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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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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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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기자로 취재와 기사 작성을 시작한 지 이제 2년 하고 4개월이다. ‘사랑의 유효기간 1년6개월, 사고는 그때부터 시작된다’는 광고 문구처럼 기자생활 만 2년이 되어가던 올해 초, 사고는 시작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오보를 냈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하루가 밋밋하고 어딘가 좀이 쑤시고 의욕이 떨어지는, 단순히 정신적인 접촉불량 사고가 시작됐다는 말이다. 전성기가 없었기에 슬럼프도 아니었다.

증상으로는 우두커니 앉아 있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며 잠이 급격하게 느는 것 등이었다. 스스로 내린 처방전은 억지로라도 웃게 해주는 TV였다. 내 손에는 노트북이 있었고, 노트북에는 인터넷 전용선이 연결돼 있었으며, 드라마를 다운받을 만큼의 캐시백 포인트도 두둑했다. 드라마에 손을 댔고 디시인사이드 드라마 갤러리에 접속했다. 마음 붙일 곳을 찾은 기분이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기자실에서 나와 노트북은 꽤 외로웠나 보다. 드라마를 보고 또 보고 캡처도 해보고 포토숍도 하면서 나와 노트북은 드라마와 갤러리에 빠져들었다.

(사진/ 윤운식 기자)


지난달 <한겨레21>로 호적을 옮겨 처음 쓴 기사 ‘궁갤러의 마지막 닥본사’는 일종의 자전적 기사였다. 드라마 <궁>과 궁갤러리에서 나와 함께 뛰놀던 네티즌들을 전지적 기자 시점에서 알면서 모르는 척,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미니멀하고 포스트모던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첫 번째 기사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궁갤에는 잠시 <한겨레21> ‘급구입’ 바람이 불었고 ‘지하철에서 이번주 <한겨레21>을 들고 있는 당신은 궁갤러’라는 농담도 반짝 돌았다.

2년 넘게 기자로 일했지만 통신기자였기에 내 이름 석자가 종이에 적혀 인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름과 기사로 끝났다면 담담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표지사진이었다. 모델을 찾는 수고를 덜고 모델비도 아끼자는 의미에서 선배들은 회사에 들어온 지 채 사흘이 안 되는 내게 야채를 머리에 쓴 메트로폴리탄 여성이 되어 표지에 등장해볼 것을 제안했다. 미니멀하며 포스트모던한 자전적 기사를 쓰는 궁갤러에 채식주의자인 메트로폴리탄 여성. 그러니까 다중인격 ‘다중이’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604호를 받아들고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오나전 캐안습이삼!’(완전 굉장히 감동적이다!)

주변 F씨는 “가판대에서 네가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바이오리듬이 왕창 깨졌다”고 다그쳤고, Q씨는 “쓰레기차나 영구차 본 것처럼 네 얼굴로 하루를 시작하니 운수가 대통했다”고 좋아했으며, V씨는 “니 기사,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도 했다. 몇몇은 “회사 옮겼다고 너처럼 표지에 광고하는 애는 처음 본다”고 했고 “며칠 전 삼겹살 집에서 본 것 같은데 웬 채식이냐”는, 남의 다리 긁는 문자도 받았다.

시간 빠르다. 벌써 2주가 흘렀다. 2주 동안 나름의 변화가 있었다. 먼저 궁갤에 발길을 끊었다. 뭐든 일로 다가오면 애정이 급격히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기사에 쓸 이미지를 찾느라고 궁갤을 미친 듯이 뒤졌더니 궁갤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눈이 새빨개진다. 두 번째, 가판대에서 내 얼굴이 사라졌다. 주간지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가판대에서 하루 종일 웃고 있느라 힘들었는데 이제 살 것 같다. 세 번째, 사고 전으로 돌아왔다. 마음 붙일 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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