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세무조사의 ‘정치성’
등록 : 2001-02-06 00:00 수정 :
국가권력이 내놓는 모든 정책에는 어김없이 ‘정치성’이 내포돼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정책을 펼칠 때 그것이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과 파장을 끼칠 것인가를 점검해보는 것은 권력의 기본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일컬어 ‘정무적 판단’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 정책의 내용이나 중요성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정책이든지 정치적 목적이 100% 탈색된 경우를 찾아보기란 힘들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문제는 그 정책이 역사적 대의, 시대적 소명, 국리민복의 향상이라는 명제에 합치하느냐의 여부입니다. 과거 정권의 예를 들어보면, 공직자 재산공개나 군 개혁 등은 내부 권력기반 공고화라는 나름의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시대적·역사적 발전방향과 합치되는 것이었기에 성공한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집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사회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정치적으로도 유리하게 작용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책이 최고의 정책인 셈이지요.
요즘 논란이 분분한 언론사 세무조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세청과 대통령과의 사전교감이 있었네 없었네, 정치적 의도가 있네 없네 하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중요한 결정을 정치적 고려없이 할 리도 없으려니와, 그렇게 순진하게 믿을 어리숙한 국민도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언론들이 이미 하나의 거대권력이 돼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언론사 세무조사에 정치적 성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문제는 이 세무조사가 시대적 소명과 사회의 발전방향에 합치하느냐 아니냐를 놓고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일단 합격점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과정과 결과입니다. 만약 일각의 주장대로 세무조사 결과가 저급한 정치적 술수 차원으로 활용되는 데 그친다면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며, 그렇지 않고 진정한 언론개혁의 출발점이 된다면 정책의 정치성 여부를 떠나 환영할 입니다. 여기에 세무조사의 과정과 결과를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른바 대형언론사들의 반응입니다. 세무조사 방침이 발표된 이후 연일 사설과 칼럼, 기사 등을 통해 일제히 뭇매를 가하고 있습니다. 언론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세무조사는 그간의 불신을 털어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오히려 쌍수를 들어 환영할 법도 한데 말입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세무조사를 받지 않아서 언론사가 무슨 큰 특혜나 입고 있는 줄로 국민들이 오해해왔는데 잘됐다,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장사를 해왔으니 아무리 털어봐도 별것 없을 것이다, 언론사 사주들이 무슨 큰 비리를 저질러온 것으로 생각했다면 착각임을 보여주겠다, 등의 반응을 보일 법한데 실제 모습은 정반대입니다.
더욱이 “이번 조사는 자료수집을 통해 사주에 대한 협박, 재갈 물리기 등의 정치적 의도가 강한 것 같다”는 야당의 주장을 받아 대서특필하는 대목에 이르면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언론 길들이기나 재갈 운운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모욕이다’고 오히려 화를 내는 게 순리인데 말입니다. 과연 그런 협박을 받을 만한 일을 저질러왔다는 것인지, 지레 겁을 집어먹을 만큼 구린 대목이 많다는 것인지 선뜻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세무조사 결과가 기대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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