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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겸재의 그림에서 영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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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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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공원의 역사를 살펴보다 접한 정지된 영화같은 화폭… 한강을 되살리고픈 서울시장 후보들은 꼭 봐둬야 하리라

▣ 정기용 건축가

최근에 나는 선유도공원의 의미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직도 서울 시민의 대다수는 선유도가 어떤 땅이었는지, 선유도가 어떻게 해서 생태테마공원이 되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듯하다.

실은 이번달 건축환경문화의 홍보대상으로 선유도공원을 추천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선유도 공원 만들기의 의미가 자연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말로만 하다가 실제로 만들어낸 사례로서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는 무슨 일을 하든 기존의 것을 깡그리 쓸어버리고 늘 새것을 세우려는 관성 속에 이끌려가고 있다. 선유도공원은 그런 점에서 그릇된 개발지상주의를 다시금 성찰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아직도 선유도공원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는 대로 짬을 내어 방문하기를 권유한다.


서울 선유도공원은 한강을 온전히 끌어안은 소중한 사례다. 이러한 생태적 태도는 이미 겸재 정선의 ‘선유봉’이나 ‘행호관어’에 충분히 드러난 바 있다.

선유도공원은 1978∼2000년까지 20여 년간 서울 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던 정수장을 재활용해 물이 테마가 되는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현재 서울 시민들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중·고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도심의 드문 생태 테마공원이다. 한마디로 공장을 공원으로 만든 소중한 사례이다.

중지도는 오페라하우스가 되고 싶을까

선유도공원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겸재 정선의 그림 ‘선유봉’(仙遊峯·1742, <양천팔경첩> 김충현 소장)을 접하게 되었다. 원래 선유도는 한강에 면한 절경이고 신선이 노닐 만큼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그러나 일제시대 이후 한강 주변의 개발계획들은 선유도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선유도를 풍경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개발을 위한 골재의 원산지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개발의 광풍은 선유도뿐만 아니라 한강 주변의 절경들을 가차 없이 휩쓸어버렸다. 그리고 남은 상처에 호환블록을 덧씌워 ‘고수부지’라는 수변 공간을 마련했다. 이는 물을 합리적으로 다스리는 토목공사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강의 생태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학살 행위나 다름없다. 선유봉의 덩어리는 파괴되고 분쇄돼 평평한 섬같이 되었고, 모래톱 사이로 드나들던 나룻배도 사라져버렸다. 이 얼마나 짧은 세월 동안 이뤄진 급격한 변화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나의 관심사는 조선시대 진경산수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 옮겨갔고, <경교명승첩>에 나타난 한강의 풍경들은 보면 볼수록 한강의 옛 경관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또 최근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마다 한강을 어떻게 되살리는지에 대해 많은 제안들을 하고 있는데, 겸재 정선의 선유봉 그림이나 양화진, 동작진, 행호관어 등을 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겸재는 한강을 그린 것이 아니라 18세기 한강의 생태적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강에 대한 정책을 구상하기 이전에 한 번쯤 진지하게 한강 주변을 그린 겸재 정선의 그림을 차근차근 들여다본다면 그 안에서 우리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정책, 그리고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겸재 정선은 당대의 경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당시의 소리와 빛깔과 공기와 삶의 모습을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설사 후기 산업화 시대를 산다고 해도 강은 여전히 강이고 물은 여전히 물이다. 물은 늘 자연스럽게 흐르기를 바라고 그 속에 수많은 생명들을 거느리며 모래도 실어나른다. 한강과 같이 거대한 물은 메마른 도시를 적셔주는 찬란한 빛이요, 세월을 느리게 가게 하는 자연의 시간이며 한 민족의 숨결이기도 하다. 한강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치기 전, 제일 먼저 물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중지도가 감당해내기 어려운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계획에 앞서, 중지도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너는 모래톱이 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오페라하우스가 되기를 원하는가?“

자연은 인간이 손을 대지 않을수록 더 많은 아름다움을 인간에게 선사한다. 수도 서울 한강변은 한 가지의 유일한 목표인 치수(治水)에만 전념했을 뿐, 물을 품는 삶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려한 적이 없는 듯하다. 이를테면 겸재의 또 다른 그림 ‘행호관어’(杏湖觀漁·1741, <경교명승첩> 간송미술관 소장)를 보면 화창한 초여름 개화산에 올라가 덕양 산자락 물가에서 선단을 이루며 고기잡이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덕양산(행주) 부근은 모래톱과 갈대들이 우거져 바다에서 민물로 오는 고기들의 산란지였고, 그중에서도 웅어, 복어는 정말로 감칠맛 나는 생선이다.

보통 바닷물에서 민물로 넘나드는 생선들은 육질이 좋고,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웅어는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의 생선으로, 행주 건너편 고향에 사옹원을 두고 행주산성에는 석빙고를 두어 임금의 진상에 차질이 없도록 하였다. 덕양산 산자락의 벼랑을 이루는 곳에 한양 세도가들의 별서(별장) 지대로 이름난 곳이었고, 사천의 붓끝으로 당시의 아름다웠던 한강의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한다.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이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자연의 삶이다.

감칠맛나던 웅어와 복어를 아십니까

지금은 행주대교가 지나가고 주변에 수중보가 설치돼 웅어나 복어가 거의 사라졌고, 잡을 수도 볼 수도 없어졌고, 한강 하류의 또 다른 장관은 사라져버렸다.

겸재 정선의 평생의 친구인 진경시의 대가 사천 이병연은 행호관어의 시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늦봄이니 복어국이요

초여름이니 웅어회라

복사꽃 가득 떠내려오면

어망을 행호 밖에서 잃겠구나

사천 이병연이 읊은 행호관어의 시는 우리에게 당대의 고기잡이 풍경에 흥취를 더하게 한다.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볼 때마다 우리는 정지된 영화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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