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도 선물이라고 우기고 받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지만…선물도 뇌물일 거라고 생각하고 안 받는 사람도 많다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사의 뜻이나 잘 봐달라는 의미의 촌지를 줘보았거나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나도 이런저런 대접을 받기도 하고 가끔씩 돈봉투를 건네받은 적도 있었다. 내 경험상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어렵다.
받는 것은 정중하게 거절하면 그만이다. 돌려주어서 다음에 오히려 좋은 관계가 유지된 경우도 있지만, 다시는 나와 대면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아마 상대가 모욕을 느꼈던 것 같다. 돌려주는 방법이 적절치 않았거나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렸는지도 모른다. 물론 다시는 안 보겠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알고 보면 나도 좋은 사람이다라며 뭘 그렇게 깨끗한 척하느냐는 식의 야유를 노골적으로 들어본 적도 있다. 돈을 잘 주고 잘 받으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인가. 세상에 알고 보면 좋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좋은 게 좋다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로 치자면 세상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어려운 돈봉투 보통 사람들이 가장 흔히 돈봉투를 내미는 경우는 학교와 병원에서다. 자녀를 맡긴 입장에서, 또 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는 입장에서 고마움을 표시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첫아이가 학교에 가게 되어 학부모가 되면서 촌지와 관련된 존재론적 고민을 하게 된다. 남들이 한다니까 나도 해야 되나, 남들이 진짜 그렇게 하는가, 이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짓인가라는 갈등에 시달린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촌지라는 이름의 돈봉투를 건넸을 때 받는 사람이 모욕감을 느끼고 거절할 경우 민망스러워 어쩌나 하는 점이다. 선생님에게 백배사죄를 한들 그 미안함을 어떻게 다스릴까, 다시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볼 수 없게 되면 어쩌나, 내가 돈으로 뭐든 해결하는 사람으로 비치면 어쩌나, 이로 인해 내 아이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으면 어쩌나. 남이 볼새라 황망하게 치른 내 첫 경험은 의외로 간단히 끝났다. 선생님이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얼떨결에 받은 것인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뭔지 모를 범죄 의식 때문에 내내 괴로웠다. 단순한 고마움의 표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잘 봐달라는 의미가 분명히 들어 있는데, 그것을 대가성 없는 선물이라고 우기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뒤 아이들이 학년을 마칠 때에야 선생님에게 인사를 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렇다고 찜찜한 기분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외교관 생활을 한 친지는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귀국할 무렵에 마지막 인사를 겸해서 유치원에 과자상자를 두 개 들고 갔다. 일본말을 잘 모르는 아이를 맡아서 친절하게 돌보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그러나 유치원 원장은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별의 선물이니 간식 시간에 아이들이 나누어 먹도록 하자고 애원해 간신히 두고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오래 산 한 작가는 여름날 동네에서 며칠째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이 하도 땀을 흘려서 냉커피를 타가지고 나가서 주었던 경험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엿보고 있기라도 한듯 옆집 주부들이 항의 방문을 하였단다. 당신만 인정 있는 사람처럼 구느냐, 그럴 요량이면 몇 집이 의논해 돌아가면서 찬 음료를 마련했어야 옳다고 성토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냉커피 값을 몇 푼씩 걷어 주기에 받았다고 한다. 참 쩨쩨하고 야박한 사람들이네 싶었지만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마을 전체의 일을 왜 개인이 부담하느냐는 항의는 원칙적으로 맞기 때문이다. 나는 정기적으로 설날과 추석에 내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원과 청소부에게 돈봉투를 건넨다. 한여름에는 경비들이 주로 땡볕에서 일하기 때문에 삼계탕이라도 드시라고 선물한다. 1년에 세 번이다. 최근에 아파트 자치회장을 하고 있는 친지에게 물었더니, 친지는 그것도 뇌물이라고 주면 안 된다고 펄쩍 뛴다. 나는 분명한 선물이고 아무런 대가성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는 반칙이라고 했다. 명절에 집집마다 돈을 걷어서 경비원과 청소부에게 특별히 감사 표시을 하는데, 당신이 그렇게 반칙을 하면 안 하는 사람은 뭐가 되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는 내 말은 조금은 거짓말이다. 주차 전쟁이 심한 아파트에서 출근 시간이 되면 내 차가 문 바로 앞에 나가기 좋게 정확하게 놓여 있는 것은 확실히 특별한 배려니까. 은연중에 잘 봐달라는, 그래서 대접받으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인부에게 대접한 냉커피에 화낸 주민들 내 시어머니는 8년째 병석에 계신다.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며 생사의 기로를 헤맨 적이 여러 번이었다. 거쳐간 병동도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심장내과, 정형외과, 재활과 등 10여 군데였다. 한번은 깊은 밤에 거의 돌아가실 뻔했는데 담당의사가 밤에 뛰어나와 헌신적으로 응급처치를 잘해서 소생하셨다. 너무 고마워서 촌지를 준비하고 의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의사는 당연히 할 일을 했는데 웬 돈봉투냐고 했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선물이라고 간곡히 말했지만 그는 “이러시면 어머님의 주치의를 그만두겠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특별한 취급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완곡한 표현이자 의사로서의 자존심을 내비친 것 같다. 뇌물도 선물이라고 우기고 받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지만, 선물도 뇌물일 거라고 생각하고 안 받는 사람도 있다. 올바르지 않은 일인지 알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오고 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인정이라는 사고방식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단순히 마음의 표시라고 생각하면서 선물을 주지만, 은현중에 잘 봐다랄라는 래는, 대접다으려는 의도가 없다고 말 할 수 있을까?(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어려운 돈봉투 보통 사람들이 가장 흔히 돈봉투를 내미는 경우는 학교와 병원에서다. 자녀를 맡긴 입장에서, 또 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는 입장에서 고마움을 표시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첫아이가 학교에 가게 되어 학부모가 되면서 촌지와 관련된 존재론적 고민을 하게 된다. 남들이 한다니까 나도 해야 되나, 남들이 진짜 그렇게 하는가, 이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짓인가라는 갈등에 시달린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촌지라는 이름의 돈봉투를 건넸을 때 받는 사람이 모욕감을 느끼고 거절할 경우 민망스러워 어쩌나 하는 점이다. 선생님에게 백배사죄를 한들 그 미안함을 어떻게 다스릴까, 다시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볼 수 없게 되면 어쩌나, 내가 돈으로 뭐든 해결하는 사람으로 비치면 어쩌나, 이로 인해 내 아이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으면 어쩌나. 남이 볼새라 황망하게 치른 내 첫 경험은 의외로 간단히 끝났다. 선생님이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얼떨결에 받은 것인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뭔지 모를 범죄 의식 때문에 내내 괴로웠다. 단순한 고마움의 표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잘 봐달라는 의미가 분명히 들어 있는데, 그것을 대가성 없는 선물이라고 우기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뒤 아이들이 학년을 마칠 때에야 선생님에게 인사를 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렇다고 찜찜한 기분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외교관 생활을 한 친지는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귀국할 무렵에 마지막 인사를 겸해서 유치원에 과자상자를 두 개 들고 갔다. 일본말을 잘 모르는 아이를 맡아서 친절하게 돌보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그러나 유치원 원장은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별의 선물이니 간식 시간에 아이들이 나누어 먹도록 하자고 애원해 간신히 두고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오래 산 한 작가는 여름날 동네에서 며칠째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이 하도 땀을 흘려서 냉커피를 타가지고 나가서 주었던 경험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엿보고 있기라도 한듯 옆집 주부들이 항의 방문을 하였단다. 당신만 인정 있는 사람처럼 구느냐, 그럴 요량이면 몇 집이 의논해 돌아가면서 찬 음료를 마련했어야 옳다고 성토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냉커피 값을 몇 푼씩 걷어 주기에 받았다고 한다. 참 쩨쩨하고 야박한 사람들이네 싶었지만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마을 전체의 일을 왜 개인이 부담하느냐는 항의는 원칙적으로 맞기 때문이다. 나는 정기적으로 설날과 추석에 내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원과 청소부에게 돈봉투를 건넨다. 한여름에는 경비들이 주로 땡볕에서 일하기 때문에 삼계탕이라도 드시라고 선물한다. 1년에 세 번이다. 최근에 아파트 자치회장을 하고 있는 친지에게 물었더니, 친지는 그것도 뇌물이라고 주면 안 된다고 펄쩍 뛴다. 나는 분명한 선물이고 아무런 대가성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는 반칙이라고 했다. 명절에 집집마다 돈을 걷어서 경비원과 청소부에게 특별히 감사 표시을 하는데, 당신이 그렇게 반칙을 하면 안 하는 사람은 뭐가 되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는 내 말은 조금은 거짓말이다. 주차 전쟁이 심한 아파트에서 출근 시간이 되면 내 차가 문 바로 앞에 나가기 좋게 정확하게 놓여 있는 것은 확실히 특별한 배려니까. 은연중에 잘 봐달라는, 그래서 대접받으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인부에게 대접한 냉커피에 화낸 주민들 내 시어머니는 8년째 병석에 계신다.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며 생사의 기로를 헤맨 적이 여러 번이었다. 거쳐간 병동도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심장내과, 정형외과, 재활과 등 10여 군데였다. 한번은 깊은 밤에 거의 돌아가실 뻔했는데 담당의사가 밤에 뛰어나와 헌신적으로 응급처치를 잘해서 소생하셨다. 너무 고마워서 촌지를 준비하고 의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의사는 당연히 할 일을 했는데 웬 돈봉투냐고 했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선물이라고 간곡히 말했지만 그는 “이러시면 어머님의 주치의를 그만두겠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특별한 취급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완곡한 표현이자 의사로서의 자존심을 내비친 것 같다. 뇌물도 선물이라고 우기고 받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지만, 선물도 뇌물일 거라고 생각하고 안 받는 사람도 있다. 올바르지 않은 일인지 알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오고 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인정이라는 사고방식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