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걷기

346
등록 : 2001-02-13 00:00 수정 :

크게 작게

‘유행가 가사’라고 하면, 내 머릿속에는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이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그 구절은 너무나 강력하게 내 머릿속에 유행가의 원형처럼 못박혀 있다. 왜 그럴까? 그 구절이 유행가 전반이 드러내는 인간의 어떤 보편적인 정서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공간 안에 던져진 존재는 강요된 시간 안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걸어야 한다’. 즉, 움직여야 한다, 또는 운명을 수납해야 한다. 그러나 “걷는다마는”의 양보 어미가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그 노래 안에서 ‘걷는’ 자는 ‘걷기’의 목적도, 목적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정처없는’ 것, ‘허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는 일종의 원형적 정서라고 볼 수 있다.

3인의 ‘정처있는 발걸음’

그런데 우리 사회에 최근에 ‘걷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걷기는 ‘정처있는’ 걷기이다. 인간의 허무를 노래하는 유행가의 걷기가 한없이 열린 자리에서 인간의 걷기를 허공으로 날려보내는 원심적 걷기라면, 이들의 ‘걷기’는 찢어지고 분리된 공간들을 통합해 보려는 구심적 걷기이다. 이들의 발 아래에서 공간은 정치적 술수에 의하여 상실한 동질성을 회복한다.

지난해 겨울 부산에 살고 있는 청년 김동호씨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거대언론사에 항의하며 48일간 국토를 도보로 순례했으며, 광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아버지인 주국전씨는 ‘동서화합’을 기치로 내걸고 광주에서 부산까지 동서왕복 순례의 도정을 무사히 끝마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울에 살고 있는 64살의 노인이 이 ‘걷기’ 대장정에 나섰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곽만춘씨가 ‘지역감정타파’를 호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두달 반 동안 국토를 순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2월7일에 걷기 시작한 그는 발에 물집이 맺혀서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지금 공주쪽을 향해 걷고 있다고 한다.


이 ‘정처있는 발걸음’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지역감정에 관한 한, 가장 첨예한 이해당사자 중 하나인 영남지방의 청년이 제일 먼저 걷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 화답하기라도 하듯이 5·18의 고장 광주에서 호남지방의 또 한 청년이 걸어서 광주-부산을 주파했다는 것. 그리고 마치 각기 영남과 호남의 두 젊은이들의 노고를 정리해주기라도 하듯이 노년에 이른 아파트 경비원이 서울에서 지방을 향해 걸어내려가고 있다는 것. 이들이 한결같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힘없는 국민이라는 점.

이들의 ‘걷기’는 유행가의 무의지적 걷기가 아니다. 유행가의 걷기는 허무 속으로 떠밀려들어가지만 이들은 허무로부터 걸어나온다. 이들의 걷기는 의지적 걷기이다. 하지만 두 가지 걷기의 공통점도 있다. 그것은 전자의 경우에나 후자의 경우에 동원되는 인간의 몸이 최소한으로 축소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무런 연장도 없이 맨몸으로 운명이나 역사 안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맨몸’의 무장해제가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하나는 어쩔 수 없어서 맨몸이지만, 다른 하나는 원해서 맨몸이다. 후자의 걷기는 연장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말로 찢어놓은 국토를 몸으로 꿰맨다

우리는 그것을 적극적 수동성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호/주국전/곽만춘 제씨들은 자신의 투쟁의 순수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것이다. ‘걷기’라니, 얼마나 원시적이고 기초적인 행동인가. 그들은 가장 작은 것을 가지고 가장 큰 것과 싸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는 ‘육체’라는 가장 직접적인 존재의 매체를 가지고, ‘말’이라는 간접적 매체로 삶을 망가뜨린 자들에게 항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말’을 가지고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정치가들과 언론인들은, 힘없는 국민이 오죽 답답했으면 이처럼 원시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에 이르렀는지 잘 눈여겨보기 바란다. 어째서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 기꺼이 축소시켜서, 공간의 규정성이 거의 무의미해진 이 찬란한 탈근대사회 안에서 그토록 원초적인 방식으로 공간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기 바란다.

저들은 정치가들과 언론인들이 말로 찢어발긴 국토를 몸으로 꿰매고 있는 것이다. ‘지역감정’이라는 정치적 허깨비가 찢어놓은 공간을 꿰매려고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북에서 남으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말을 가지지 못한 힘없는 사람들의 몸-바늘을 바라본다. 그 바늘이 기어코 동서분리선과 남북분리선을 봉합할 것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이윽고 말로 국토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저 칼의 혀를 가진 자들의 입술도 봉합하리라는 것을.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