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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편집의 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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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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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또는 언론사라고 해서 특혜 특권을 기대해선 안 되며 어떤 언론이라도 결코 성역일 수 없다. 너나없이 언론사 경영이나 사업범위는 국민 앞에 투명하고 떳떳해야 한다. 만일 탈세 같은 비리나 불투명한 문제가 있다면 철저히 파헤치고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실질적인 독립을 확보할 수 있고 국민의 참된 신뢰와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모든 자유가 그렇듯이 언론의 자유도 지키고 향유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결코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언론사의 사주라고 해서 중죄인 탈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 관한 우리의 견해는 분명하다. 그 누구도 법 앞에 평등하며 그 어떤 권력도 탈세로부터 면책될 수 없으며 어떤 명분도 탈세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요즘 한창 논란이 분분한 국세청의 언론사 일제 세무조사에 대한 시민단체의 논평일까요? 아닙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사설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그런 사설을 본 적이 없다고요? 물론 요즘 나온 사설은 아닙니다. 지난 99년 10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탈세혐의로 구속됐을 때 나온 사설입니다. 한마디 한마디 너무나 지당한 말씀에 고개가 수그러집니다.

당시에도 국회에서는 여당(국민회의)과 야당인 한나라당 사이에 치열한 입씨름이 벌어졌습니다. 그 레퍼토리는 예나 지금이나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습니다. 그러면 그런 정치권 공방을 조선·동아는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요즘처럼 야당의 주장을 주먹만한 활자로 표제로 뽑았을까요? 예전 신문을 들춰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탄압받았다면 왜 그때 말 못했나”, “사장 구속됐다고 보복지면 만드는 게 언론정도냐”, “대선 때 이 후보 지지한 데 대한 보복인가”’(<조선일보> 10월5일치) ‘국민회의 “언론사주 개인비리” 한나라 “총선 앞둔 언론 길들이기”’(<동아일보> 10월4일치) 정말 차분합니다. 여야의 주장을 병렬적으로 공평하게 다루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당 먼저, 야당 뒤’라는 원칙까지 철저히 지켰습니다.

신문의 왜곡보도 문제를 이야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것이 ‘교묘한 편집’입니다. 쉽게 말해, 있는 사실이라도 어떻게 제목을 뽑고 지면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천양지차로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야공방이라는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요리’를 달리한 대목은 언론학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연구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 신문을 들춰보는 김에 시민사회단체 주장에 대한 보도 양태도 점검해보았습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사주 비리 비호말라”’(<동아일보> 10월4일치) ‘참여연대 “홍 사장 구속 언론탄압 주장은 부당”’(<동아일보> 10월6일치) ‘전국 대학교수 71% “홍석현씨 구속은 정당”’(<조선일보> 10월11일치)


속된 말로 ‘적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하는데, 동아와 조선의 심정이 그런 것이었을까요? 지금은 시민단체들이 눈엣가시처럼 보이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번 국세청 세무조사에 대해 국민의 64.1%, 기자들의 75.4%가 찬성했다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설문조사 결과를 조선·동아에서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언론개혁이라는 것이 어느 면에서는 이런 보도태도부터 하나씩 없애자는 것이 아닐까요? 조선일보·동아일보 사주들은 예전의 사설을 찾아 한번 차분히 읽어보길 권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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