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이 이력서라지만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건 수입보다 지출… 늘 넘치지 않는 당신, 얼마나 사회에 환원하면서 살고 있는가
▣ 최윤 소설가·서강대 프랑스문화학과 교수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가는 메일의 인사말처럼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것은 없다. 편지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는 친지들에게 보내는 메일의 서두와 마무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공을 들인다. 나는 ‘좋은’이라는 형용사를 좋아한다. 소설에서는 자주 반복해서 좋은 단어란 없기에 자제하는 대신, 메일의 마무리로 이 말을 자주 쓴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 좋은 일 가득한 한 주 등등. 해방 직후의 정경을 그린 어떤 글에서, 당시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어이 좋구나, 좋아”를 소박하게 외치며 어깨춤으로 해방의 기쁨을 표현했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도 나는 이 “좋다”로 집약되어 짙어진 기쁨의 질에 주목했었다. 그래서 나는 ‘좋은’이라는 형용사로 마무리를 한 메일을 받을 때면 각별히 기분이 좋아진다.
“대박하세요” 인사말에 화들짝 놀라다
그런가 하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인사말로는 ‘대박하세요’가 있다. 대박이라는 단어에 어딘지 정당치 않은, 우연을 가장한 비리가 숨어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어느 날 점잖은 지인이 보낸 인사 메일에서 ‘대박하세요!’라는 문장을 보고는 그만 화들짝 놀랐을밖에. 놀랐을 뿐 아니라 그분의 진의와는 무관하게 은근한 모욕감까지 느꼈던 것은 대박의 대상이 출판 준비 중이었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책은 대박하지 못했는데 그건 분명 내가 대박 인사를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 메일 뒤 어언 10년이 가까워오는 지금, ‘대박’은 이제 일상적인 인사말로, 축복(?)의 말로 자리잡았다. 적나라한 세월의 변화를 따라 나 또한 대박의 인사를 ‘좋아’하지는 않는지 몰라도 처음같이 싫어하지는 않게 변해버렸다.
그래도 사실을 말하자면 그때까지, 그리고 지금도 돈에 대해 어느 정도 무심하게 사는 것이 나와 돈의 관계고, 그렇게 살아도 큰 무리가 없는 나의 처지에 대해 늘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나는 일찌감치 초등학교 때부터 역사 시간에 역대 대통령 얘기를 들으면, 어이쿠 저렇듯 위험하고 골치 아픈 직업을 왜? 사장이라는 친구 아버지를 보면, 뭔 재미로 사장을? 하고 흥흥거리며 그런 굉장한 직업을 꿈꾸는 아이들을 속으로 깔본 철없는 아이였다. 이 철없음은 고등학교에서도 이어져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이 보장된다면 어떤 직업이라도 마다 않겠다고, 스스로 소박하며 방어적인 진로를 정하게 되었다. 문학병이 자리잡는 즈음이었다.
그러던 중 경청하게 된 어느 문학강연회의 경험이 지금의 나의 이른바 물질생활의 큰 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에 생생하게 기억한다. 고등학교 막바지였던 60년대 말, 지금은 작고한 어느 시인의 문학강연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 시인은 초겨울 강당에 모인 젊은 문학도들 앞에서 추운 날씨 운운하며 내의를 잡아당기며 강연을 시작했다. 소매끝이 나달나달했던 낡은 내의가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내 시야에 잡혔을 때 내 가슴에서는 쿵 소리가 들렸다. 직업에 대한 나의 낭만주의적 이상이 깨지는 소리고, 문학도의 앞날이 훤히 보이는 순간이었다. 특히 그 시인의 이후의 삶의 요철을 알게 되면서, 쓰고 싶은 것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따로 일을 해야겠다는 문학관 내지는 직업철학이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런 한심한 물질관을 지닌 내게 재앙이 닥쳐왔다. IMF 직후였는데 착하고 못난 친구들을 둔 덕분에 나같이 능력 없는 사람까지 그들이 하는 지원사업의 자금책으로 뛰도록 동원된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 거는 데도 심호흡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무수한 사람들에게 쌩돈을 요구하는 일이 맡겨진 것이다. 내 얄팍한 자금도, 편하게 떼를 쓸 만한 사람들의 목록도 곧 바닥이 났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열심히 번 돈을 거저 달라고 설득하는 일은 아무리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을 위해서라도 쉬운 게 아니었다. 더구나 인구에 회자할 가능성이라고는 없는 이름 없는 단체를 위해서는 더더욱 손이 안으로 움츠러들 때였다. 다행히 그 사업들은 내 도움과는 무관하게 그럭저럭 마무리되었고, 마침내 조촐한 후원자의 위치로 되돌아오고 보니 꼭 무슨 난파선에서 살아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매일 등에 진땀이 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은 해보라고 누구나에게 권장하고 싶다.
이왕이면 투명 초상화를
요즈음은 연봉이 한 사람의 이력서와 다름없다. 사람들의 비밀스런 가계부까지 살펴볼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의 진정한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은 수입보다는 그 사람이 어떻게 돈을 지출하는가에서 더 잘 드러난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지출의 지표가 의미심장하겠지만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저 사람이 수입의 얼마만큼을 자발적으로 사회나 이웃에 환원하고 있는가, 가 참 궁금하다. 돈에는 초상화가 그려져 있지만 그게 누구 얼굴인지 볼 틈도 없이 돈을 위해 뛰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그 돈으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다는 걸 가끔 잊는다. 그것은 경제적인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뿐 아니라 내 살림도 빠듯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차고 넘칠 때 환원하는 것은 사실 의무사항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돈은 꼭 분배의 질서에만 의존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정당한 분배의 원칙은 물론 기본이겠으나 나눔의 윤리가 앞서지 않는 분배의 원칙이 자칫 황량하게, 무미건조하게 적용되는 것을 우리는 가정에서 일터에서 자주 경험하는 것이다. 요즈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발적 가난의 움직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꼭 넘쳐나는 부자들이 아닌 것도 흥미로운 사실 아닌가.
당신의 초상화는 어떤가고 물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그다지 훌륭하지 못하다. 그러나 나눔이란 늘 은근하게,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므로 정말 괜찮은 초상화는 투명 초상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인사말로는 ‘대박하세요’가 있다. 대박이라는 단어에 어딘지 정당치 않은, 우연을 가장한 비리가 숨어 있는 것만 같다.

사람들의 비밀스런 가계부까지 살펴볼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의 진정한 정체성은 수입보다는 지출에서 더 잘 드러난다. 초상화가 그려진 화폐를 사용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다.(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