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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린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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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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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 탐방로 계획에 참여하며 알게 된 도성 안 서울의 참맛… 빌딩의 해코지에 굴하지 않는 넉넉한 경관 보러 봄 산책 가자

▣ 정기용

서울 남대문의 본래 이름이 숭례문(崇禮門)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서울의 북대문은 어디 있으며 그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실은 나도 세검정으로 넘어가는 창의문이 북대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창의문은 북쪽으로 나 있긴 하나 북소문이다.

서울 4대문 가운데 북대문인 숙정문이 보인다. 숙정문 200m 위에 자리한 촛대바위에 올라서자 상상하지 못했던 경관이 펼쳐졌다. 서울은 자연이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그러다 지난해 숙정문(肅靖門) 개방을 위한 준비계획에 참여하면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북대문이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끄러웠고, 우리가 알고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북악산 동쪽 자락에서 본 서울은 정말로 빼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됐다.


남대문은 숭례문, 북대문은 어디지?

서울의 북대문은 숙정문이다. 다만 숙정문은 다른 문들과 달리 평지가 아니라 험준한 고갯마루에 있고, 예로부터 일상적으로 드나들기보다는 ‘상징적’인 문이었으며, 더욱이 최근에는 북악산 일대가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군사시설보호 지역에 편입되면서 완전히 일반 시민들에게는 잊혀졌던 것이다.

그 문이 올봄에 비로소 일반에게 개방된다. 최소한의 탐방로를 갖추고 말이다. 아직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은 사건이지만 서울을 새롭게 바라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발단은 이렇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을 산책하다 발견한 숙정문과 그 일대, 그곳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광경이 워낙 빼어난 터라, 이런 기쁨을 대통령 혼자 독점하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해 문화재청에 일반에게 개방할 것을 권고했고 여러 차례 관계자들의 논의를 거쳐 개방이 결정된 것이다.

본래 숙정문은 태조 5년(1396) 9월에 축조했고, 서울 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혜회문·광희문·서소문·창의문)을 두었고 세종 때와 숙종 때 고쳐 쌓았다. 그리고 첫 명칭은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중종 18년 이후 숙정문, 북정문으로 불렸다. 그러나 숙정문은 축조한 지 13년도 안 돼 태종 13년(1413)에 폐쇄시키고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다. 그 이유는 풍수학자 최양선이 숙정문은 지리학상 경복궁의 양팔과 다리 같으니 길을 내어 지맥을 손상해서는 안 된다는 상소문 때문이라고 한다.

본래 태생이 산속에 위치한 형식적인 문이 되다 보니 애초부터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특히 북은 ‘음’(陰) 또는 ‘물’(水)로 인식돼 가뭄이 심할 때는 열고 기우제를 드리고 ‘불’(火)이 들어오는 숭례문을 닫았다고도 하고, 또한 여성을 상징해 ‘암문’이라고도 불렸는데 순조 때 한 실학자는 숙정문을 열어두면 장안의 여인들이 바람이 난다고 적고 있다. 정월대보름 이전에 숙정문을 세 차례 다녀오면 액막이를 한다 하여 여인들의 출입이 잦았고 간혹 풍기가 문란해졌단 소문도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가보아도 숙정문 주변의 산세는 험하고 숙정문 좌우 성곽 쪽으로는 가파르며 음한 기운이 있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1504년 연산군 10년 숙정문을 동쪽으로 약간 옮겨 문루도 없이 성벽에 홍예로만 석문을 세웠다. 그러다 1968년 청와대를 향한 무장공비 침입사건, 즉 1·21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숙정문을 포함해 북악산 일대는 군사시설 보호지역으로 일반의 침입이 금지되다, 1976년 성벽을 복원하면서 문루를 짓고 편액을 걸었으나, 역시 오랫동안 감춰져 몇몇 요인들 말고는 청와대 일원을 지키는 군인들만 북대문의 존재를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근래의 역사 때문에 숙정문 주변은 정말로 근사한 소나무 군락지로 변모했다. 한반도의 수많은 군사시설들이 그렇듯이 한편으로는 자연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발을 방지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중요한 기능도 하고 있다.

여전히 자연과 맞닿은 도시의 뿌리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잊혀졌던 서울 도성의 대문을 우리가 접근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서울을 새롭게 바라볼 시점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숙정문에서 북악산 쪽으로 200m 오르면 촛대바위가 왼편으로 드러나고 좁은 촛대바위 위로 올라가 경복궁 쪽을 멀리 부감하면 그동안 상상조차 못했던 서울의 장관이 펼쳐진다. 반듯하게 위용을 갖춘 경복궁과 남쪽으로 뻗어간 주작(朱雀)대로, 세종로가 뻗어 있다. 그리고 빌딩들이 도열해 있고 남산과 그 멀리로는 관악산까지 어렴풋이 보인다. 간혹 좋은 날씨에는 서울의 모든 전경이 눈 아래 펼쳐진다. 그리고 서울의 내사산(북악산·인왕산·낙산·남산)의 정상을 이어 만든 18.13km의 도성 안의 서울은 근대화 이후 많은 건물과 높은 빌딩들로 넘쳐나지만, 지금까지는 적어도 여러 방자한 해코지에도 굴하지 않고 시민의 삶을 품어주는 넉넉함이 있다. 몇m라도 더 높이 지으려고 까불지만 지금까지의 정도라면 넉넉히 수용할 태세를 갖췄다. 다만 더 이상의 용적률 상승을 자제하는 것이 사대문 안의 도심 경관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청계천을 복원한다고 해놓고 거대한 ‘콘크리트 분수’로 급조하고, 그 주변을 기존 도심부 관리계획이 명시했던 90m를 벗어나 그 이상으로, 심지어 145m까지 허용하려는 서울시의 노력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들은 적어도 한 번쯤 숙정문 위의 촛대바위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보면 열 마디 비판이 필요 없을 만큼 자명한 일임을 알 것이다. 그럼에도 사대문 안의 경관을 근본적으로 손상시킬 작금의 도심부 관리계획 변경안은 철회돼야 마땅하다.

숙정문을 개방한다는 것은 바로 시민들에게 잊혀졌던 서울의 경관을 복원해주는 일이다.

숙정문이 개방되고 촛대바위에서 시민들이 그들이 살던 곳이 이토록 아름다운지 체험하게 된다면, 그리고 이어서 서울 도성 전체가 복원돼 탐방로가 조성된다면 서울 시민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처음으로 평당 가격이 상승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바라본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져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며, 이 도시에 여전히 자연과 맞닿은 깊은 뿌리가 있음을 확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봄이 오면 우리 모두 촛대바위로 산책을 나가보자. 서울을 역사문화도시로 가꾸는 대열에 참여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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