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과 공동체, 내 내면의 오랜 갈등을 그대로 겪는다는 싱글들… 그들이 홀로 화려하지 않기를, 마음에는 뜨거운 동거자가 있기를
▣ 최윤 소설가·서강대 교수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안은 늘 아이들의 소란스런 놀이터였던 것 같다. 우리 형제만도 넷이었으니 조용할 날이 없었지만 사촌, 육촌, 팔촌들도 몇 달씩 혹은 몇 년씩 우리와 같이 한집에 살면서 학교를 다녔다. 친척 아이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끔 부모님이 시장거리에서 데려오신 버려진 아이들도 우리와 함께 한참을 살다가 올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들의 고향이나 일자리를 찾아가곤 했다. 아이들만으로 북적거린 것이 아니라 난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집에 들르셔서는 오래 계실 것처럼 편안히 자리를 잡고 며칠씩 묵어가곤 했다. 우리 집만 이랬던 것이 아니라 옆집 친구네를 놀러가도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았던 지난 시대의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세상은 이미 변하기 시작했고, 내왕이 뜸해지며 부모의 지인과 우리의 방문객 사이에 구별이 엄연해졌고, 그것도 잠시, 마침내 다들 떠나 사위가 고요해졌다.
나를 싱글인 줄 아는 30대 싱글들
시간이 지나가면서 내 마음속에서 자라기를 그치지 않는 공동체에 대한 은밀한 꿈의 진원지가 이 유년의 집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늘 혼자인 것 같으면서도 내 주변에 무리진 친구들과 긴밀한 공동생활의 망을 만들어놓고 있다. 그 무리는 여럿이며, 대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친구들과 몰려서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이들과 함께라면 작정 없이,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하다. 더 나아가, 여러 물리적인 이유로 인해서 늘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한 동네에 모여 사는 일을 여러 번 도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채 이틀을 넘기도 전에 내 속에서는 비명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혼자 있을 시간을 마련하고 싶은 욕망이 똬리를 틀었다. 비록 잠시라도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에 대한 절대적인 필요를 마침내 토로해야만 하는 이 증상에 대해 친구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아주 젊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주변에 사람이 있거나 시끄러워서 글을 못 쓰는 경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두 시간의 절대적 침묵의, 온전한 나의 시간 없이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이 증상은 오래 지속되었다.
서로 부딪치는 나의 공동체성과 밀실 취향은 내 내면의 오랜 갈등이었다. 그 사이에서, 너 위선자 아냐, 라고 은밀히 자아비판도 해왔던 터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이중성이 요즈음 싱글들의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한다. 이 모두가 숫자가 급격히 증가해 의미심장한 사회적 지표가 된 싱글들에 대한 연구와 보도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싱글들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내 존재 방식의 어딘가에 묻어 있는 이런 동류의 냄새를 맡아서인지 30대 안팎의 싱글들이 내게 접근할 때는 으레 나도 싱글이겠지, 추정하고 다가온다. 그럭저럭 잘 운영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선배 싱글’의 삶에서 연대의식을 느끼고, 아울러 조언을 기대하면서 그들은 은근히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싱글이 아닐 뿐 아니라 적나라한 애엄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은 실망의 표정을 숨기지 않음은 물론 때로는 기겁을 하고 도망간다. 그들에게 익숙한 인간관계의 노마드적 네트워크와 나의 농경사회적인(?) 공동체성 사이의 깊은 심연을 그들이 간파한 때문이리라. 그래도 오해는 계속된다. 몇 년 전 어떤 업체가 잠시 내 홈페이지를 운영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올라온 독자의 글 하나는 그런 오해 중의 압권이었다. 홈페이지의 어떤 정보가, 어떤 글이 그 사람을 건드렸는지, 나에 대한 나름의 깊은 실망을 거두절미 다음과 같이 단 한 줄로 표현해놓고 사라졌다. “최윤, 당신도 결국 별수 없는 아줌마였군!” 기겁을 한 건 나였고 이런 오해를 야기한 나 자신의 처신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본 기회가 됐다. 어떻건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밀실 취향은 희박해지고 공동체의 꿈은 역으로 자라나는 것을 느낀다.
무수한 타자들은 나의 가족
내가 모델로 가지고 있는 북적대던 유년의 집은 내 삶에 중요한 두 영향,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나의 시간관과 인간관에 영향을 미쳤다. 내 유년의 일부였던 무수한 사람들 덕분에, 삶에서 만나는 모든 사실은 내게 늘 여러 세대의 시간의 중첩 속에서 읽힌다. 내가 세상에 대해 무언가를 제안할 때 나는 거의 기계적으로 앞뒤 두세 세대 정도의 삶을 동시에 떠올려본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인 훈련을 통해서 이런 사고를 습득했다면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내가 혼자 있을 때조차도 내 속에는 무수한 타자들이 북적거리며 살고 있다. 그중에는 가족도 있고 지인, 이웃도 있지만 단 한 번 사진으로 본 북한의 꽃제비 소년도, 어쩌다가 알게 된 아프리카 말리의 한 소녀도 있다. 나는 이들에 대해 점점 더 농밀하게 생각한다. 이들이 나의 가족이다. 나는 그들이 단지 내 머릿속만의 동거자들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그들과 즐기며 일을 같이 하고, 그들과 삶의 희비애락의 한 자락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즈음 유형도 다양해지고 숫자도 늘고 있는 싱글들에 대해 걱정이 많다. 나는 그들이 홀로 화려한 싱글이 아니기를 바란다. 최소한 그들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동거자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기를 빌며, 서양에서 자주 만나는 싱글 노인들처럼 한 치 앞의 몸의 경영으로 인색해지고 방어적으로 쪼그라든 고집쟁이로 퇴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주 멀지만은 않은 어떤 시간, 나도 엄연히 누구나가 겪는 노년의 싱글이 되어 나를 만든 창조주가 거두실 날을 기다리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쯤에는 원컨대, 내 머릿속에서만이 아니라, 꿈에서 나와 실체를 이룬 선한 목적의 공동체 안에서 내 삶이 북적대기를 기대해본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내 마음속에서 자라기를 그치지 않는 공동체에 대한 은밀한 꿈의 진원지가 이 유년의 집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늘 혼자인 것 같으면서도 내 주변에 무리진 친구들과 긴밀한 공동생활의 망을 만들어놓고 있다. 그 무리는 여럿이며, 대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친구들과 몰려서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이들과 함께라면 작정 없이,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하다. 더 나아가, 여러 물리적인 이유로 인해서 늘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한 동네에 모여 사는 일을 여러 번 도모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