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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초콜릿 없이도 사랑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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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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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만나러 가는 명동거리 상점에는 초콜릿이 그득했다. 하트모양 바구니에 담긴 네모난 초콜릿, 금박에 싸인 계란형 초콜릿, 샴페인을 본뜬 초콜릿…. 각양각색의 초콜릿이 잔뜩 쌓인 가판 앞에 멈춰선 10대 소녀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2월14일 밸런타인데이가 사흘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명동 유네스코회관 2층에 자리한 청소년 문화공간 미지(mizy)센터에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안티밸런타인데이 캠페인을 준비하는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학생들이다. 40여명의 청소년들은 가위와 풀, 크레파스 등을 늘어놓고 모둠별로 피켓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광고를 패러디하면 어떨까?” “밸런타인데이 퀴즈로 눈길을 끌자!”는 등 발랄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한편에 놓인 피켓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사랑을 돈으로 하나’, ‘우리의 마음은 초콜릿보다 더 달콤해’, ‘비싼 초콜릿보다 마음이 담긴 엽서를 보내자’.

‘희망’의 이로미 간사는 “본래의 취지는 퇴색된 채 앙상하게 상술만 남은 밸런타인데이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라고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한다. “학교의 희망이 되고, 사회의 희망이 되자”는 모토를 내걸고 지난해 결성된 ‘희망’은 그동안 꾸준히 상업화된 청소년문화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올해 처음으로 펼치는 안티밸런타인데이 캠페인도 이런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피켓을 만드느라 손놀림이 바쁜 문일고 3학년 권태형군은 “처음에는 이 캠페인 때문에 왕따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다”면서 “막상 주변 친구들에게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하니 모두 좋다고 하더라”며 웃는다. 옆에 있던 영상고 2학년 김아리양도 “마음을 전하기 위한 선물이 다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경쟁적으로 비싼 선물만 하려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는다.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언론의 한편을 장식하는 청소년들의 과소비 풍조. 일부 청소년들은 10만원을 호가하는 초콜릿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엄마와 다투고, 심지어 비행까지 저지른다. 이런 세태에 “밸런타인데이, 거꾸로 다시 보자!”며 딴죽을 거는 ‘희망’의 목소리는 2월14일 오후 6시 서울 명동의 한빛은행 앞에서 만날 수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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