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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빈곤은 여성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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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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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의 대부분 차지하는 ‘빈곤의 여성화’ 진행중…노동조합 내부에서도 주변화되는 현실, 여성 노조간부는 꽃일 뿐인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여성을 위한 노조, 노조를 위한 여성’. 국제자유노련(ICFTU)이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전개하고 있는 캠페인 구호다. 여성의 노동조합 참여를 늘리기 위한 특별 캠페인인데, 노점상 등 비공식 경제 부문에서 또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차별받으며 일하는 여성 노동자 조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여성은 전세계 5억5천만 명에 달하는 ‘노동빈곤’층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약 7780만 명의 실업여성까지 합치면 4억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자신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줄 ‘괜찮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저임금 속에서 늘 삶의 불안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의 73%가 비정규직이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여성 노동자들. (사진/ 한겨례 이정아 기자)

출산 뒤 재취업은 거의 비정규직으로


그런데 이것이 제3세계 여성 노동자에 국한된 현상은 결코 아니다. 한국에서도 여성 노동은 ‘빈곤’의 다른 이름에 불과할 뿐이고, ‘빈곤의 여성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하는 여성들의 시대라고 하지만, 과연 그들의 일은 정말로 아름다운가? 학습지 교사·텔레마케터·보험모집인·골프장 캐디·임시직·파트타임·촉탁직·파견직…. 이런 비정규직 모두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다.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는 정규직은 26.7%에 불과하고 비정규직이 73.3%에 이른다. 여성 노동자 600만여 명 중에서 비정규직이 약 420만 명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빈곤의 재발견’을 맞고 있다. 압축적인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빈곤은 거의 퇴치됐다고 늘 자랑해왔으나 ‘잊었던 빈곤’은 경제위기 이후 다시 찾아왔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빈민’(the working poor)이 빈곤층 내부의 다수 집단으로 새로 등장했다. 이른바 ‘신빈곤’이다. 빈곤이 발생하는 주요 경로는 실업이 아니라 이제 불완전취업(고용불안·근로소득 감소)으로 바뀌고 있다. 달동네와 빈곤의 거리가 사라졌지만 빈곤층은 뿔뿔이 흩어져 사회의 여러 밑바닥에 은폐된 채 퇴적되었다. 대다수는 도시 곳곳의 지하셋방으로, 또 쪽방으로 숨어들었다. 도시빈곤이 이처럼 은폐되고 파편화되었듯 ‘여성 빈곤’ 역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다. 전체 여성 노동자의 70%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면 놀랍지 않은가?

빈곤은 왜 여성에 집중되는가? 가난은 병을 부르고 또 병은 가난과 함께 오면서 빈곤은 재생산된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결혼·출산·육아로 노동시장에서 떠나 경력 단절을 겪는데, 다시 노동시장에 나올 경우 재취업은 거의 다 비정규직이다. 빈곤층이 빈곤선을 드나들다 저수지처럼 고인 채 ‘빈곤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듯 여성 노동도 소득과 고용이 ‘불안한 일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예전에는 열심히 일하면 빈곤에 떨어지지 않거나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제 이런 믿음은 깨졌다. 일자리가 있어도, 심지어 동시에 몇 가지 일을 하는데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절망감이 깊숙이 퍼져 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력’은 다른 생산 투입요소에 비해 아주 ‘골치 아픈’ 상품이다. 사람이라서 생각을 하고 그래서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여성은 상대적으로 유순하고 노동조합 참여가 적고, 남성 노동자한테 줘야 하는 가족임금을 여성에게는 보장해주지 않아도 된다. 마르크스는 “영국에서는 운하에서 배를 끄는 일에 때때로 말 대신에 아직도(1863년) 여성들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말과 기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은 수학적으로 규정된 (정해진) 크기이지만 반대로 과잉인구 중의 여성들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임금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기계의 나라인 영국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파렴치하게 천한 일에 (여성) 인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용자한테는 골치 아픈 상품이지만, 노동자의 처지에서 노동력은 다른 상품과 달리 가치 저장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시장에서 저임금으로라도 팔리지 않으면 ‘굶어죽을 자유’밖에 없다.

한국노총 중앙위원 중 여성은 단 한 명

빈곤과 경제적 결핍은 우리 사회가 지닌 자원의 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 제도와 권력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빈곤층이 ‘빈민의 이름으로’ 사회적·정치적 발언권을 행사할 기회와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듯 여성 노동자도 국외자이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돼 있다. 물론 여성 노동자는 노동조합이라는 기댈 조직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여성은 노동조합 내부에서조차 주변화되고 과소대표된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1%대인데, 남성조직률은 15.7%인 반면 여성 노동자 조직률은 5.9%에 불과하다. 단위 노동조합에서 여성부장을 제외하고 보면 여성 노조 간부를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다. 2003년 한국노총 전국 대의원대회 대의원(총 762명) 중 여성은 21명(2.8%)에 불과하고, 전체 중앙위원(총 155명) 중 여성은 단 한 명(0.6%)에 그쳤다.

캐나다의 한 노조 활동가는 “진보정당은 민중의 리더가 되기보다는 단순히 경제의 관리자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진보정당을 선출했다는 사실만으로 세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친구가 집권했다고 해서 잠자리에 들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여성 노동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노조가 보편화되고 교섭력이 보장되더라도 그 속에서 배제된 여성 노동자들은 잠자리에 들 수 없다. 노동조합이 “국가와 자본이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임금을 도둑질하고 있다”며 해마다 ‘실질임금’ 확보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최저임금 선상에서 일하는 다수의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적정 ‘최저임금 확보’ 싸움은 노조의 관심사에서 멀리 비켜나 있다. 노동조합에서마저 성 불평등이 뚜렷하고, 따라서 여성 노동자의 이해(출산·모성보호 등)가 노조의 일상활동에서 주요 의제로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빈곤의 여성화’ 시대에 여성 노조간부는 여전히 꽃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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