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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탈북자와 일본인의 ‘따뜻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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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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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은 한국사람 확실하니까, 도왔어요.” 한국과 일본 인권단체의 줄기찬 구명운동 결과 지난 2월5일 임시체류를 허가받아 한국에 온 탈북자 김용화(48·사진 왼쪽)씨의 귀향길에는 일본인 아오야기 유키노부(靑柳行信·53)가 동행했다. 후쿠오카 명지고등학교 교사 출신인 아오야기는 일본 가톨릭단체에서 외국인노동자 지원운동을 하고 있는 인권운동가다. 두 사람의 인연은 벌써 3년째다. 98년 김씨가 일본 오무라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오야기는 그 길로 김씨의 석방운동을 벌였고, 지난해 3월 김씨가 가석방된 뒤에는 일본인 1300여명의 탄원엽서를 청와대로 보내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아오야기는 “북한에는 돌아갈 수 없고, 남한에서는 내쳐지는 바람에 수많은 탈북자들이 국제미아 신세로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위조 공민증으로 중국인 행세를 해야 살아남지만, 또 그 위조 공민증이 덫이 돼 한국이나 일본에서 강제퇴거명령을 받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김씨도 그런 경우에 속했다.

88년 기관차 사고로 궁지에 몰린 김씨는 무작정 중국으로 탈출한 뒤, 8년여간 중국인, 베트남인 행세를 하며 숨죽이고 지내야 했다. 95년 천신만고 끝에 한국으로 밀항했으나 중국 공민증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옛 안기부, 법무부 등에 수감돼 있다가 강제퇴거명령을 받았다. 중국으로 가게 되면 북한으로 잡혀갈 게 불보듯 뻔한 까닭에 김씨는 일본으로 밀항, 난민신청을 했지만 일본 정부 역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 임시체류 받은 것도 예외적이죠. 한국 법무부는 탈북자에 대해서 원칙이 없는 거 같아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정부에서도 탈북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보장장치는 마련해주었으면 합니다.” 아오야기가 천천히 이야기하면 김씨가 옆에서 통역을 했다. 만 2년간 오무라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김씨는 아오야기가 넣어준 옐로페이퍼(이런 책밖에 반입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로 일본어를 익혔다고 한다. 김씨는 “아오야기가 없었다면 철벽같은 수용소에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며 “조국은 나를 버렸지만, 나는 꼭 조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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