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정처있는 발걸음’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지역감정에 관한 한, 가장 첨예한 이해당사자 중 하나인 영남지방의 청년이 제일 먼저 걷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 화답하기라도 하듯이 5·18의 고장 광주에서 호남지방의 또 한 청년이 걸어서 광주-부산을 주파했다는 것. 그리고 마치 각기 영남과 호남의 두 젊은이들의 노고를 정리해주기라도 하듯이 노년에 이른 아파트 경비원이 서울에서 지방을 향해 걸어내려가고 있다는 것. 이들이 한결같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힘없는 국민이라는 점. 이들의 ‘걷기’는 유행가의 무의지적 걷기가 아니다. 유행가의 걷기는 허무 속으로 떠밀려들어가지만 이들은 허무로부터 걸어나온다. 이들의 걷기는 의지적 걷기이다. 하지만 두 가지 걷기의 공통점도 있다. 그것은 전자의 경우에나 후자의 경우에 동원되는 인간의 몸이 최소한으로 축소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무런 연장도 없이 맨몸으로 운명이나 역사 안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맨몸’의 무장해제가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하나는 어쩔 수 없어서 맨몸이지만, 다른 하나는 원해서 맨몸이다. 후자의 걷기는 연장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말로 찢어놓은 국토를 몸으로 꿰맨다 우리는 그것을 적극적 수동성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호/주국전/곽만춘 제씨들은 자신의 투쟁의 순수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것이다. ‘걷기’라니, 얼마나 원시적이고 기초적인 행동인가. 그들은 가장 작은 것을 가지고 가장 큰 것과 싸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는 ‘육체’라는 가장 직접적인 존재의 매체를 가지고, ‘말’이라는 간접적 매체로 삶을 망가뜨린 자들에게 항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말’을 가지고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정치가들과 언론인들은, 힘없는 국민이 오죽 답답했으면 이처럼 원시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에 이르렀는지 잘 눈여겨보기 바란다. 어째서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 기꺼이 축소시켜서, 공간의 규정성이 거의 무의미해진 이 찬란한 탈근대사회 안에서 그토록 원초적인 방식으로 공간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기 바란다. 저들은 정치가들과 언론인들이 말로 찢어발긴 국토를 몸으로 꿰매고 있는 것이다. ‘지역감정’이라는 정치적 허깨비가 찢어놓은 공간을 꿰매려고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북에서 남으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말을 가지지 못한 힘없는 사람들의 몸-바늘을 바라본다. 그 바늘이 기어코 동서분리선과 남북분리선을 봉합할 것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이윽고 말로 국토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저 칼의 혀를 가진 자들의 입술도 봉합하리라는 것을.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