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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엄마와 이모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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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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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신여성이었지만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던 두 자매…
웃음과 립스틱을 잊지 않았던 로맨티스트 이모를 동경했다네

▣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칼럼니스트

어떤 점잖은 자리에서 나로선 지극히 평범한 발언을 했는데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 “소문대로 로맨티스트군요” 했다.

로맨티스트 하면 나는 우선 로맨스가 떠오른다. 또 진취적이고 모험심이 많고 눈앞의 현실보다는 저 먼 곳의 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평생 호기심은 왕성했으나 곁눈질에 머물렀고, 모험에 목말랐으나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했고, 진취적인 포즈를 취했으나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간 적이 없다. 로맨스를 열렬히 좋아하지만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게 살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밖을 떠나 산 적도 없고, 친정집에서 남편 집으로 옮겨와 내내 같은 이불에서 같은 천장을 바라보며 산다. 가끔 보는 거울 속의 내 얼굴보다는 마주 보는 남편 얼굴이 더 익숙한 그런 재미없는 사람이다. 언론인 이외의 직업은 이번 생에선 오래전에 포기했다.


찢어진 내복을 입고 살았던 어머니

그런데 왜 사람들에게 내가 로맨티스트로 비쳤을까. 실제의 내 삶과 사람들이 보는 나는 왜 이렇게 백팔십도 다른 것인가. 결국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아닌가.

나는 어쩌면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인격자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어머니와 이모의 삶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어머니와 이모는 둘 다 신여성이다. 그러나 두 자매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다. 어머니는 찢어진 내복을 입고 살았고 식구 수대로 옷을 만드느라 쉼없이 재봉틀질을 했다. 뜨개질바늘이 손에서 떠난 날이 없었다. 몸빼바지를 입고, 김장을 수백 포기씩 했고, 한겨울엔 돼지피를 사다가 순대를 만들었고, 동지팥죽을 솥으로 쑤었다. 집안에는 엄마 쪽 친척, 아버지 쪽 친척이 늘 한두 명 같이 살았다. 방이 모자라 마당에 텐트를 친 적도 있다. 없는 살림에 대가족을 먹이고 입히느라 집안은 어수선했다. 밥상은 전쟁터였다. 딸들에게 입만 열면 일부종사, 그러니까 여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한 남자와 귀밑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입시켰다. 실질적인 것 이외의 사치는 한 치도 용납을 안 했다. 서울로 유학와 공부를 하고, 한때 모차르트를 좋아했고, 영화 <부활>을 보고, 방학 때 고향에 돌아가 외할아버지를 졸라서 집에 해먹을 매달아 그곳에 누워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 없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이모는 소설가였다. 생활이 어려워 잡지사 기자도 했고, 다방을 한 적도 있다. 어머니는 화장을 할 때 립스틱을 손에 조금 묻혀서 눈에 안 띄게 입술에 살짝 발라줄 뿐이었다. 이모는 새빨간 립스틱을 통째로 입에 대고 입술선을 따라 정성을 들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가운데로, 위 아래로 짙게 발랐다. 나는 이모가 화장하는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곤 했다. 이모가 딸깍 핸드백을 열고 담뱃갑을 꺼내면 나는 얼른 성냥과 재떨이를 바쳤다. 내가 담배를 일찍 배우고 여자가 담배 피우는 데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지적이고 아름다운 작가인 내 이모가 담배를 피우던 매력적인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모는 회색이나 남색 등 짙은 색의 남자 양복 천으로 한복을 이쁘게 만들어 입었다. 당시 여자들의 한복은 유행에 따라 유똥(실크 소재) 에서 벨벳, 나일론으로 변했지만 이모의 독특한 한복 차림은 커리어우먼의 징표처럼 느껴졌다.

이모는 두 번의 결혼을 했다. 첫 남편은 다른 사람의 여자와 함께 북으로 갔다. 이모와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버려졌다. 이모의 두 번째 남편은 같은 소설가였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 넷을 떠나 이모와 결혼해 남의 자식 넷을 거두었다. 참 어렵게 살았다. 이모네 집은 오막살이를 면했을 뿐이지만 오붓해 보였고 한마디로 로맨틱했다. 항상 고즈넉했다. 이모는 예쁘게 화장하고 따뜻한 백열등 전구 밑에서 남편과 겸상을 해서 밥을 먹었다. 아이들은 다른 방에서 조용히 따로 밥을 먹었다. 뭔가 은근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이모네 집에는 있었다.

다음 생에선 진정한 로맨티스트로

엄마는 일부종사를 하고 아버지 곁에 나란히 묻혔다. 이모는 딸을 따라 미국에 가서 노인 아파트에 혼자 살다 공동묘지에 묻혔다.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 보였던 어머니는 한평생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벌어본 적은 없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살았다. 이모는 자신의 손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았다. 인생이 늘 곤두박질쳤지만 다시 일어서곤 했다. 모험과 도전을 서슴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전 인생을 걸고 승부했다. 그러면서도 웃음과 립스틱을 잊지 않았고, 온 식구가 밥을 굶은 날 밤에도 조그만 등을 켜놓고 조용히 글을 쓰던 이모의 삶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라면서 이모가 내 엄마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많다. 이모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이모의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한 삶이 두렵기도 했다. 결국 어머니의 삶에 내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이모의 삶을 목을 길게 빼고 동경하며 산 것이 내 자화상이다. 내 이모를 사랑했듯이 나는 한결같이 로맨티스트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로맨티스트들이 들끓는다. 사람들에게 로맨티스트로 비쳤다는 것은 나에겐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룬 것처럼 달콤한 일이다. 다음 생에선 진정한 로맨티스트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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