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경선 참여 밝힌 뒤 여론조사 1위로 떠오른 오세훈 전 의원…“나는 합리적 녹색주의자… “탄핵은 몸으로 막아야 할 사안이었구나”후회도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4월9일 오세훈 전 의원이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 참여를 공식 선언한 이후 그에 관한 기사를 찾아봤다. 2004년 1월 이렇게 썼다. “그가 잊혀지지만 않는다면 정치와 거리를 둘수록 ‘주가’가 올라가고, 이상을 실현하기에 척박한 정치 현실이 개선돼 다시 돌아올 명분이 주어진다면 예전의 오세훈이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정치권엔 그의 퇴장을 ‘노무현 벤치마킹’으로 해석하는 기류가 있었다. 4월14일 2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정계 은퇴” 표현 쓴 적은 없어 정치인들은 ‘손맛’을 느낀다는데 대의원들 만나본 느낌이 어떤가. =아직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인터뷰와 토론회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도 사양하려 했다.
오늘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오 후보가 열린우리당의 유력 주자인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한나라당 지지층 사이에서도 다른 후보들에 비해 월등히 앞서고 있지 않나.
=당내 경선 구조는 대면 접촉을 하지 않으면 불리하게 되어 있다. 정이 들었기 때문에. 6개월이나 1년 정도 접촉한 후보들도 있지 않나. 지금으로서는 예측불허다. 지지율은 얼마든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까. 좀더 두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것을 보면 오 후보의 복귀에 관대한 것 같다.
=잘 모르겠다. 뭐든지 다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 보면 그리 보인다. 그냥 보이는 대로다. 그만둘 때 정치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비인간적이기도 하고 냉혹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정치 세계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나를 괴롭혔다. 복합적이었다. 그런데 떼밀려나오는 것을 보면 다 까먹었나 보다. 망각한 거지.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거 아니었나.
=그런 심정을 피력하니까 사람들에게 그런 이미지가 남았던 것 같다. 그런 표현을 쓴 인터뷰는 없었다. 불출마 선언이었다. 5·6공 인사 퇴진론을 제기한 마당에 같이 희생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했던 것이다.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온 뒤 변호사 일에 전념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나.
=한동안 영어와 중국어 잡고 난리치다가 주저앉았다. 생업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법무법인 대표로 영입된 마당에 몇 개월씩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2005년 말, 오 후보와 가까웠던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 ‘개혁벨트론’이 화제였다. 오세훈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권철현 부산시장 출마로 라인업을 짜자는 얘기였는데 이런 논의에 참여했나.
=나중에 그런 논의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거의 만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만나더라도 정치 얘기는 하지 않았다.
“수도권 대기 질 특별법’에 프라이드
갑작스럽게 출마를 결심했는데 정책 준비는 다 돼 있다. 어색하지 않나.
=지난해 8월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라는 책을 낸 뒤 11월까지 자료를 좀 봤다. 관심이 나도 모르게 서울시로 쏠리더라. 자기 암시 비슷했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을 그만둘 때부터 서울시장 생각이 있다고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쭉 1등으로 나왔다.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면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아니구나 하고 접은 게 11월이다. 어렴풋이 되새김질해서 끌어올리려니 시간이 걸린다.
사실 몇 개월 구상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나. 갑자기 불려온 사람이 충분히 준비하고 나왔다는 것은 솔직히 선거용 발언이다. 세부적 사안에서는 많이 부족하다. 리더는 철학이나 가치관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래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우리 사회,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뛰어들기 직전 고민이 짧아서 디테일에 부족한 면이 있을지 몰라도 시정을 객관적으로 보고 큰 틀에서 구상할 수 있었다.
기획부터 필자 선정까지 오 후보가 다 했다는데 시장 출마를 염두에 뒀다는 말인가.
=시정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없다. 시정에 관심이 있었다면 일찌감치 연관되는 책을 내지 않았겠나. 국정에 관한 책이다.
그럼 멀리 보고 준비한 것인가.
=…. (웃음)
미래연대 대표를 지냈다. 미래연대가 한나라당의 개혁을 주장했지만 결정적일 때는 꼬리를 내렸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실제 바뀌지 않았나. 당헌·당규가 바뀌고 선거를 새로 치렀다. 총재 제도가 폐지되고 집단지도 체제가 들어섰다. 오세훈 대표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미래연대가 몇 년 지속됐으니 그렇고, 그렇게 활동한 적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내가 대표를 지낼 때 “이회창 총재가 너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니 총대를 메라”는 무언의 압력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정풍운동이 끝나고 수습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4년 동안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내세울 만한 업적은 뭔가.
=수도권 대기 질 보존에 관한 특별법이다. 선거법, 정치자금법을 ‘오세훈 법’이라고들 흔히 말하지만 프라이드를 가진 법이 이 법이다. 결국 환경부 법안이 돼버려 레테르는 붙어 있지 않지만 시동은 내가 걸었다. 올 7월부터 시행된다. 자동차 배기가스, 특히 경유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법안이다. 물론 돈이 무지 든다. 행정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예산은 한정돼 있다. 그래서 시장의 철학이 중요하다. 4년 임기 중에 대기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시장이 되고 싶다.
환경을 상징하는 녹색은 하나가 아니다.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합리적 녹색주의자 정도로 해두자. 경제와 상생을 추구하는. 극렬한 환경주의자는 아니다. 육식을 하지 않고 생태를 우선시하는 자연주의, 채식주의 쪽은 아니다. 환경은 이제 경제다. 환경 문제에 천착하면 기업은 경영상 득을 보게 될 것이다.
최근 탄핵 관련 발언이 논란이 됐다.
=인터뷰 전문을 봤나. 전체 취지나 맥락을 이해하면 반발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승부를 던지면서 약간 유도한 측면도 있었고 전략적으로 집권 행태가 썩 바람직하지 않으나 탄핵할 정도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당시 소장파 사이에는 전략적 미스라고, 엄청난 역풍이 불 것이라는 반론이 상당했다. 그럼에도 당론으로 채택됐다. 이 당론만큼은 따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따랐다. 이제 와서 그걸 다시 묻는데, 정치인이 판단해놓고 후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다시 반복돼도 그리 하겠냐고 해서 그렇다고 답했다. 경과를 말한 것이지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거부감 가지고 있는 사실에 대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사람이 정서를 거스르는 얘기를 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진행자가 기사를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개혁을 주장할 때 강제적인 당론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나.
=자유투표 법안도 내가 냈다. 하지만 몹시 위중한 상황이었다. 당이 목숨 걸고 하는 것이었다. 개인적 의견은 반대였지만, 당론으로 결정되니 고민되더라. 불출마까지 선언한 마당에 고민이 많았다.
가치 판단의 영역에서 볼 때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나.
=결과적으로 보면 국민적 저항이 심했다. 다수의 판단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민의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가 호되게 깨달은 기회였다. 몸으로 막아야 할 사안이었구나 하는 후회도 했다.
문제의 탄핵 발언은 인터뷰에 말려든 것
오 후보가 좋아하는 문구 ‘추사유시’(趨舍有時·사람의 진퇴에는 각각 그 시기가 있다)는 철학이라기보다는 처세술로 읽힌다. 오세훈의 철학은 뭔가.
=철학이나 삶에 대한 가치관 같은 얘기를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소박하다. 이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노력한 것 이상으로. 에머슨의 ‘성공이란 무엇이냐’는 시를 좋아한다. (전문을 읊었다. ‘내가 한때 이 세상에 살았음으로 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태어나기 전보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고 떠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시다.) 기여하고 가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그래서 이런 가시밭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정계 은퇴” 표현 쓴 적은 없어 정치인들은 ‘손맛’을 느낀다는데 대의원들 만나본 느낌이 어떤가. =아직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인터뷰와 토론회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도 사양하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