 때마다 찾아내 직업소개소를 통해 다른 업소로 팔아넘기면서 김씨가 쓰지도 않은 돈을 빚으로 계산했다. 이런 모순된 ‘빚 계산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업주나 포주가 매춘여성과 맺는 계약이 지극히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김씨가 술집업주와 맺은 계약을 봐도 이는 쉽게 드러난다. 김씨가 하루에 40만원씩의 매상을 올려주는 대가로 한달에 월급조로 받기로 한 돈은 30만원뿐이다. 대신 하루 결근할 경우 30만∼50만원씩을 주인에게 물어내기로 했다. 매춘영업을 하더라도 김씨에게 돌아오는 돈은 한번에 3만∼5만원. 이런 식의 계산법이라면 한달에 며칠만 쉬어도 당장 빚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서울 청량리나 미아리처럼 매매춘 집성촌에서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계산방식이 쓰이고 있다. 즉, 숙식비(월 100여만원), 세간비(처음에 200만∼300만원), 족보(3∼5명의 손님을 하한선으로 두는 것으로 족보를 채우지 못하면 빚이 됨), 결근비, 이자(5∼10%) 등이 빚을 쌓이는 주요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 매매춘 근절운동을 벌이는 한 현장 활동가의 증언은 더욱 구체적이다.

매매춘 계약은 법적 효력이 없다

사진/매매춘 현장을 둘러보던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 그 역시 매춘으로 인해 업주에게 진 빚은 무효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이정용 기자)
“보통 족보를 넘어서야 매춘여성의 수입이 발생하죠. 하루 손님 10명에 60만원이 수입으로 잡히면 업주가 30만원을 가지고 매춘여성 30만원을 가지는 식으로 분배합니다. 그렇지만 5명의 손님만 받으면 여성은 그날 수입이 없어지는 식이죠. 이렇게 해서 시간이 지나면 여성들은 자연히 빚이 쌓이게 되고 매춘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게 됩니다. 무작정 도망을 나와 잡히게 되면 이른바 ‘하이방비’(여성을 쫓는 데 들어가는 경비)로 수백만원의 빚이 추가로 잡히게 되죠. 매춘여성들은 빚 때문에 직업소개소에 의해 여기저기로 팔려가는데 이 과정에서도 수십만∼수백만원에 이르는 소개비가 매춘여성들의 빚에 더해집니다. 여기에 또 낙태비용을 비롯한 병원비도 업주가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빚에 포함됩니다.”

앞서 언급한 군산 임양도 방세, 세탁비, 전기세 등을 합쳐 업주에게 매달 100만원이 훨씬 넘는 돈을 매춘비용으로 건넨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통장이나 현금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미뤄볼 때 전업주부 김씨처럼 돈을 직접 만져보지 않은 채로 빚만 늘어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매매춘 영업을 하는 티켓다방의 경우 여성은 하루 평균 16시간 동안 일하지만, 지각하거나 결근하면 그에 따른 벌금을 내야 한다. 더욱이 손님한테서 티켓비를 받아 입금해야 하는데 받지 못하면 고스란히 여성의 빚이 되고 만다. 그렇게 해서 한달을 일하게 되면 월급으로 책정된 100여만원은 고사하고 오히려 빚이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빚은 계속 늘어나게 되고 빚에 의해 여러 다방으로 팔려가게 되는 구조다.

문제는 이같은 계약이 매매춘이라는 불법행위를 전제로 맺어진 것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법적인 효력이 없다는 점을 매춘여성들이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또 설령 안다고 해도 수사기관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김강자 당시 종암경찰서장 역시 매춘으로 인해 업주에게 진 빚은 무효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찰은 매춘여성보다는 업주쪽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구실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들은 ‘불법원인으로 인한 채권무효’를 규정한 윤락행위방지법 20조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매매춘으로 인한 빚은 무효(“영리를 목적으로 윤락행위를 하는 자 또는 이에 협력하는 자가 영업상 관계있는 윤락행위를 하는 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은 그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이를 무효로 한다”)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조항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된 지 오래다. 기지촌여성운동단체 ‘새움터’ 김현선 대표가 말하는 현장체험담을 들어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오는 차용증서

“강요된 매춘을 거부해 업소에서 도망치면 업주는 바로 경찰에 신고하죠. 매춘업자라고 하면 안 되니까 보통 ‘내 돈을 꿔가서 그대로 도망쳤다’는 식으로 신고한다고 해요. 업주가 경찰에 신고하는 이유는 폭력배를 동원하면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경찰은 무료로 여성들을 잡아주니까요. 업주 입장에서는 다른 업소로 넘기면서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 여성을 잡아오기만 하면 되죠. 잡혀오더라도 감금매춘을 당했다는 등의 여성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죠. 불법행위의 주체인 포주는 떳떳하게 신고하고, 경찰은 또 불법행위자를 대신해 잡아 넘겨주고…. 경찰이 포주들인 줄 모른다는 얘기도 믿을 수 없고요. 참 이런 현실이 너무 기가 막혀요.”

이 때문에 실제로 포주에 의해 고소당한 매춘여성들은 매춘지역을 벗어나더라도 사기죄로 수배돼 있는 경우가 많다. 또 매춘생활을 접고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차용증서가 날아오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김씨 사건의 소송대리인인 정연순 변호사는 “수사기록에 따르면 경찰은 업주들이 김씨를 인신매매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인신매매나 매매춘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폭력과 강압에 의해 차용증을 쓴 매춘여성에게 사기죄를 적용한 수사기관의 법 적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매매춘 근절과 매춘여성 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소리회’의 김미령 사무국장은 “현행 법 체계와 법 적용 관행은 매춘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범죄의 가해자이자 매매춘의 원인 제공자로 몰고 있다”며 “매춘여성에 대한 법적인 지원시스템 없이는 제2, 제3의 김씨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다음달 서울지법 서부지원에서 사기죄에 대한 1심 선고를 받을 예정이다. 재판부가 만약 김씨의 사기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할 경우 매춘여성에게만 사기죄를 적용해 업주들의 이해관계를 관행적으로 대변해온 경찰과 검찰의 수사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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