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설계를 위해 의사와 대화하다 결국 입원해 수술까지…
60년대 큰아버님네 병원 대가족의 담당한 정경을 떠올리다
▣ 정기용 건축가
병원에 가는 것을 즐거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건축가는 직업상 기꺼이 병원을 드나들 때가 있다. 병원 설계를 위임받고 작업을 시작한 초기 단계에 병원을 책임지고 이끌 원장 선생님과의 현장 회의는 필수적이다. 서로 시간을 맞추기 어려우면 새벽에라도 만나서 많은 대화를 주고 받는 법이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병원을 어떻게 개선해야 합리적인 운영과 관리가 가능한지, 진료 과목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환자를 보살피고 의료진의 능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해법을 써야하는지 찾아야한다. 일반적인 건축물과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한 특수한 설계 분야다. 무엇보다 의사의 의견을 많이 듣고 참고해야 함은 필수적이다. 꼬리를 무는 현대의학에 대한 의구심 나도 지난해 5월부터 제주도에 들어설 비교적 큰 병원 설계를 맡아 일을 시작했다. 두세 번째 의사와의 아침 회의가 끝날 무렵 나는 평소에 조금씩 통증이 있었지만 무시하고 지내던 좌골신경통 얘기를 꺼낼까 말까 망설이다, 무심코 십수 년간 참고 넘기던 얘기를 의사에게 해버렸다. 그랬더니 그것은 둔부의 통증이 아니라 척추의 이상일 것이라고 얘기를 꺼내며 진단해봐야 알겠지만 간단한 치료를 받으면 금방 나을 것이라고 가볍게 받아주었다. 그때 나는 고자쟁이 심장이 되어 “그렇지요. 좋은 설계를 하려면 입원도 해봐야지요”라고 거들면서 새로운 각오를 하듯 화답했다. 그랬더니 의사가 갑자기 “건강검진은 혹시 언제 하셨나요?”라고 물어왔다. 나는 뜨끔했다. 마지막으로 종합검진을 받은 햇수가 잘 떠오르지 않아 아마 십 년은 넘은 것 같다고 말하자마자 그 의사는 그렇다면 자신의 병원에 건강검진 코너가 있으니 내일 당장 건강검진도 받으라고 안주머니에서 검진진료 쿠폰을 내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그 다음날 검진을 받았고 그 결과 지난해 9월 나는 육십 평생 과다하게 사용한 육신이 걸릴 수밖에 없는 병을 발견하고, 몇 개월 병원을 드나들며 검사도 받고 입원도 해보면서 이제는 치료의 끝 무렵을 보내고 있다. 평소 건강 체질이라고 생각하다 큰 곤욕을 치렀다. 나는 지금까지 살던 일상과 전혀 다른 삶을 체험하게 된 셈이다. 현대 의학에 대한 의구심은 물론 의사와 환자의 독특한 관계, 병원과 환자, 돈과 병원, 의료보험과 복지국가의 문제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의사란 누구인가? 양의와 한의는 왜 환자를 서로 다르게 다루는가? 한방의학과 민간요법과 양의학은 왜 제대로 결합되지 않는가? 병원에서 진정한 주인은 누구이며 주인이 있기는 한 것인가? 나아가 병원 설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비인간적인 요소는 무엇이며, 이런 모든 문제들이 물자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이어졌다. 그러나 제대로 해답은 없고, 분명한 것은 하나있으니 의료서비스 분야는 아주 명확한 제도와 절차와 관습이 있어 요지부동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작 병원을 가까이에서 대하며 의사의 직업을 면밀히 관찰할 기회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6·25 때 아버님이 의용군에게 끌려가신 뒤 큰집에서 사촌들과 자랐다. 큰아버님은 내과·소아과 의사이셨고, 지금은 사라진 을지로7가 95번지에서 동네 환자들을 돌보셨다. 십수 명이 넘는 식구와 간호사, 약제사 등 대식구가 한옥에서 기거하고 일식 2층 건물은 병원으로 사용했다. 커다란 회전의자와 육중한 진료 책상, 흰색 시트를 씌운 작은 침대, 약을 조제하던 방, 병원에 떠돌던 소독약 냄새, 그리고 늘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 가족들, 가족들의 신발. 모든 것이 그야말로 고통받는 환자와 치료하는 의사의 관계가 아니라 큰 가족의 담담한 일상적 정경으로 떠오른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새벽 2~3시가 지난 깊은 밤에 대문을 부서져라고 두들겨대는 소리에 온 식구가 깨어나던 일들이다. 자주 그랬지만, 위급한 환자들이 밤에 왕진을 요청하면 큰아버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깨어나셔서 주섬주섬 가운을 입으시고 아이들이 잠자는 머리맡을 지나 간호사가 준비한 왕진가방을 앞세우고 어둠 속을 뚫고 나가셨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서야 환자를 돌보고 돌아오시면 그제야 모든 식구들이 잠자리에 들곤 했다. 60년대, 아니 70년대까지만 해도 의술은 인술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이제 의술은 분화하고 다른 기술들과 접목되면서 어마어마한 산업이 되었고 환자들은 임상실험의 통계 숫자로 전락하고 의료수가는 날로 치솟아 서민들은 질병보다 더 감내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의사들은 환자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환자와 마주 보고 청진기를 대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온갖 영상의 판독에 심혈을 기울인다. 진단영상 분야는 날로 발전해, 환자는 영상을 낳아주는 대리인처럼 되었다. 현대의학은 이제 통계학 쪽과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환자들이 행복하게 걷는 공간을 육신은 있으나 유기체는 사라지고, 의사는 있으나 환자는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비해 환자를 바라보고 진맥을 하며 환자와 접촉하는 한의학은 아날로그 의학의 한계를 보여줄 수 밖에 없는가? 두 분야가 협진하는 사례가 불충분하고 아직도 서로를 경계할 때 환자들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해법은 아주 간단한 데 있는 듯싶다. 모든 것은 자기 신체의 자율적 조정과 회복 능력에 맡기고, 심호흡을 하며 대지를 힘차게 걸으면 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병원에 가보니 환자들만 있다. 중증환자들이 있는 6인실에 하루만 있어보면 일상적으로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의 풍경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이는지 알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나도 조금 알 것 같다. 좋은 병원 설계는 환자들이 행복하게 걷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것을.

수개월간 병원을 들락거리며 지금까지의 일상과 전혀 다른 삶을 체험하게 됐다. 의사라는 직업을 면밀히 관찰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환자가 걸을 공간이 부족한 그곳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기 바쁜 의사들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병원을 어떻게 개선해야 합리적인 운영과 관리가 가능한지, 진료 과목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환자를 보살피고 의료진의 능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해법을 써야하는지 찾아야한다. 일반적인 건축물과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한 특수한 설계 분야다. 무엇보다 의사의 의견을 많이 듣고 참고해야 함은 필수적이다. 꼬리를 무는 현대의학에 대한 의구심 나도 지난해 5월부터 제주도에 들어설 비교적 큰 병원 설계를 맡아 일을 시작했다. 두세 번째 의사와의 아침 회의가 끝날 무렵 나는 평소에 조금씩 통증이 있었지만 무시하고 지내던 좌골신경통 얘기를 꺼낼까 말까 망설이다, 무심코 십수 년간 참고 넘기던 얘기를 의사에게 해버렸다. 그랬더니 그것은 둔부의 통증이 아니라 척추의 이상일 것이라고 얘기를 꺼내며 진단해봐야 알겠지만 간단한 치료를 받으면 금방 나을 것이라고 가볍게 받아주었다. 그때 나는 고자쟁이 심장이 되어 “그렇지요. 좋은 설계를 하려면 입원도 해봐야지요”라고 거들면서 새로운 각오를 하듯 화답했다. 그랬더니 의사가 갑자기 “건강검진은 혹시 언제 하셨나요?”라고 물어왔다. 나는 뜨끔했다. 마지막으로 종합검진을 받은 햇수가 잘 떠오르지 않아 아마 십 년은 넘은 것 같다고 말하자마자 그 의사는 그렇다면 자신의 병원에 건강검진 코너가 있으니 내일 당장 건강검진도 받으라고 안주머니에서 검진진료 쿠폰을 내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그 다음날 검진을 받았고 그 결과 지난해 9월 나는 육십 평생 과다하게 사용한 육신이 걸릴 수밖에 없는 병을 발견하고, 몇 개월 병원을 드나들며 검사도 받고 입원도 해보면서 이제는 치료의 끝 무렵을 보내고 있다. 평소 건강 체질이라고 생각하다 큰 곤욕을 치렀다. 나는 지금까지 살던 일상과 전혀 다른 삶을 체험하게 된 셈이다. 현대 의학에 대한 의구심은 물론 의사와 환자의 독특한 관계, 병원과 환자, 돈과 병원, 의료보험과 복지국가의 문제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의사란 누구인가? 양의와 한의는 왜 환자를 서로 다르게 다루는가? 한방의학과 민간요법과 양의학은 왜 제대로 결합되지 않는가? 병원에서 진정한 주인은 누구이며 주인이 있기는 한 것인가? 나아가 병원 설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비인간적인 요소는 무엇이며, 이런 모든 문제들이 물자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이어졌다. 그러나 제대로 해답은 없고, 분명한 것은 하나있으니 의료서비스 분야는 아주 명확한 제도와 절차와 관습이 있어 요지부동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작 병원을 가까이에서 대하며 의사의 직업을 면밀히 관찰할 기회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6·25 때 아버님이 의용군에게 끌려가신 뒤 큰집에서 사촌들과 자랐다. 큰아버님은 내과·소아과 의사이셨고, 지금은 사라진 을지로7가 95번지에서 동네 환자들을 돌보셨다. 십수 명이 넘는 식구와 간호사, 약제사 등 대식구가 한옥에서 기거하고 일식 2층 건물은 병원으로 사용했다. 커다란 회전의자와 육중한 진료 책상, 흰색 시트를 씌운 작은 침대, 약을 조제하던 방, 병원에 떠돌던 소독약 냄새, 그리고 늘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 가족들, 가족들의 신발. 모든 것이 그야말로 고통받는 환자와 치료하는 의사의 관계가 아니라 큰 가족의 담담한 일상적 정경으로 떠오른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새벽 2~3시가 지난 깊은 밤에 대문을 부서져라고 두들겨대는 소리에 온 식구가 깨어나던 일들이다. 자주 그랬지만, 위급한 환자들이 밤에 왕진을 요청하면 큰아버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깨어나셔서 주섬주섬 가운을 입으시고 아이들이 잠자는 머리맡을 지나 간호사가 준비한 왕진가방을 앞세우고 어둠 속을 뚫고 나가셨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서야 환자를 돌보고 돌아오시면 그제야 모든 식구들이 잠자리에 들곤 했다. 60년대, 아니 70년대까지만 해도 의술은 인술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이제 의술은 분화하고 다른 기술들과 접목되면서 어마어마한 산업이 되었고 환자들은 임상실험의 통계 숫자로 전락하고 의료수가는 날로 치솟아 서민들은 질병보다 더 감내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의사들은 환자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환자와 마주 보고 청진기를 대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온갖 영상의 판독에 심혈을 기울인다. 진단영상 분야는 날로 발전해, 환자는 영상을 낳아주는 대리인처럼 되었다. 현대의학은 이제 통계학 쪽과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환자들이 행복하게 걷는 공간을 육신은 있으나 유기체는 사라지고, 의사는 있으나 환자는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비해 환자를 바라보고 진맥을 하며 환자와 접촉하는 한의학은 아날로그 의학의 한계를 보여줄 수 밖에 없는가? 두 분야가 협진하는 사례가 불충분하고 아직도 서로를 경계할 때 환자들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해법은 아주 간단한 데 있는 듯싶다. 모든 것은 자기 신체의 자율적 조정과 회복 능력에 맡기고, 심호흡을 하며 대지를 힘차게 걸으면 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병원에 가보니 환자들만 있다. 중증환자들이 있는 6인실에 하루만 있어보면 일상적으로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의 풍경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이는지 알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나도 조금 알 것 같다. 좋은 병원 설계는 환자들이 행복하게 걷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