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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편지 한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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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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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지난 3월17일,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 사는 독자 한 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사인펜으로 조심스럽게 쓴 편지 겉봉투에는 ‘사천 비토리섬 사건 취재 담당’ 앞이라고 씌어 있었다. 편지를 보내온 독자는 자신을 최정숙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부친은 1957년 8월28일 양식을 구하기 위해 섬을 개간하던 한센인들을 섬 사람들이 집단 학살한 ‘비토리섬 사건’의 희생자 최자경씨다. 편지를 읽고 답장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벌써 한 달이 지나고 말았다.

그는 “2006년 2월21일치 <한겨레21>(597호)에 실린 ‘한센인 학살 경찰이 방관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 편지를 보낼 결심을 하게 됐다”고 했다. <한겨레21>은 당시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다룬 국회 조사보고서(1957년 10월16일 ‘나환자와 사천군 비토리 주민과의 충돌사건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찾아 지면에 실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마음에 분노가 쌓였습니다. 50년 동안 모르고 살았던 사실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알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씨가 태어난 것은 1958년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부친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모친은 부친이 숨을 거뒀을 때 최씨를 임신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따금 최씨를 무릎에 앉혀놓고 “아버지가 비토섬 사건으로 처참하게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철이 들자 그는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고 싶어 오랜 시간 애태웠던 모양이다. 그는 삼천포 경찰서에 찾아가려 했지만 “한센병 환자를 인간같이 생각하지 않았고, 제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진상 찾기 노력을 포기했다. 5년 동안 기자 생활한 경험으로 볼 때, 그가 경찰서에 찾아가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답답한 마음으로 경찰서를 찾은 민원인들을 거칠게 몰아내던 경찰을 본 일이 한두 번이던가. 아예, 말을 말자.

그는 “한국에 살면서 한센 2세로서 따돌림도 당했고 많은 시련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7년 5월 재일동포와 결혼을 해서 지금은 일본에 살고 있다. 일본에서 살면서 늘 아버지의 산소가 염려됐지만, 자주 갈 수 없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온몸이 떨리고 불쌍하고 얼마나 아픔을 당했고 고통을 받으면서 돌아가셨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습니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50년이란 세월을 한을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편지지 위에서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떨리는 분노를 참아야 하는 것은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몫이다. 지난 가을 일본 법원의 ‘소록도 판결’이후 잠시 높아지던 한센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든 것 같다. 해방 이후 사회의 차별과 편견 속에서 시름해온 한센인들을 위한다는 ‘한센인 특별법’은 골프와 테니스와 성추행에 밀려 벌써 여섯 달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2월8일 취재를 위해 사천 영복농원 뒷산에 마련된 희생자들의 무덤을 찾았다. 깔끔하게 풀이 뽑힌 초라한 무덤 한 기 앞에 꽃다발 뭉치가 놓여 있었다. 꽃의 주인이 누굴까 궁금해 사진을 찍어 지면에 실었는데, 최씨의 편지를 받고 의문이 풀렸다. “2006년 2월2일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 벌초를 하고 꽃을 꽂아놓고 왔는데 그때의 사진이 기사에 실려나온 것을 보고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담하고 예쁜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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