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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만하면 대한민국 평균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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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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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듯 나를 충격에 빠뜨린 젊은 날 직장동료 신홍범씨의 말
아이들에게는 두고두고 켕기지만 평균이면 족하다고 자위하며 산다네

▣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칼럼니스트.

어떤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다. 나를 키운 것은 그러나, 사람들이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나를 스쳐간 모든 사람들은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그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나는 인생을 알고 배웠다. 닮고 싶고,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싶었던 사람이건, 절대로 저렇게 살아서 안 되겠다며 반면교사로 삼았던 사람이건, 모두가 내 인생의 스승들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벼락같이 나를 꼼짝 못하게 사로잡았던 사람이 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사물이나 사건을 대한민국 평균 수준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에게도 그걸 강요했다. 아이들은 나중에 상표 있는 운동화를 신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노라고 이야기했다. (사진/ 한겨레 류우종 기자)

그의 한마디는 내 인생의 지침과 기준이 되었다. 그는 내 젊은 날 직장동료였던 신홍범씨다.


“200원 갖고 어떻게 살아요”

당시 내 월급이 6천원인가였다. 그나마 한 달에 두 번에 나눠서 주었다. 지금은 언론사가 고액 임금이지만 당시는 쥐꼬리만 한 수준으로 가정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지 불가사의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촌지가 주 수입원이라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어떤 부서는 촌지로 룸살롱을 제집 드나들 듯하는가 하면 어떤 부서의 기자는 야근 뒤에도 걸어서 퇴근했다. 야근하고 집에 갔다 오면 왕복 차비가 드니까 차라리 그냥 회사 한구석에서 잠을 청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어느 날 신홍범씨가 자신은 하루에 200원씩 용돈을 들고 나온다고 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월급으로 내 혼자 용돈도 어려워 아침마다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었던 처지라 “신홍범씨 200원 갖고 어떻게 살아요”라고 정색을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신홍범씨가 “김선주씨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하루 200원이면 대한민국 평균 수준으로는 많은 편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나를 세상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라고 비난하려는 말은 아니라는 듯 덧니가 드러나게 환하게 웃으며 이 말을 하던 신홍범씨의 얼굴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아 그렇구나, 어떤 사람은 삶의 기준을 대한민국의 평균 수준으로 놓고 보는구나, 그런 방법도 있구나,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그것은 내가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부모에게서도 학교에서도 배운 바 없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벼락을 맞았다. 벼락 맞고 사람이 천재가 되거나 이상하게 변했다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변했다. 그전까지의 인생과는 다른, 전혀 다른 눈으로 사람과 사물을 보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삶이 대한민국 평균 수준이면 만족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았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많은 월급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지식이 돈으로 환산되어서는 안 되고 출세를 하는 것이 많은 수입을 보장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돈이 목적이라면 장사를 해야지 지식인이, 대학교수가, 정치인이, 언론인이, 공무원이, 그러니까 공적인 기관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대한민국 평균 수준 이상의 것을 사회에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된 것이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볼 때 대한민국 평균 수준의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라는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른바 가방끈 긴 집단에서 가방끈 짧은 직종의 소득이 자신들보다 많은 것을 불평할 때마다 그게 소원이면, 그게 그렇게 억울하면, 당신들 자녀는 그런 직업에 종사하도록 시켜라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위험하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과외도 비싼 운동화도 없었지만

그러나 이런 나의 사고방식을 아이들에게까지 적용한 것은 두고두고 켕기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내 아이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과외공부를 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 교복 이외의 것을 바라는 아이들의 요구는 항상 잘라 먹었다. 너희들 대한민국 수준으로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 건지 알기나 하냐를 누누이 강조했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학부모가 자식들 교육에 쏟는 열정과 비교하면 나는 밑바닥 수준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한참 뒤에야 자신들은 나이키니 하는 상표 붙은 운동화를 신고 싶었지만 한 번도 요구할 수 없었으며, 용돈도 무슨 통계를 인용해서 꼭 대한민국 평균 수준으로 주는 것에 대해 한 번도 불평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나는 지금 자위하고 산다. 그래 너희가 명문대학을 다니지 못했지만 나쁜 짓 안 하고 누구랑 싸운 적도 없고 말썽 피워 학교에 불려간 적도 없으니까 그만하면 대한민국 평균 수준의 자녀들보다는 나은 것이고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 것인가 생각한다. 텔레비전 같은 데 청소년들이 나와서 공부 열심히 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출세해서 돈 많이 벌어 부모님 호강시켜주겠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것을 들으면 어쩐지 나는 대한민국 아이들 모두에게 부모들을 대신해서 부끄럽다고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신홍범씨는 그 뒤에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했다. 논설위원을 했고 지금은 두레출판사를 운영하며 좋은 책들은 많이 내고 있다. 그는 아마도 35년 전 그가 한 말 때문에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변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것이며 그 말을 한 것도 기억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만난 누구인가의 삶에 대한 태도는 깊은 영향을 주어서 나를 키워주고 나를 형성해주었다. 책을 통해서가 아닌, 우리 시대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나는 오늘도 배우고 있고 아직도 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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